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신헌법(維新憲法)’을 공포한 박정희 대통령은 위헌적 계엄령을 발동하고, 국회 해산 및 비상조치 아래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1972년 12월 27일 유신헌법을 통과시켰다. [이미지 출처 : 프레이저 보고서 유튜브 켑처]
▲ ‘유신헌법(維新憲法)’을 공포한 박정희 대통령은 위헌적 계엄령을 발동하고, 국회 해산 및 비상조치 아래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1972년 12월 27일 유신헌법을 통과시켰다. [이미지 출처 : 프레이저 보고서 유튜브 켑처]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전 국민의 ‘독재’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과거 정권들은 계엄과 군정 통치로 독재를 실시했고 대한민국은 암울한 현대사를 보냈다. 국민의 피와 눈물로 쌓은 민주주의의 탑이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분노를 일으켰다.

윤석열은 독재를 위해 처음에는 검찰을 이용했고, 거부권 통치로 입법권을 마비 시켰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다.

이승만 계엄 : 독재의 수단이 된 계엄

1948년 대한민국 사상 첫 계엄령이 선포된다. 해방 이후 단독 선거를 반대하는 제주 4.3 민주항쟁이 발생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이승만은 10월 여수와 순천, 11월 제주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한창 전쟁 중이던 1952년에도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전쟁 때문이 아니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고, 재선을 위한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국회를 경찰과 군인으로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이승만은 결국 제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장기 집권했다.

박정희 유신 계엄: 독재의 시작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국가 위기"를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는 남북 간 긴장과 경제 위기를 이유로 내세워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 개정을 강행했다. 유신 체제는 긴급조치권을 통해 반대 세력을 철저히 배제하며 독재 권력을 공고히 했다.

계엄령 선포 이후 언론은 정부의 통제 아래 놓였고, 주요 대학과 시민 단체의 활동은 전면 금지되었다. 반대 의견을 표출한 시민과 정치인들은 체포와 고문을 당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회의원의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선출했다. 국회 해산권, 법관 임명권, 법률 거부권 등 그야말로 대통령이 3권 위에 군림하고, 연임 제한을 없애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전두환 계엄: 군부독재의 폭력

1979년 12.12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 독재를 이어가기 위한 친위 쿠데타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은 정치적 혼란을 틈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 계엄령의 가장 참혹한 결과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이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저항했으나, 군 병력은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전두환이 12.12쿠데타에 동원한 9사단은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를 받는 부대다. 미국은 광주를 진압하는 부대로 전두환의 친위부대가 아닌 20사단을 지정했다. 1980년 8월,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군사정권을 지지할 것이라고 직접 밝혔다.

▲ 5.18항쟁 당시 계엄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광주 시민들.[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5.18항쟁 당시 계엄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광주 시민들.[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윤석열 계엄 : 2024년에 일어난 친위 쿠데타 시도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시민과 광장의 힘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내란 음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찰은 국회 출입을 막고, 군인들은 국회의사당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윤석열은 계엄을 통치권 행사로 포장하고, 내란에 동조한 국민의힘은 여전히 큰소리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거부권 행사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내란 동조자인 한덕수 권한대행이 ‘과도 정부’라며 옹호하고 있다.

계엄의 공통된 본질: 독재 통치 유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로 이어지는 계엄은 모두 "위기"라는 명분 아래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시민들을 총칼로 위협하고, 국민과 법 위와 군림하려는 발악이다.

우리 역사는 독재와 억압을 극복하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계엄령이 여전히 권력의 도구로 활용된 것은 크나큰 충격이다. 국민의힘은 ‘트라우마’ 운운하며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지금은 내란 사태를 정쟁으로 변질시켜 물타기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국민은 잘못된 권력을 가만두지 않는다.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내란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윤석열과 국민의힘 일당이다.

 한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