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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위기, ‘갈라치기’ 정보에 맞선 사회심리적 방역이 중요하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입력 : 2020.03.15 09:10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가  3월 1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가 3월 1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51)의 관심 분야는 ‘공적 위기소통’이다. 메르스·살충제 달걀·생활화학제품·미세먼지 등 공중보건과 관련한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위험인식조사를 진행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기 시작할 때도 발 빠르게 조사를 진행했다.

유 교수 연구팀이 지난 2월 25~28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조사해보니 59.8%가 ‘일상이 절반 이상 정지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1차 조사 때 48.0%보다 크게 올랐다. 코로나19 뉴스를 접할 때 떠오르는 감정은 ‘불안’(48.8%)이 가장 많았고, ‘분노’(21.6%)가 뒤따랐다. 1차 조사 때도 불안(60.2%)이 가장 높았지만 분노는 공포, 충격에 이어 4번째였다. 특히 확진자가 집중돼 있는 대구·경북 시민의 스트레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유 교수는 ‘사회심리적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유 교수는 “사회심리적 방역의 타깃은 바이러스 자체보다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극단적으로 ‘갈라치기’하는 정보나 정서”라며 “언제 또 올 지 모르는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사회심리적 방역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심리적 방역의 구성 요소로 합리적 위험인식, 사회적 효능감, 신뢰, 바이러스 리터러시(미디어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 효과적 위기소통 등 5가지를 제시한다. 
 

-사회심리적 방역은 왜 중요한가. 

“몇 년 안에 또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른다. 또 오게 될 신종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불안한데 불안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사회심리적 방역의 5가지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 과도하게 민감하지 않을 수 있도록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합리적 위험인식), 마스크를 쓰든, 손을 씻든, 현재 권고되는 내용을 통해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사회적 효능감), 우리 정치는 국민 건강을 우선할 것이고, 지역사회가 잘 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신뢰)이 있어야 한다. 위기상황에서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정보에 대한 이해력이 높지 않으면 쏠림이 생길 수 있고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바이러스 리터러시). 어떤 사태가 일으키는 부정적 정서가 크면 보건당국이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도 시민 반응이 실질적으로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나오면서 시민의 불안 양상이 달라졌고 대응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반에는 시민이 코로나19 자체의 상황보다는 지난 메르스를 떠올리며 위험을 인식했다. 하지만 대구 신천지교회 집회 전과 후 불안의 양상이 달라졌다. 지금은 정부의 대응이 어땠는지, 미디어는 코로나19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나는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이 불안에 영향을 미친다. 똑같은 불안이라도 위협이 변해가면서 달라진다. 초반에는 ‘진정하라’는 전략이 효과적이었다. 조기에 환자를 발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도 구할 수 없고, 자영업자가 가게 문을 닫게 될 상황이고, 대구·경북에 살았을 뿐인데 불안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과도하게 불안하지 말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확산세가 조금 꺾였을 때 안정될 거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런 발표와 더불어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이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절대 느슨해지지 않겠다’와 같은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적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자가격리 기간에 돌아다니거나, 대구 거주 사실을 숨기는 등 신뢰를 떨어뜨리는 사례가 나온다. 

“모든 위기상황은 한마음으로 끝내야 한다. 위기의 페이지가 열렸으면 빨리 넘겨야 하고, ‘위기’라는 이름을 탈각시켜야 한다. 그런데 의심이 올라가고 경계가 많았지만 솔직히 말하지 않고 움츠러든다. 인식조사에선 확진자가 됐을 때 ‘너, 왜 돌아다녔느냐’고 비난 받을까봐 두렵다는 감정이 나타났다. 혐오 표현도 처음에는 중국인 대상이었다가 지금은 확진자와 확진자가 많이 나온 지역이 됐다. 현재 정부는 강한 조처를 이야기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강한 조처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다. 메르스 때는 정보 공개를 둘러싼 투명성의 문제가 컸다. 지금은 위기대응이라는 게 시민사회 협조와 동참, 성숙한 시민의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위기소통이 중요하다.” 
 

-효과적인 위기소통이란 뭘까. 

“시민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야 한다. 정부와 방역당국이 ‘그대로 있으라’고 해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왜 하는지, 왜 필요한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이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두 번 부를 동안 비누로 손을 씻어야 해요’라고 말하면 통한다. 이처럼 위기 시에는 기존의 믿음이나 태도가 강하게 발동하기 때문에 가르치려 하는 순간 먹히지 않는다. 어느 날 나타난 고위직보다는 신뢰원천이 높은 이들을 찾고 함께 소통해야 한다. 서울 구로에서 집단감염이 나왔고, 미뤘던 대학 개강이 다가온다. 2주간 비대면 강의를 하고 학생들을 최대한 억제하는 소통을 하겠지만, 방학 때보다는 더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한 시민의 이해 정도를 알아보고 세심하게 위기소통을 할 필요가 있다.”
 

-낙인과 트라우마 같은 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해외 학자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급속연소 위기’가 있다고 말한다. 빨리 타오르고 빨리 전개된다는 것이다. (문제를 개선할) 기회의 창이 빨리 닫혀버린다. 우리는 메르스 때 경험했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자’, ‘역학조사관 늘리자’는 목소리는 새로운 의제가 만들어지면서 힘을 잃었다. 감염병을 둘러싼 차별·낙인, 의료인들의 번아웃·트라우마 등이 정신심리에 미치게 될 부정적인 영향을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위기 뒤에 위기, ‘긴 그림자 위기’가 올 수 있다. 환자 치료에 참여한 민간 의료기관, 자원한 의료인에 대한 충분한 보상대책이 마련되지 않거나 대구·경북 주민들에 대한 전면적 케어를 해주지 않으면 불신을 낳게 된다. 또 다른 신종 전염병이 돌 때 ‘코로나 때 어땠어’ 하는 사고전력을 떠올리게 하면서 처음부터 낮은 신뢰와 효능감, 높은 위험 인식을 동반할 수 있다. 단순히 낙인이나 혐오가 나쁘다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실질적인 부담이 될 수 있는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50여 일이 지났다. 그간 위기대응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나중에 후회하느니 신중하게 하라. ‘신뢰적자’를 메우는 소통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선 ‘처음에는 의료인들이 열악하게 시작한 게 사실이다. 지난 일주일 사이 이렇게 개선이 됐다’는 식으로 ‘작은 승리’를 쌓아나가는 게 정부로선 좋은 전략이다. 어떻게 시민사회와 합리적으로 소통하고 성숙한 시민행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도 고민해야 한다. 강한 조처는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을 겨냥하는 비난과 혐오, 낙인이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 경보는 무기력감을 주고 신뢰를 고갈시킨다. 언론은 신호·경보 중심 보도만 할 게 아니라 시민사회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획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불확실성에 대해서 더 잘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3150910031&code=940100#csidx498cd359c8b40e88c49517519cfd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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