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이후의 남북, 북미관계는 어떻게 될까? 북한이 예고한 연말 시한이 다가오면서 세계의 눈이 한반도로 쏠리고 있다. 미국 쪽에서 서울 방문이 줄을 잇고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쏟아내지만 북한은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 십여 차례의 미사일, 방사포 발사와 중대 실험 등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측은 남측에 대해서도 청와대에 대한 막말 공세, 남북 정부간 대화 중단, 민간 교류 차단,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발표 등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 ‘한미공조’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북한이 이미 많은 고위 관계자들을 통해 연말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윤곽은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비핵화 협상은 당분간 없다는 것이며 자체적인 핵 자위력을 강화했다는 것 등이다. 그러면서 핵심적인 북한의 결단이 무엇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치 않고 있다. 북한이 곧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카드는 우선 북한의 대화 상대였던 미국의 탄핵과 대선 정국과 어울려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창구로 남아 있는 관광 사업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 탄핵 문제로 집권이후 최악의 궁지에 몰려 있다. 금년 말 이전에 끝날 하원 표결은 탄핵 가결이 확실하지만 내년 2-3월 실시될 상원의 탄핵 심리는 부결 가능성이 높다. 상원의원 1백 명 가운데 공화당 의원이 53명이기 때문이다. 미 공화당은 벌써부터 상원 부결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상당수는 트럼프의 대외정책, 특히 한반도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상원 표결이전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제재 해제와 같은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 내년 11월로 예정된 미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정치 행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간단치는 않다. 미 민주당이나 공화당은 정치적 원칙, 윤리 도덕보다 선거 승리를 최우선시 하는 체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 민주당은 지난 2017년 러시아 스캔들 당시부터 트럼프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내년 대선에서의 역풍을 우려하면서 그것을 접어왔다.
그러던 미 민주당이 지난 9월 전격적으로 트럼프 탄핵안을 제출한 것은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미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어 트럼프 탄핵은 어렵지만 탄핵 절차를 통해 득이 실보다 커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트럼프는 미 상원에서 자신의 탄핵안이 부결된다 해도 살얼음 걷는 식의 재선 캠페인을 해야 한다. 트럼프가 선거용으로 비핵화를 위한 대폭 양보조치를 취하려 해도 미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과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재 분명한 것은 내년 미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기는 곤란한 일이다. 설령 트럼프와 어떤 합의에 이른다 해도 트럼프가 낙선할 경우 그 합의는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 내 정치 일정 등을 고려하면 북한 입장에서 내년 대선 때까지 비핵화 협상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과거 역대 미국 정부와 이런저런 합의를 했지만 정권이 바뀌면 백지화되는 일이 잦았고 미국의 대외정책 역사 자체가 약속을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례가 적지 않다. 어떤 핑계나 구실을 만들어 원래의 합의를 뒤집어버리는 짓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협상 시한으로 연말을 언급한 바 있고, 북한 유엔주재 대사가 지난 8일 외신 성명을 통해 “비핵화 이슈는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졌다”라고 밝힌 것은 이런 미국의 부정적인 체질을 고려해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 대선에 북한이 직접적인 변수로 등장하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미 대선에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선 결과가 어떻든 그 이후 후폭풍이 거셀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외교정책에서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비핵화 협상을 자랑해 왔던 터라 북한의 비핵화 협상 중단 조치에 대해 초강수를 두기는 어려운 처지이고 내심 다행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상과 같은 미국의 국내 사정을 볼 때 북한이 선택할 연말의 조치의 한 부분은 좁혀진다.
그러면 다른 고려사항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북한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로 대외교역의 90% 이상이 중단된 상태다. 중국과 러시아는 말로는 북한 입장에 동조하지만 유엔안보리의 결정사항은 이행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구조 속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는 선택이라는 측면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내세우는 것은 관광산업이다. 금강산 관광특구의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통보한 명분도 관광시설의 현대화였다.
북한이 내년 미 대선이 끝날 때까지 관광 산업 활성화를 계속 추진하려 시도할 경우 한반도의 긴장상태가 고조된다거나 미국의 대북 공세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는 지장을 받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연말에 취할 고강도 조치에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지난 7일과 13일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연이어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밝힌 것은 북한의 자위력을 강화했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의 로켓 전문가들은 북한은 이미 ICBM 기술의 사거리, 대기권재진입 기술, 정확도, 핵무기소형화 요건을 모두 갖췄거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미국의 소리방송 12.16).
그러나 북한이 연말을 시한부로 해서 최근 상당기간 대외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조치들을 연이어 취해왔다는 점에서 이른바 ‘크리스마스 선물’은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킬 비중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자위력 강화를 강조한다 해도 군사적인 측면만이 드러나 국제적 비난이 가중될 그런 조치를 취할 확률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평화를 강조하면서 충격을 주는 것으로 좁혀진다. 그것은 아마도 인공위성 발사 정도가 아닐까 추정된다.
위성 발사 기술은 군사적 목적에도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엔의 대북 제재 요건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위성을 통한 우주 개발은 차세대 국가의 먹거리 산업의 하나로 일컫는다. 위성 발사가 탄도미사일이나 유사한 발사체를 사용한다 해도 이를 제재를 유발할 항목에 집어넣은 것은 어떤 면에서 북한의 미래 생존권을 봉쇄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이런 점에 눈을 감고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결의안에 동조한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이상에서와 같은 추정이 현실화 될 경우 북한에 대한 미국이나 유엔 등의 비판과 공세가 생략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어떤 대안보다 북한이 취할 것이 더 많다는 점은 부인키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반발 강도를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내년 한 해 동안 북한이 그동안 경색시킨 남북관계를 활성화할 가능성 또한 조심스럽게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관련 대화를 중단한 상태에서 남북관계 개선 시도는 그에 대한 명분 등으로 긍정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 동안 지나치게 대미 의존적이어서 한반도 문제에서 남측만의 자주적 공간을 만드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좋았던 남북관계도 얼어붙었는데 만약 심기일전한다면 내년에 긍정적인 남북관계가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상과 같은 추정이 빗나갈 수 있다. 세상일이란 다인다과(多因多果)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다 상대가 있어서 혼자서 정한 방향으로 가는 일은 흔히 않다. 하지만 비핵화와 관련한 북미, 남북관계는 국제 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지는 공개적인, 생사가 걸린 줄다리기인 측면도 있다. 각자의 입장에서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진인사 대천명 할 일이다.
사족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최근 문정인 교수가 북측이 핵보유국이 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국이 중국의 핵우산 제공을 받느냐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는 내년 이후 한반도 정세가 대단히 가변적인데 그에 대해 국내 정치, 학계, 시민사회에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태도를 보고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문 교수의 문제제기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한반도 미래에 대한 상상력 발휘가 억제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남북의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면 국보법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동시에 남측이 불평등한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한 미국의 군사적 종속을 면키 어렵다는 점에서 새해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고, 설령 그 유지가 불가피하다면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협정 식으로 정상화 시키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새해에는 모두 힘껏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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