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주선원으로 일했던 중국인 ㄱ씨(47)가 지난 1월12일 부산 자갈치시장 어귀에 정박한 고기잡이배를 바라보고 있다. 2009년 선원비자를 받고 한국서 처음 탔던 배다.
“겁납니다, 바다.”
60대 최한길씨(가명)는 30년차 어선원 노동자다. 제주 앞바다에서 고등어잡이가 한창이던 1월 초,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잃었다. 선체의 철골에 부딪혀 6·7번 갈빗대가 그대로 부러졌다. 지난 1월 부산의 한 병원에서 만난 그는 살구색 복대를 차고 병상에서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이전에도 다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최씨는 “배 타고 안 다치는 사람 어딨습니까. 당해내질 못해예, 바다 모른다니까”라고 답했다. 줄일 수 있는 산업재해를 ‘뱃사람의 운명’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머리 쪽이 아니라 다행이었지 만약 머리를 부딪쳤으면 즉사”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이 26일 수협중앙회에서 제출받은 어선원재해보상보험 통계 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매년 140명가량의 어선원이 사망(실종 포함)했고, 다치거나 병든 이들은 연평균 4000명을 웃돌았다. 2.6일에 1명꼴로 사람이 죽고, 하루에 10명 이상은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한 것이다. 하지만 어선원은 산재보험법이 아니라 어선원보험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산재 통계에서도 빠져 있다.
지난 2년간 고등어잡이 배에서 일한 한민수씨(39·가명)는 사고가 가장 자주 발생하는 양망기(그물 끌어올리는 기계)를 설명하면서 “돌아가는 기계에 조금이라도 끼이는 순간, 이미 사람은 형체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다 일… 개인적으로는 정말 말리고 싶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어업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군 중 하나로 꼽는다. 예측 불가능한 바다, 일단 출항하면 누가 다쳐도 쉽게 뭍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배,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이다. 하지만 연간 140명이라는 사망자는 어업의 특수성뿐 아니라 어선원의 안전을 사각지대에 방치해온 한국적 특수성이 맞물린 결과다. 캐나다의 어선원 사망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간 연간 사망자 수는 10명가량으로 유지됐다. 캐나다 전체 어선원 규모가 4만6000명으로 한국(6만여명)보다 적은 것을 감안해도 엄청난 차이다.
한국에서는 바다 위 산재 소식이 좀처럼 뭍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사회적 관심을 모아 개선할 여지도 없는 셈이다. 매년 나빠지는 업황과 늘 빡빡한 인력상황은 오늘 다친 사람에게 내일 다시 그물을 던지게 한다. “작업 환경개선, 안전교육, 재해예방을 위한 법제 정비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특히 재해율이 높은 것”(박상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촌어항연구실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은 지난 1월부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국내외 선원 노동자들을 병원·숙소 등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바다’라는 특수한 공간 탓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어업 산재의 심각성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배 한 번 돌리면 몇 억 손해라는 말에…다쳐도 참고 버텨”
한씨는 최근 ‘하선’하기로 했다. 뱃일을 그만둔다는 뜻이다. 일하다 입은 부상으로 통원치료 중인 한씨에게 선사는 출항을 이틀 앞두고 다시 승선을 지시했다. 한씨가 “아파서 못 가겠다”고 했지만, 선사는 “일단 배 타고 나갔다가 돌아와서 치료하라”고 권했다. 한씨는 “끝내 못 간다하이 하선 처리한다카대요. 잘리는 기라. 아픈 사람한테 이란다니까”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초 투망을 위해 닻을 내리다 4번째 손가락이 빨려들어가 뼈가 산산조각 난 40년차 선원인 김정현씨(66·가명)의 손. 부산 | 이효상 기자
■ 다쳐도 못 들어와…부상의 악순환
손가락 골절로 손 못 쓰니
출렁일 때마다 넘어졌고
결국 왼쪽 팔꿈치도 깨져
무릎 인대 찢어진 후 뭍으로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연달아 4차례 다쳤다. 처음은 오른손 중지를 다친 작은 부상이었다. 하지만 한 번 다치자 이곳저곳이 잇달아 고장났다. 부상 당시 서해상에 있던 배는 육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총 여섯 척으로 구성된 고등어잡이 선단은 조업 비용으로만 한 달에 8억~10억원을 쓴다. 일정한 어획량을 확보하기 전까지 바다를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한씨는 “내 하나 다쳤다고 들어가면 몇 억 손해라고 하니까, 바로 못 들어온다”고 했다.
배는 한씨가 다친 지 5일여 만에 태풍을 만나 평택항에 입항했다. 잠시 들른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손가락은 이미 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휴식은 짧았다. 태풍이 지나가고 배는 다시 출항했다. 한씨도 간단한 깁스만 하고 배에 올랐다. 그는 “싫으면 내리라고 하는데 일자리를 잃을 수 없으니까 일했다”고 했다.
