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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나이 대 사나이의 승부" 종착점은 어디쯤?

[정욱식 칼럼] 극적인 반전을 위하여
2019.12.10 17:51:05
 

 

 

 

마초 기질이 강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의 승부를 '사나이 대 사나이의 대결'로 본다. 그는 북미 간의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2017년에 롭 포터 백악관 선임 비서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지도자 대 지도자, 사나이 대 사나이, 나와 김정은에 관한 것이에요."

지기 싫어하기로는 김정은 위원장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그래서 그 역시 트럼프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했다. 이로 인해 김정은의 "국가 핵무력 완성"을 향한 폭주와 트럼프의 "최대의 압박"이 맞부딪치면서 2017년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한반도를 배회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화염과 분노", "북한 완전 파괴"와 같은 극단적인 말폭탄으로 지구촌을 깜짝 놀라하면서도 이러한 언행이 계산된 것임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트럼프 행정부 초대 유엔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가 발간한 <외람된 말씀이지만>(With all due respec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옵션이 협상 테이블 위에 있다고 북한에게 전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런 지시도 덧붙였다고 한다. "북한이 날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라."

그러나 김정은은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2017년 9월 수소폭탄 실험에 이어 11월에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강행하고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 역시 계산된 행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는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하고 ICBM이야말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초대장이 될 것으로 믿었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2018년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복원되었고, 뒤이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북미정상회담을 두고 김정은 정권은 "미국과 대등한 전략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의 압박" 덕분이라며 각기 상반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해석은 2019년 들어 '하노이 노딜'을 비롯한 북미협상 교착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제재 완화를 강력히 요구할수록 그의 약점을 잡았다고 여기고는 "최대의 압박"을 낮추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재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이에 북한은 협상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고는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오라고 압박했다. 미국이 호응하지 않자, 다시 2017년에 썼던 카드를 꺼내 들려고도 한다. 대미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12월 7일에는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고는 "전략적 지위를 또 한번 변화시키는 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위성 발사나 ICBM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이러한 해석을 유도해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해보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 대 트럼프의 승부'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까? 이를 전망하고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2017년 상황과 비교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7년 두 지도자의 상호 위협적인 언행은 협상 전략으로서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또한 당시의 언행은 만남이 이뤄지기 전에 벌어진 것이었다. 

북미 정상들의 세 차례의 만남은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다.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고 친분도 쌓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반면 세 차례의 만남과 강력한 친분 과시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바뀌지 않았다고 믿게 될 때, 실망감과 배신감이 친분을 넘어설 수도 있다. 올 한해 아슬아슬한 균형 상태를 유지해온 두 사람의 '케미'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후자 쪽으로 기울어질 위기에 처했다. 

'게임 체인저'는 ICBM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이 ICBM이나 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이는 트럼프에게 보내는 '초대장'이 아니라 북미 공동성명을 찢어버리는 '휴짓장'이 될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자랑해왔던 것이 물거품이 되면서 재선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면, 특유의 '미치광이 전략'을 다시 들고 나올 것이다.

만약 북한이 트럼프가 탄핵 정국에서 귀환할 때까지 판을 깨지 않는다면, 그 이후에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트럼프가 탄핵을 모면하면 자신의 최대 업적이자 기대와 조롱을 동시에 받아온 김정은과의 회담을 재개하려고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재개 결정이 김정은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압박에 따른 결과로 비춰지길 원할 것이다. 이는 김정은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우선 북한의 절제된 언행이 중요하다. 탄핵 정국에 휩싸인 트럼프가 북한의 압박에 움찔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이다. "새로운 길"이 2017년에 갔던 길과 흡사한 것이라면, 이는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던 다짐을 저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ICBM 발사 시 더욱 강력한 경제 제재가 뒤따를 것이라는 점이 확실해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트럼프 탄핵 정국은 내년 2월경에 상원의 부결로 종결될 것이다. 북한은 이 사이에 판을 깨지 말고 다시 판을 깔 준비를 해야 한다. ICBM 발사가 아니라 유예를 통해 '협상의 법칙'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제재를 앞세운 "최대의 압박"이 더 이상 실효적인 접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들의 실패를 성토하면서도 오히려 더 제재에 매달리는 것은 실패한 외교를 예약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제재를 통한 비핵화'에서 '제재 완화와 해제를 통한 비핵화'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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