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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으로 얼룩진 한국체육계의 ‘부끄러운 현주소’

정희완·탁지영 기자 roses@kyunghyang.com

입력 : 2020.02.14 06:00

 

<b>근절 외쳤지만…</b> 지난해 1월9일 당시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조재범 전 쇼트트랙 코치의 성폭력 의혹에 대한 대책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근절 외쳤지만… 지난해 1월9일 당시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조재범 전 쇼트트랙 코치의 성폭력 의혹에 대한 대책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대책은 재탕, 부실 조사에 2차피해까지…말만 요란한 문체부

감사원 감사 결과 
2013년에 만든 방안 또 발표
신고받고도 아무 조치 안 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체육 지도자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뒤 내놓은 대책 가운데 일부가 기존 방안을 재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체육계는 스포츠비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비위 지도자 관리를 부실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13일 ‘국가대표 및 선수촌 등 운영·관리실태’ 감사 결과 총 40건의 지적사항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는 지난해 1월 조재범 전 쇼트트랙 코치의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뒤 문체부가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 진행됐다. 

감사원은 문체부가 스포츠비리의 개선 대책을 내놓은 뒤 이행 여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1월 성폭행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체육단체 간 징계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 방안을 포함시켰다. 이 대책은 문체부가 2013년 수립했던 방안이었다.

대한체육회는 2017년과 2019년 다른 체육단체에서 자격정지 1년 이상의 징계를 받은 사람도 지도자 등록이 가능토록 정관과 관련 규정을 개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위 지도자가 다른 체육단체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조치이지만 문체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성폭행 범죄의 조사가 부실하게 진행돼 2차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적발됐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2017년 6월 장애인 조정 국가대표 코치 ㄱ씨의 강제추행 및 언어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3명과 목격자 1명의 진술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가해자가 부인한다는 이유로 사건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장애인조정연맹에 이첩했다. 연맹은 추가 조사 없이 ㄱ씨의 언어폭력 혐의만 인정해 자격정지 6개월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ㄱ씨가 피해자와 같은 팀으로 경기에 출전해 피해자가 ㄱ씨를 피해 다녀야 하는 일도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ㄱ씨를 직접 고소했고, ㄱ씨는 2018년 9월 강제추행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문체부가 2014년 2월에 설치한 ‘스포츠비리 신고센터’도 부실하게 운영됐다. 신고센터는 같은 해 7월부터 3년 동안 접수된 10건의 비리 신고를 조치 없이 방치했다. 대한체육회의 관리 부실로 산하 10개 회원 종목 단체 비위 지도자 18명이 그대로 등록되기도 했다.

문체부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지난달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스포츠 윤리센터’ 설립, 체육 지도자 자격정지 및 취소 요건 강화, 징계정보 시스템 및 지도자 범죄경력 조회 등의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선수 인생 끝날까봐 억지로 모르는 척…말할 곳 없는 장애인

<b>어디로 가야 하나요</b> 장애인 운동선수들이 각종 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를 알리지 못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장애인 운동선수들이 각종 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지만 이를 알리지 못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권위 조사 결과 
10% 성희롱·성추행 등 경험
대다수 도움 요청·신고 못해
 

“코치가 여자 선수들의 동의 없이 머리나 어깨 등 신체 일부를 만지는 걸 봤어요. 한 동료 선수는 불이익을 받을까 겁이 나 신고하지 못했어요.” 장애인 선수 ㄱ씨의 목격담이다. 그는 “신고했다가 코치와 사이가 틀어지면 경기 출전 등 운동선수로서의 삶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 장애인 운동선수 5명 중 1명이 구타, 욕설, 비하 등 13가지 유형의 폭력 피해를 겪었다. 10명 중 1명은 성폭력을 경험했다. 인권위는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등록된 1만709명 중 1554명(남성 1180명, 여성 3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조사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조사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10월2일부터 31일까지 실시했다.

선수 354명(22.2%)이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협박이나 욕, 모욕적인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응답이 13%로 가장 높았다. 한 선수는 “동료 선수들로부터 내 자신의 몸(체형)에 대한 놀림이 많아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만두게 될 경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체벌(8.8%)과 구타(6.9%) 피해를 호소했다. 주요 가해자는 지도자(51.5%)와 선배 선수(31.8%) 순으로 나타났다. 훈련장(58.3%)과 경기장(30.3%)에서 주로 폭력을 당했다. 합숙소나 회식자리(13.3%)에서도 폭력이 일어났다.성폭력 피해자는 143명(9.2%)으로 여성 선수(13.6%) 비율이 남성 선수(7.8%)보다 높았다. 언어적 성희롱을 당한 이들이 6.1%(여성 9.4%, 남성 5.1%), 시각적 성희롱을 당한 이들은 6%(여성 9.6%, 남성 4.9%)였다. 신체 일부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강간을 당한 이들도 5.7%(여성 8.8%, 남성 4.7%)였다. 

응답자들은 선배 선수들이 주로 언어적 성희롱을, 지도자들은 주로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답했다. 훈련장(41.3%)과 경기장(28%)에서 주로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선수 중 23.9%는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고 모르는 척했다고 답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외부 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도 50%에 달했다. 피해자들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39.4%),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24.2%)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했다.피해 사실을 알려도 2차 피해를 당했다. 25.7%가 내·외부 기관이나 지도자·동료 선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가해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말로 피해 상황을 다르게 알렸다’고 답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40600025&code=940100#csidx71712c32db3fcb897642326af5591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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