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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의 217일, '노동존중' 정부는 어디에?

[해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217일간의 투쟁
2020.02.04 19:49:02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이 점거 145일 만인 1월 31일 김천 도로공사 본사 농성을 해제했다. 도명화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지부장과 유창근 공공연대노조 한국도로공사영업소지회장도 같은 날, 단식을 풀었다. 단식 15일 만이다. 작년 11월부터 이어져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 농성도 이날 마무리됐다. 정부종합청사 앞 천막 농성도 2월 1일 결의대회와 함께 정리됐다.

두 번의 명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도록 이어져 온 8개월 간의 해고 수납원 전원 직접고용 싸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돌아보면 지난 8개월은 정부의 '자회사도 정규직'이라는 방침과 도공의 반복되는 '노동자 갈라치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저항한 시간이었다.

시작은 2013년이었다. 하청업체 소속 389명의 톨게이트 수납원은 그해 도공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2015년 1월, 2심은 2017년 2월 결과가 나왔다. 모두 수납원의 승리였다. 법원은 도공이 불법파견한 수납원을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존 판결을 뒤집는 논거가 나오지 않는 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하청 소속의 비정규직 신분인 수납원들은 도공 정규직 직원이 될 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노동 존중'을 내건 문재인 정부인지라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기대는 컸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문 대통령은 취임 첫 일정으로 찾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그리고 두 달여 뒤인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부터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생각하는 정규직은 도공에 소속돼 정년까지 일하는 것인데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자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정규직이었다. 

전문가위원 보고서로 본 도공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사전협의회

정부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도공은 정규직화 노사전협의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도공은 톨게이트 수납원들을 자회사에 고용하는 방침으로 발표했다. 수납원 입장에서는 받을 수 없는 방침이었다. 자회사로 가도 현재의 간접고용 구조는 변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수납원과 자회사 고용을 고수하는 도공 간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도공은 노사전협의회에서 '이해당사자 대표간 합의로 자회사 고용에 합의했다'고 주장한다. 도공의 주장은 사실일까. 조성재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당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포함해 협의회에 참석한 전문가 위원들이 작성한 활동결과 보고서에는 결이 다른 이야기가 적혀있다. 해당 보고서는 2018년 9월 도공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제출됐다.

"요금수납원 정규직화를 위한 노사전협의회가 1년여 활동을 벌였으나, 노사 간, 회사와 전문가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9월 5일 제9차 노사전협의회 본회의에서 사안을 잠정 종결하고, 고용노동부 공공부문 정규직화 추진단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의견과 방침을 구하고자 한다." 

노사 간 이견은 그렇다 쳐도 회사와 전문가 간 이견이라는 표현이 이채롭다. 남정수 민주일반연맹 교육선전실장은 이를 두고 "노사전협의회 당시 전문가위원들도 이 사업장에는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 자회사 고용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한 바 있다. 

애초 정부 가이드라인의 노사전협의회 운영 방침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협의하고 이해당사자 대표가 누락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공의 자회사 고용 합의에는 전문가 위원이 통으로 빠졌다. 당시 전문가 위원들은 합의 결렬을 선언하고 협의회를 보이콧했다.  

도공에서 합의 주체로 내세우는 '이해당사자 대표'라는 말을 좁게 해석해 노사 대표로 볼 수도 있다. 이 경우 전문가 위원이 빠진 상태에서 노사가 합의해도 해당 합의는 효력을 갖는다고 주장할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활동결과 보고서는 노동자 대표의 자격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노조 대표 3명, 무노조 대표 3명 중 유노조 대표 1명의 자격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톨게이트노조는 직접고용에서 자회사로 입장을 선회한 송미옥 위원장에 대해 불신임을 결의했으나 고용노동부가 대표 자격이 있는 것으로 판단을 내렸다."

도공이 주장하는 합의가 이루어진 협의회에는 전문가위원이 빠져있다. 이에 따라 도공은 협의회를 노사 합의 틀로 끌고 갔지만, 당시 노동자 대표 중 1명은 조합원 총회를 통해 불신임 결의된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톨케이트 수납원들 입장에서는 내용은 물론 절차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합의였던 셈이다.  

