[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③‘조국 사태’로 절감한 한국 사회는

월세 30만원 못낼까 ‘학원 알바’
그곳엔 인서울 ‘수천만원 컨설팅’
‘그들만의 리그’ 내겐 기회 안 와

386세대에 대해 64명 “잘 모른다”
386보다는 50대 포괄적 지목
기성세대들이 청년 탓하기보다
가진 힘으로 세상 바꾸길 바라

 

 

 

지역과 성비, 학력과 학벌 등을 고려해 분류한 만 19~23살 청년 100명을 만나 심층 설문과 인터뷰를 한 기획 시리즈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 3회는 한국 사회의 현재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언론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 담론’이 마침내 폭발했다고 여겼지만, 청년들은 그 전부터 이미 온몸으로 불공정한 세상을 체감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세상에 대한 반응은 자신이 처한 ‘지위’에 따라 분노 혹은 냉소로 분화했다.

 

 

 

 

 

 

 

 

지난여름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조국 서울대 교수 자녀의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진 뒤 많은 언론은 청년들의 실망과 분노를 다뤘다. 그렇게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반응은 천둥과 돌풍을 몰고 오는 거대한 적란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조명됐다. 하지만 <한겨레>가 전국을 오가며 만난 100명의 청년들은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100명의 청년들은 쪼개진 대나무 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다.

 

뿌리는 같았다. 19~23살 청년 100명 중 79명은 ‘조국 사태’를 보고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박탈감이 분노로 이어졌느냐는 물음 앞에서 청년들은 분화했다. ‘조국 사태’에서 불공정을 읽은 청년들의 절반쯤 되는 40명만 분노를 말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분노한다는 응답이 더 많은 유일한 집단은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전체 16명 중 9명이 ‘조국 사태’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비서울권 4년제 국립대 학생들의 경우 10명 중 절반인 5명이 분노한다고 했다. 비서울권 4년제 사립대 학생의 경우 29명 중 12명, 전문대 학생은 28명 중 11명이 분노한다고 답해 앞선 두 유형의 청년들보다 분노 정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고졸 취업이나 창업, 또는 무직인 17명 가운데 분노한다고 답한 청년은 겨우 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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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30만원’ 입시 컨설팅 세계가 안긴 냉소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스무살 윤민정(가명)은 분노하지 않은 청년 중 하나다. “연세대 다니는 남자친구는 너무 화를 내는데 저는 화가 안 났어요. 그냥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시 비리가 있었다고 해도 제가 받은 불이익은 없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저한테는 그런 기회 자체가 오지 않았을 거니까…. ‘스카이’ 학생들만 되게 분노하는 것 같아요.”

 

스물한살 대학생 진혜지(가명)도 윤민정과 마찬가지로 분노하지 않았다. 진혜지는 직접 ‘그들만의 리그’를 생생하게 목격한 뒤 현실에 대한 냉소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그는 넉달 전부터 사교육 시장의 상징인 대치동의 입시 컨설팅 학원에서 일주일에 네번 ‘알바’를 한다. 진혜지는 그곳에서 자주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온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학원은 수강생에게 자기소개서 첨삭, 면접 연습, 대학 진학 상담을 해준다. <한겨레>가 확인한 이 학원의 ‘상담 매뉴얼’을 보면, 면접 컨설팅 비용은 시간당 30만원이다. 12시간과 24시간 상품만 선택할 수 있고, 의대나 ‘스카이’ 대학 등 면접 컨설팅은 24시간 진행자만 받는다. 에누리는 있다. 12시간짜리는 300만원, 24시간짜리는 600만원이 ‘할인가’다. 시급으로 1만원을 받는 진혜지가 600시간 가까이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지만 학원은 늘 문전성시다. 이 학원에는 의대를 희망하는 학생을 위한 1년짜리 프로젝트도 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를 신청하면 자기소개서에 쓸 스펙을 만들어준다. 수강생에게 의학 상식을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을 열고 영상을 찍어오라고 한 뒤 편집 등을 도와준다. 유튜브 채널 링크를 학원 누리집에 올려 홍보하고 구독자를 학원 돈으로 산 뒤 ‘알바’들이 댓글을 다는 작업까지 해준다.

 

진혜지는 이 일을 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냥 서울권 대학에 가기 위해 학부모들이 몇천만원을 아무렇지 않게 쓰더라고요. 저는 월세 30만원도 구하기 어려워서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데…. 대한민국에서 대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상담 전화를 해오는 부모들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화내면서 전화를 끊기도 해요. 그분 자녀가 대학에 잘 가면 다행이지만, 떨어지면 ‘내가 600만원을 안 써서 우리 애가 대학을 못 갔다’고 생각할까 봐 마음이 좀 그래요. 진짜 ‘헬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국의 딸과 아들 같은 이들이 넘쳐나는구나 싶었어요.”

 

진혜지는 한국 사회에서 ‘불공정’은 이미 디폴트(고정)값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조국 교수를 둘러싼 의혹이 특별히 더 불공정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조국 교수 정도의 죄는 죄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정치인이 많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제가 화가 나는 건 돈과 권력만 있으면 이런 불공정을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현실이에요.”

 

‘그들만의 리그’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혜지는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내놓은 정시 확대 정책 역시 역효과만 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시제도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뀌면 이런 학원은 더 잘 살아남아요. 교육정책이 카멜레온처럼 샥샥 변하고 불안정할수록 학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다니는 학원에서는 정시 컨설팅도 해요. 정시가 확대되면 그런 수요가 더 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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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없는 곳에선 분노도 폭발하지 않는다

 

분노는 기대에서 불씨를 품었다가 그것이 꺼지려 하면 화산처럼 폭발한다. 기대가 아예 없는 곳에선 분노가 폭발할 불씨조차 없다.

