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CSIS)는 다르푸르 사태를 최초의 '기후전쟁'으로 꼽은 바 있다. 하지만 다르푸르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기후변화는 기상이변, 폭염과 가뭄, 물 부족과 식량난, 해수면 상승을 불러온다. 살 곳을 잃은 이들은 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되고,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캐서린 매치 연구원팀은 20세기의 무력충돌 중 최대 20%가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극한기후에 의해 일어났고, 21세기 들어 그 영향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기후변화가 국제적인 분쟁과 갈등을 낳고 있다.
미국 등의 국가는 이미 기후변화를 중요한 '안보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2014년 <기후변화 적응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기후변화를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닌 눈앞에 닥친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였고. 2019년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에서 나온 보고서는 현재 과학계의 전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면서 "전시 수준의 비상 자원 동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안보의 관점에서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군사력 강화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국경 지역 경계를 강화하여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의 이주를 막을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군사적 방법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제적인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 곧 기후변화 자체에 대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군사적 방법이 위험한 것은, 군대 자체가 바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미국 브라운대 왓슨 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전쟁 프로젝트의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미군은 단일 조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소비하고,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한 해 동안 미국 국방부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5900만 t에 달하며 이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의 1년 치 온실가스 배출량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한편 '국제적 책임을 다하는 영국 과학자들'은 영국 국방부는 2016-17년 동안 320만 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고, 이는 아이슬란드의 탄소배출량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군사활동은 기후변화의 원인이자 주범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로 인한 분쟁을 막기 위해 군사적 수단을 강화하는 것은 막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기후변화의 악화를 가져올 뿐이다.
▲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아파치 레인지에서 열린 주한미군 2사단·한미연합사단의 최고 전사 선발대회에서 미군 장병이 부상자 모형을 끌고 오르막을 달리는 테스트를 받고 있다. 2018.4.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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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하지 않는 군사 부문 탄소 배출량
세계 많은 국가에서는 '안보'상의 이유로 군사 부문 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각국이 유엔에 제출하는 배출량 통계에 포함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1997년 발효되었던 교토 의정서 체제에서는 군사활동의 배출량은 자동면제 대상이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는 군사 분야가 자동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군사부문 배출량을 감축할 의무도 명시하지 않았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의 온실가스 국가배출량 통계에 군사 부문의 배출량을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군사 부문 배출량이 정확히 포함되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또한 공공부문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도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군사 분야를 제외하고 있다. 배출량 통계조차 없다면,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도 없다는 의미다. 결국, 군사 부문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대응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셈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발전, 산업, 수송 등 각 분야가 가능한 한 빨리, 가능한 한 많은 양의 감축을 해야 한다. 군사 분야라고 예외일 수 없다. 더군다나 한국이 탄소 배출 세계 7위, 군비지출 세계 10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렇다.
군사 부문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사회적 자원을 빼앗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많은 공공재원이 투여되어야 한다.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재생에너지 확충을 비롯한,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민을 지원하는 것, 산불, 태풍,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으로부터 보호책을 마련하는 것 등 사회시스템의 전환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군사비에 비해 기후대응 예산은 턱없이 적다.
2016년 전 세계의 기후재정은 전 세계 군사비의 1/12에 불과하다. 미국 정책학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의 <전투 vs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미국의 기후예산이 210억 달러인 반면 국방예산은 무려 5880억 달러에 달한다. 20배가 넘는 차이다. 한국은 어떨까? 2019년 기준 한국의 국방예산은 46.7조 원이었으나, 환경부의 기후변화대응 예산은 792억 원에 그쳤다. 국토부의 128억 원, 농림축산식품부의 242억 원을 다 합쳐도 1162억 원에 불과하다. 국방예산의 1/400에 불과하다. 기후위기의 시급성에 비춰볼 때, 무책임, 무대응에 가까울 정도의 예산 배분이다.
사실 현재의 기후위기를 초래한 화석연료 중독의 경제체제는 애초부터 군사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 산업화 이후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20세기 이후 많은 전쟁이 석유라는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벌어진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중동이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석연료를 손에 넣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수행을 위해 더 많은 석유를 소비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또 전쟁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하게 된다. 기후 위기를 유발한 현재의 경제 시스템, 지구자원의 착취에 기반한 문명은 군대의 도움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결국,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평화운동과 지구온난화에 맞선 기후 운동은 함께 만나야 한다. 군사주의는 기후변화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원인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요청은 코로나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위협과 싸우기 위해, 지금 전 세계는 군비를 줄이고,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야 한다.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 세상과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상은 함께 가야 한다. 평화를 지키는 것이 곧 기후위기를 막는 길이며, 기후위기 대응이 평화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정책언론팀장이 작성했습니다. 참여연대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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