도공의 자회사 고용 방침이 큰 갈등으로 번지리라는 경고등은 '반쪽'짜리 노사전협의회 때부터 이미 깜빡거리고 있었던 셈이다.  

 

▲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 농성자들. ⓒ프레시안(최형락)

 

 

마침내 다가온 대량해고  

그렇게 문제의 2019년 6월 30일이 왔다. 이날 도공은 자회사 고용에 반대하는 수납원 1500여 명을 전원 해고했다. 공공기관에서 이 정도 숫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 번에 해고한 일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대 노조 수납원은 이날부터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갔다. 두 노조 소속 수납원 30여 명이 해고 당일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랐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납원 수백 명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도 정부의 입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일주일여 뒤인 2019년 7월 8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도공과 관련해 "노사정 합의한 대로 생명·안전 관련 분야만 본사가 직고용하고 나머지 상시적 일자리는 자회사 직고용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라며 "모두 본사 직고용으로 해야 한다면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기조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의 발언에서 도공 노사전협의회에서의 균열이나 대법 판결과 정부 정책이 충돌하는 데 대한 언급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대법 판결에 비추어보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한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법보다 못한 인식과 판단을 갖고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서울톨게이트 농성이 이후 98일 간 지속된 이유다. 

2019년 8월 29일, 수납원 직접고용 대법 판결이 나왔다. 소송 시작 6년 만이었다. 판결이 1년만 빨리 나왔다면 대량해고 사태는 없을 수도 있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부의 입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대법 판결 이후인 9월 9일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의 입을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종의 꼼수였다. 이 사장은 '대법 승소자는 직접고용하겠지만 1, 2심 계류 수납원은 대법 판결 결과를 받아오라'고 했다. '노동자 갈라치기'였다

일반적으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대표 소송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는 다른 노동자에게도 적용한다. 소송 당사자의 경제적·물리적 부담과 불필요한 소송에 따르는 사회적 낭비를 막기 위해서다. 대부분 회사도 다른 의도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대표 소송 결과에 따른다. 판례가 나왔으니 결과는 비슷할 텐데 시간을 끌어봐야 득볼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대법원도 '해당 소송 당사자가 아니라도 수납원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 취지를 밝혔다.
 

1, 2심 계류자는 물론 대법원 승소자 등 300여 명의 수납원들이 이 사장이 입장을 발표한 날, 도공 본사 점거에 들어간 이유다. 

그럼에도 도공은 '갈라치기' 방침을 그대로 실행했다. 2019년 9월 23일 복귀 예정 대법 승소자를 따로 불러 교육을 진행했다.  

반쪽 합의로 끝난 을지로위원회 개입 

대법 판결에도 갈등이 봉합되지 않자 2019년 9월 말을 기해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에 나섰다. 

을지로위원회가 도출한 안은 "대법 승소자에 더해 1심 승소자를 복귀시키고, 1심 계류자는 1심 판결을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민주노총 수납원들은 "여전한 갈라치기 안을 받을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을지로위원회의 개입은 2019년 10월 10일 도공과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 사이의 반쪽 합의로 끝났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연대투쟁도 이때 끝났다.

청와대는 합의 당일 "기존보다 진전된 안으로 합의를 이룬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노사 간 지속적 노력으로 도로공사와 민주노총이 합의에 이르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불과 3일 뒤에는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탄력근로제에 대한 질의에 답하던 중 "톨게이트 수납원이 없어지는 직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느냐"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즈음 요금수납자회사로 간 수납원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도공이 복지·임금 면에서 자회사로 가기 전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자회사로 가는 과정에서 도공 직원이나 중간관리자들의 협박과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자회사 수납원 중 일부는 도공을 상대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에 따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미 복귀한 대법 승소자들이 원거리 발령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민주노총은 원거리 발령이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 승소 복귀자 전체 인원 380명 중 53%인 200명에 대해 원거리 발령이 났는데 민주노총 소속 복귀자는 51명 중 84%인 43명이 원거리 발령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오체투지, 청와대 행진, 본사 농성, 민주당 의원 사무실 점거 등 민주노총 소속 수납원들의 싸움은 계속됐다. 해고 수납원 1500명 직접고용이라는 요구는 변한 적이 없었다.