 

“부모를 잘 만나서 특혜를 누린 건 불공정한 일이긴 하지만 워낙 그런 일이 많잖아요. 제가 아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제가 뭘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으니까요. ‘너네들끼리 놀아라’ 이런 생각? 화가 나는 건 아니고, 저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경기 고양시 일산의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일하는 스물세살 신지영(가명)이 ‘조국 사태’에 분노하지 않은 이유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신지영은 한때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입시 비용을 마련하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이 필요해 일하게 되면서 입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1년6개월의 악순환을 겪은 뒤 그는 결국 대학을 포기했다. 대학에 가지 않은 신지영은 명절에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좋은 대학에 간 자녀를 둔 친척들이 “너는 왜 취업했니?”라고 물을 때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몸이 움츠러들었다. 취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격증 불필요. 초보 환영’ 공고를 낸 한 디자인회사에 지원했더니, 회사는 “전문대 이상 졸업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을 삭제하다 보니 남는 일은 서비스직이나 사무보조밖에 없었다. “집에선 기술을 배우라거나 일이라도 빨리 해서 살림에 보태라고 하죠. 실제로 일을 하면 왜 월급이 그것밖에 안 되냐고 하고. 취업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어요.”

 

신지영은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정노동으로 채워지는 판매직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집세와 생활비 160만원이 발목을 잡았다. 월급 180만원에서 남는 돈은 20만원뿐인데, 이 돈으로는 다른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 “돈 있는 사람들만 돈을 벌고 없는 사람은 계속 없는 것 같아요. 저처럼 어떤 일을 준비하다가 잘 안됐을 때 사회가 보장을 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것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당장이면 돌아올 월세에 헐떡일 수밖에 없는 신지영에겐 이 세상을 둘러싼 그 수많은 불공정에 분노할 여유가 없다.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스물세살 한인경(가명)도 신지영과 비슷한 생각이다. “분노했냐 안 했냐로 따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분노를 이미 뛰어넘어 해탈 단계예요. 체념하는 상태죠. ‘조국 사태’에 화가 나지 않았고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어요.”

 

<한겨레>가 만난 청년들에게 불공정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의 책임이 어느 세대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100명 중 31명은 50대, 21명은 60대를 꼽았다. 청년들이 주로 50대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는 그 세대에 대한 박탈감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스무살 강진석(가명)은 50대가 가장 싫다. “경제성장기에 제일 호황을 많이 누린 세대라고 생각해요. 공무원도 지금은 어려운데 그때는 쉽게 됐잖아요. 심지어 그때 사둔 땅도 다 값이 올랐어. 그렇게 누릴 것은 다 누린 사람들이 ‘꼰대’처럼 하니까 싫은 거죠. 받은 것은 많고 힘도 있는데 청년정책 같은 걸 위해 힘을 쏟는 사람은 없고, 돈을 풀지도 않고.”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는 스물한살 김예지(가명)도 같은 생각이다. “50대는 전형적인 기득권 세대잖아요. 편하게 취직해서 그렇게 많은 부를 축적했는데, 지금 세대에 대해서 열정이 부족하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사회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의 한 전문대를 다니는 스무살 정수진(가명)도 “50대는 너무 꽉 막혀 있어요. 이야기가 안 통해서 깊은 이야기를 안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고위 관료로 있으니까 더 답답해지는 느낌이에요. 학교 교수들도 마찬가지죠. 구구절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해요. 문제는 자기들도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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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386세대’를 모른다

 

하지만 청년들은 ‘조국 사태’ 때 언론이 여러 청년들의 목소리를 인용해 사태의 책임자들로 지목했던 ‘386세대’에 대해서는 되레 잘 몰랐다. ‘386세대’가 주로 지금의 50대를 일컫는 말인데도 말이다. <한겨레>가 만난 100명 중 64명(전혀 모른다 40명, 잘 모른다 24명)은 ‘386세대를 모른다’고 했다. 나머지 36명 중에서도 15명은 ‘들어본 적이 있다’ 수준이었다. 안다고 대답한 사람은 21명(어느 정도 안다 12명, 정확히 안다 9명)뿐이었다. ‘386세대를 안다’고 대답한 서울지역 대학생 스물한살 이영우가 “제도정치나 정당, 각종 시민단체, 기업을 주도하고 있는 게 지금의 586세대인데,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하게 하면서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말하고, 전북대에 다니는 스물두살 이종현이 “민주화운동이 위대한 일인 것은 알겠는데 그런 경험을 긍정적으로 활용한다기보다 20대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한겨레>가 만난 대부분의 청년은 ‘조국 사태’ 이후 여러 언론이 호출한 386세대 집단의 ‘정치적 위선’보다 호황을 독점했던 50대라는 좀 더 포괄적인 범위의 세대를 지목한 뒤 이들이 불황을 버티는 20대를 현실감 없이 타이르는 것에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우리는 ‘조국 사태’ 때 언론이 내세운 청년 담론이 기성세대의 눈높이에서 조립됐고, 지금의 20대 청년들이 주류 언론의 담론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들은 힘있는 기성세대들이 20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힘으로 먼저 세상을 바꾸길 희망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 들어선 정부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그 기대는 흐릿해지고 있다. 이종현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지만, 지금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10대 후반부터 민주당을 지지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뽑았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그냥 대통령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만루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한 거죠. 대통령과 여당도 힘들겠지만, 너무 바뀌지 않는 게 많으니까 실망스러워지고 있어요. 내년 총선에는 어디를 뽑아야 하는지 확신을 못 하겠어요.”

 

실망을 기대로 바꿀 주문을 이번 정부는 이미 가지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여기에 더해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까지 ‘결과의 평등’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되길 청년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강재구 김윤주 김혜윤 서혜미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