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실제 건강 상태가 어떠하든, 이번 위독설 보도는 그간의 북한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그대로 보여줬다. 구체적인 출처를 내놓지 못한 채, 의문의 소식통을 근거로 제시하거나 막연히 외신 보도를 인용하는 문제점이 또다시 되풀이됐다.
그런 문제점은 CNN 보도에서도 나타났다. 21일자 인터넷판 기사 '북한 지도자 수술 후 심각한 위험··· 미국, 정보 모니터링 중(US monitoring intelligence that North Korean leader is in grave danger after surgery)'은 김정은이 위독하다는 정보의 출처로 "직접적 지식을 가진 미국 관리(a US official with direct knowledge)", "이 정보에 정통한 두 번째 소식통(a second source familiar with the intelligence)", "또 다른 미국 관리(another US official)'를 제시했다.
북한 관리도 아닌 미국 관리가 김정은의 건강 상태를 폭로한다고 해서 신변 위협을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불명확하게 출처를 제시하는 것은 CNN 스스로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심 현안 중 하나인 북미관계와 관련된 보도를 하면서 신뢰성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미국 관리'를 인용한 CNN 보도는 '최고의 미국 관리'인 트럼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부정함에 따라 신뢰성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위 출처들과 더불어 CNN이 제시한 또 다른 출처는 한국 매체인 <데일리 NK>다. CNN는 "이 뉴스 사이트에 따르면 김은 과도한 흡연, 비만 및 과로 때문에 심혈관계 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뒤 지금은 향산군의 빌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데일리 NK> 보도 역시 출처가 불명확하다. 이 매체는 20일자 기사 '김정은, 최근 심혈관 시술 받았다 ··· 여전히 특가(별장)서 치료 중'에서 자료의 출처로 "북한 내부 소식통"을 제시했다. 출처가 불명확하게 제시된 <데일리 NK> 보도가 CNN 보도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고, 그런 CNN 보도가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은 채 국내 언론에 의해 확산됐던 것이다.
취재원이 북한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출처를 모호하게 표기하는 게 부득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 관계자가 전파·영상 분석을 근거로 '김정은이 강원도 원산에 있다'고 말했으니, 내부 소식통을 근거로 '김정은이 평안북도 향산군에 있다'고 한 <데일리 NK> 보도는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 내부 소식통'의 실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번 위독설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북한 지도부의 내부 동정에 관한 언론 보도들에서는 출처가 정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또 보도를 내는 매체에서도 출처 표기에 커다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또는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이라는 한마디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관행으로 굳어지다 보니 검증 절차를 소홀히 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북한 관련 보도에서는 오보가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한에 관한 오보의 역사... 왜 그럴까
▲ 본문에 인용된 기사. | |
ⓒ 경향신문 |
한편, 출처가 명확히 제시됐는데도 결국 오보로 드러난 경우도 있다. 1986년 11월 17일자 국내 언론들의 톱기사가 바로 그 경우다. 일례로, 그 날짜 <경향신문>은 검정색 바탕 위에 흰 색으로 '김일성 피살'이란 다섯 글자를 1면 상단에 큼지막하게 배치했다.
이 기사는 평양방송을 인용해 '김일성이 열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오극렬 인민군 총참모장이 이끄는 쿠데타군에 의해 총격을 받았으며, 후계자 김정일마저 오극렬에 의해 연금돼 있다'고 보도했다.
'평양방송 보도'이라는 점 외에 '휴전선 너머로 조기가 목격되고 있다'거나 '북한이 대남 확성기로 김일성 사망 사실을 알리고 있다'는 구체적 근거들까지 추가로 제시됐다. 쿠데타로 인해 몽골 총리의 방북 일정이 취소되는 등의 변화도 있었다고 소개됐다.
그 정도 보도라면 누구라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출처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보도마저 허위였다. 다음날 언론들은 전혀 다른 보도들을 내놨다.
일례로 <동아일보>는 '김일성 평양공항에 나타나'라는 제하에 "북한의 김일성이 18일 오전 10시 평양을 방문한 몽고 국가원수인 공산당 서기장 잠빈마트문흐를 평양 공항에서 영접했다고 세계의 주요 외신들과 북한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했다"고 한 뒤 "김일성의 피살설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며 전날 소동을 간단히 마무리했다.
명확한 출처까지 제시하면서 김일성 사망설을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근거도 없이 출처를 운운했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그로부터 8년 뒤에 사망했다.
허무맹랑한 오보는 김정일의 외국 나들이와 관련해서도 있었다. '김일성 장남 정일, 동경 IPU 참석'이란 제목의 1974년 11월 19일자 <조선일보> 기사처럼, 당시의 국내 언론들은 김일성 후계자 김정일이 리종혁이란 가명으로 국제의원연맹 회의에 참석했다는 엄청난 보도를 내놨다.
언론이 제시한 근거는, 북한대표단의 일원인 리종혁이 김정일(당시 32세)과 같은 또래인 30대로 보인다는 점, 164센티미터이자 통통한 편인 그의 체형이 김정일과 비슷하다는 점, 리종혁이 나이에 맞지 않게 거만하며 엘리트 의식을 강하게 풍긴다는 점 등이다.