 

 

▲ 서울 도심에서 오체투지 중인 요금수납원들. ⓒ프레시안(최형락)


마지막까지 이어진 도공의 갈라치기 
 

 

청와대의 지속적 대화 주문과 수납원의 계속되는 싸움에도, 민주노총과 도공이 교섭 테이블에 마주 앉기까지는 두 달여가 걸렸다. 2019년 12월 6일 4000여 명의 수납원이 계류된 김천지원 1심에서 재판부가 대법 판결을 인용하며 직접고용 판결을 내린 직후였다. 이강래 사장은 교섭을 일주일여 앞둔 2019년 12월 5일, 전북 남원·순창·임실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며 사표를 냈다.  

2019년 12월 11일 열린 교섭에서 도공은 1심 계류자 중 2015년 이전 입사자를 직접고용하겠다며 또다시 갈라치기안을 제시했다. 2015년 이후 불법파견 요소를 제거했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도공 직원이 수납원에게 대면 업무 지시를 내리던 것을 SNS, 유선 지시 등으로 바꿨다는 것이었다. 대법 판결 당시 이미 기각된 주장이었다. 결국 교섭은 결렬됐다.

두 달여 뒤인 2020년 1월 17일 도공은 "1심 계류자를 일단 직접고용하되 2015년 이후 입사자는 판결 결과에 따라 고용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안을 냈다. 2015년 이전 입사자와 이후 입사자를 갈라친다는 점에서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입장이었다.

같은 날 도명화 지부장과 유창근 지회장이 단식에 들어갔다. 함께 싸워온 동료에게 고용불안 꼬리표를 붙여 들여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보름의 시간이 흐르고, 수납원들은 1월 31일 단식과 도공 본사 농성을 해제했다. 2월 1일에는 정부종합청사 앞 농성장을 정리했다. 이로 인해 수납원들의 직접고용 싸움이 일단락됐다. 

 

민주일반연맹은 1월 31일 본사 농성 해제를 발표하며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고 시작하기 위한 농성 해단 결정"이라고 밝혔다. 

 

노동존중 정부는 어디에 

공기업인 도공의 대량해고 사태를 살펴보면 '노동존중'을 표방한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는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무엇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 문제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중앙 정부 부처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는 전원 직접고용됐으나 자회사 전환 방식을 열어둔 공공기관에서는 간접고용 노동자 2명 중 1명 가량(47.1%)이 직접고용됐다.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 해 해당 사업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아직 나온 바 없다. 일각에서 '공공부문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최근 통계인 2017년 기준 공공부문 일자리 비중은 9%(241만여 명)로 OECD 평균 21.3%의 절반 수준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직접고용 된 인원은 18만여 명이다.

정규직화 재정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기존에는 전체 인건비의 15% 정도를 파견기관 또는 용역업체에 지급했는데 이를 인건비와 처우개선비에 포함했다"고 발표했다. 직접고용에 들어가는 추가적 재정 부담도 사실상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이드라인만을 내세우며 도공 사태에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고수했다면, 대법 판결을 앞둔 도공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요금수납자회사 설립을 판결 이후로 미루는 방법이 제시되기도 했다. 도공 자회사 설립은 2019년 7월이다. 이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정부는 자회사 고용을 정규직으로 보는 정규직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려 했더라도 대법 판결 이후에는 기존 입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부는 장외에서 '사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 이상의 대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수납원 대부분은 애초 요구대로 도공의 직접고용 노동자로 일하게 됐다. 결국 그렇게 될 일을 두고 도공과 수납원은 217일을 길거리에서 싸워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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