고등어잡이 선단은 어군을 찾아 그물을 던지는 본선 한 척과 불빛을 비춰 고등어를 유인하는 등선 두 척, 잡은 고등어를 뭍으로 운반하는 운반선 세 척으로 구성된다. 본선에 탄 한씨는 선단의 수장인 어로장이 물고기를 탐지하면 선미에서 대기하고 있다 가장 먼저 그물을 던지는 일을 했다. 그물의 출구인 선미는 바다를 향해 트여 있다. 난간이나 안전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배에 들이친 파도로 바닥은 미끄럽고 달리 부여잡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한 손을 제대로 못 쓰는 한씨는 몇 번이고 넘어졌다. 조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한씨의 왼쪽 팔꿈치는 뼈가 깨져 있었다.
선단은 고등어의 성장기인 7월부터 산란이 시작되는 이듬해 4월까지 조업한다. 이 중 9월부터 1월까지가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성어기다. 조업을 할 때는 음력 19일에 출항해 다음달 음력 14일에 돌아온다. 25일을 바다에서 생활하고 5일간 육지에서 쉬는 셈이다. 한 선단에 속한 70여명의 선원에겐 모두 각자의 일이 맡겨져 있다. 누군가를 대신해 갑자기 25일간 바다로 떠날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고, 성어기에 일을 가르칠 여력도 없다. 한쪽 손과 한쪽 팔을 다친 채 한씨는 또다시 배에 올랐다.
출항 이후 한씨는 몇 차례 더 넘어지면서 무릎 인대가 찢어졌다. 한 주 뒤에는 그물을 배에 고정하는 줄을 잡아당기다 허리를 삐끗했다. 그날 새벽 유난히 파도가 심해 몸이 긴장을 했고, 그 상태로 힘을 쓰다 탈이 났다. 무릎을 다친 뒤 다리는 한동안 감각조차 없었다. 그제야 한씨는 인근에 있던 선사의 다른 배를 타고 뭍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한씨는 이달 중순까지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는 “바다에 계속 나가 있으면 다른 일을 할 생각도 못하고, 힘들든 위험하든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통영 앞바다 어선에서 일하다 양망기에 끼어 발목이 잘린 베트남 이주선원이 이송되고 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연합뉴스
■ 고령자·이주선원이 채우는 일터
40년간 큰 사고만 5~6번
베테랑도 “빙시돼부렀어”
반복된 산재서 벗어나려면
산재를 당하는 방법뿐…
어선에서 보기 드문 30대 선원 노동자가 떠난 자리는 60~70대 노장들과 이주선원 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2019년 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연근해어선을 타는 국내 선원 1만3982명 중 5593명은 60세 이상이다. 전체 선원 중 절반 가까이는 이주노동자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이다. 나이가 많아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터의 위험이 맡겨진 셈이다.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E10 선원비자로 입국한 20대 이주선원 ㄱ씨는 한국에 온 지 고작 3개월 만에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지난 1월 설 연휴 때 만난 그의 팔에는 성인 손바닥 한 뼘 정도로 길게 꿰맨 상처 자국이 있었다. 2개월째 입원 중인 그는 사고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사고 직후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고 직전 양망기 앞에서 다른 선원들과 함께 ‘스탠바이’를 하며 서 있던 것, 갑자기 양망기의 밧줄이 자기에게 날아오는 것을 본 것,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피했지만 자신은 피하지 못한 것 등을 조각조각 기억하고 있었다. “맞고 바로 기절했는데, 눈을 뜨니 배 안이었어요.” ㄱ씨는 저녁에 사고를 당했지만, 배가 다시 육지로 돌아온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2016년부터 한국의 크고 작은 배에서 뱃일을 한 인도네시아 이주선원 ㄴ씨도 지난해 여름 35t 배에서 일하다 다리가 부러졌다. ㄱ씨와 비슷하게, 양망기 근처에 서 있는데 갑자기 줄이 날아와 넘어졌다. ㄴ씨는 “그 기계가 갑자기 왜 (평소보다)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며 “그냥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려 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ㄴ씨 역시 ㄱ씨처럼 바로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날 오전 4시에 배를 탄 그가 사고를 당한 것은 1시간30분 뒤인 오전 5시30분이었다. 이미 바다 한가운데까지 나온 배는 ㄴ씨를 위해 다시 육지로 가지 않았다. 그는 “오전 11시까지 그냥 배에 누워 있었다. 다리가 아프긴 했는데….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참았다”고 했다. ㄴ씨는 지금도 오래 걷거나,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다리가 불편하다.