언론들은 김정일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김정일 도쿄 출현설을 요란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은 우리가 아는 그 김정일이 아니다. 진짜 리종혁의 사진이었던 것이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및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준비위원회 분과위원장 등을 맡아 남한에도 알려진 1936년 태생의 외교관인 리종혁이 당시의 리종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북한에 관한 오보 중에는 김정일 도쿄 출현설처럼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중 상당수는 최고지도자의 생명이나 건강 혹은 북한 군부의 동향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군부 동향에 관한 오보는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한 우려를 낳으면서 한반도 전쟁설로도 연결될 수 있다. 이처럼 북한 오보 중에는 대북 관계를 악화시키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한국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트릴 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까지 위협할 수 있는 이런 보도들이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북한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권력자가 된 지 벌써 9년이 됐는데도 그의 아들은 누구이고 딸은 누구인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정도로 정보량이 적다 보니, 북한에 관한 오보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양산될 수 있다.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 외에 언론 자신의 문제점도 오보 양산의 원인이다. 언론사 경영진의 상업주의가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있었다.
2001년에 <관훈저널> 봄호에 실린 조호연 당시 경향신문 정치부 차장의 기고문 '대북보도 오보의 위험성'은 북한에 관한 오보를 "우리 언론의 병폐인 상업주의에 입각한 선정 보도"라고 규정하면서 "타 언론보다 새로운 보도를 하기 위해 정확하지 않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하는 것이 용인되는 언론 풍토가 만들어낸 그릇된 관행"이라고 한 뒤 "자기 신문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이 타 신문에 보도되면 확인 절차도 없이 이를 그대로 받아 보도하는 모습도 비뚤어진 상업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했다.
위 글에서 말한 '상업주의'는 '검증 소홀'과도 연결된다. 북한에 관해 보도할 때는 사실 검증을 소홀히 하는 문제점이 언론사 경영진의 상업주의와 맞물리면서 오보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검증 소홀은 일부 언론사나 기자들의 이념적 편향성과도 무관치 않다. '북한은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무너져야 한다'는 확신이 검증 소홀과 오보 양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관훈저널> 2014년 봄호에 기고한 '북한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북한 관련 보도에서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특정 언론들이 지향하는 정치적·이념적 편향성"이라면서 "3대 권력세습을 한 김정은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개인 숭배와 부패 때문에 개혁·개방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검증 소홀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치권력의 영향이라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들이 허위 보도를 부추기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점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권력 공고화 작업이 진행되던 1979년 연말부터 1980년 중반기에 북한 남침설의 진원지가 주로 어디였는가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운동이 박정희 구체제는 물론이고 전두환 체제에도 위협이 되던 그 시기에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많았다. 1979년 크리스마스에 남침할 거라느니 1980년 1월 중에 할 거라느니, 1980년 2월이나 3월에 할 거라느니, 5월에 할 거라느니 하는 보도들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가을에 할 거라는 설도 유포됐다.
이 해에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유독 많이 나왔다. 일례로 1980년 7월 8일자 <경향신문> 기사 '북괴 남침 준비 끝내'는 미국 월간지 <라이징 타이드> 7월호를 인용해 "북괴는 이미 지난 4월 대규모 남침 공격 준비를 완료하고 앞으로도 대남 비정규전을 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라이징 타이드>지 기사의 정보 출처는 "한국과 동맹국들의 정보 보고"였다.
이 당시 남침설을 집중적으로 만들어낸 곳이 있다. 바로 일본 정부다. 2002년에 <국제정치논총> 제42집 제3호에 실린 박선원 당시 연세대 연구교수의 논문 '냉전기 한일협력의 국제정치 - 1980년 신군부 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에 따르면, 북한 남침설은 주로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 내각조사실, 아시아친선교류협회, 공안조사처 등에서 나왔다. 이 기관들이 북한 오보의 주된 생산지였던 것이다.
▲ 본문에 인용된 논문 | |
ⓒ 박선원, 한국국제정치학회 |
1994년에 장수근 서울신문사 통일안보연구소 연구위원이 <저널리즘 비평> 제14호에 기고한 '94 북한 관련 보도의 메카니즘 분석: 정보원의 폐쇄성으로 남발되는 추측성 오보'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94년 7월 14일자 '서방은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언론들의 보도 행태와 관련, 일종의 양심선언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언론이 북한 정세에 관해 수많은 보도를 하고 있으나 미국 언론과 심지어 미 정부까지도 북한 안에서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거의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누구도' 북한 속사정 아는 데가 없다, 보도에 신중해야
이 글이 나온 1994년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미국 정부는 북한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 미국 위성이 포착할 수 있는 범위에서 북한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정도다. 지금 미국은 코로나19 환자가 한 명도 없다는 북한 정부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처럼 미국정부도 잘 모르는 북한 속사정을 일본 정부가 훤히 꿰뚫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1980년 당시의 일본 정부에서는 북한군 내부 동향에 관한 정보가 거의 실시간급으로 나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허위 정보를 양산했던 것이다. 한반도 냉전을 지지하는 친미 정권이 한국을 계속 통제하고 한·미·일 3국 수구냉전세력이 계속해서 이익을 누리기를 희망하는 동아시아 정치권력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한국 언론의 북한 오보 양산에 영향을 줬던 것이다.
이처럼 북한에 관한 오보는 북한에 관한 정보량의 부족이나 언론의 상업주의 및 무책임과 더불어 한반도 긴장를 유지하려는 동아시아 냉전세력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양산되고 있다. 이는 북한 오보 관행을 바로잡는 과정이 언론 개혁을 위해서뿐 아니라 한반도 및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도 긴요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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