어선 한 척이 밤늦은 시각에 조업을 준비하고 있다. 고등어·오징어 등 빛에 반응하는 주광성 어종의 경우 밤 조업이 일반적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베테랑 선원의 몸은 어선원 산재 박물관이다. 베테랑이라고 산재를 피할 수는 없다. 오히려 유일한 생계 수단인 배에 오래 남아 있는 한 산재 횟수는 증가한다. 지난 1월 부산의 한 병원에서 만난 선원 양승국씨(67·가명)는 “빙시라, 빙시돼부렀어”라며 자조했다. 지난해 12월 조업 과정에서 배에 줄을 묶다 미끄러지면서 선체에 받혔고 갈빗대 3대가 골절됐다. 군 전역 후 배를 타기 시작한 그는 40년간 뼈가 부러지고 손가락이 절단되는 큰 사고만 5~6번 당했다. 다리 한쪽은 무릎 아래 정강이부터 발목까지 피부색이 다르다. 흑산도 인근 해역에서 일할 때 배 위에서 떨어지면서 “뼈가 전부 다 골절”됐다. 오른손의 손가락 하나는 짧고, 다른 손가락 하나는 심하게 굽었다. 양씨는 “선장이 하도 뜰채그물(잡힌 고기를 운반선에 퍼 올리는 그물) 레버만 잡아주면 된다 해서 철심 박은 채로 또 바다에 나갔다”며 “처음에는 당직도 하지 마라 이카더니, 하룻밤 지나고 나니까 (다른 사람 고생하는 것 보고) 안 할 수가 있으요. 나중에 와서 (치료)해도 굽은 손가락이 안 펴지더만요”라고 했다.
산재는 반복되는 산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 1월 부산의 또 다른 병원에서 만난 40년차 선원 김정현씨(66·가명)는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초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투망(그물을 던지는 것)을 앞두고 닻을 내리다 손을 다쳤다. 닻줄을 감고 푸는 과정에서 빠르게 감기는 닻줄에 김씨의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에 김씨는 별다른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왼손 4번째 손가락 뼈가 산산조각나며 신경도 일순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사람의 뼈를 이식하는 수술이 진행됐다. 붕대를 걷은 김씨의 왼손은 수술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퉁퉁 부어 있었다. 4번째 손가락뿐 아니라 왼손 전체가 부어, 크기가 오른손의 2배는 돼 보였다. 완치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씨는 “손만 안 다쳤으면 10년은 더 탈 낀데”라며 “이제 이래 가지고 본선도 못 타겄다”고 했다.
■ 사고나면 “바다가 험해서”
현장서 몸으로 일 배우는데
안전교육·장비 태부족에
양망기 끼임 등 잇단 사고
대부분 그저 ‘바다가 험해서’
많은 어선원이 현장에서 일하며 ‘몸으로’ 일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어선원의 재해는 개인의 부주의나 ‘바다’라는 ‘어쩔 수 없이 험한 작업환경’ 탓으로 돌려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31일 오전 경남 통영시 앞바다 11t 선박에서 베트남 선원(39)이 양망기에 몸이 감겨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선원은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발간한 ‘2019년 어선 사고사례집’에 수록된 사고 유형 상당수는 양망기에 끼임, 로프에 맞음 등이었다. 과거 한국에서 뱃일을 한 중국인 이주노동자 ㄷ씨는 “일을 빨리하면 위험한데, 항상 ‘빨리하라’고 다그치다보니 양망할 때 줄이 팍 끊어져서, 그때 사람이 다치곤 했다”고 말했다. 어선원 재해 중 가장 많이 반복되는 유형이지만 양망기 끼임 사고 등을 막기 위한 안전교육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나마 한국인 선원은 양망기의 위험성을 하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주선원은 다르다. 한국에 오기 전 인도네시아에서 뱃일을 했던 ㄱ씨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사람이 직접 그물을 던지는데, 여기서는 기계가 당기니까…”라면서 “한국에 온 후 (양망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배웠다”고 했다. 하지만 소통이 원활치 않은 데다 익숙해지기 전 현장에 투입되다보니 사고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ㄱ씨는 자신이 사고를 당한 이유가 “제가 조심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해수부가 작성한 ‘2018년 연근해 어선사고 예방대책’을 보면 안전교육 대상을 지난해부터 선주·선장·간부선원 외의 일반 어선원과 이주선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가장 재해에 노출되기 쉬운 일반 어선원, 외국인 어선원에게 이전까지는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해수부는 “일반 선원 교육 확대는 예산 확보에 한계가 있어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고, 외국인 선원 교육 확대는 올해부터 20t 이상에 승선하는 외국인 선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대 초반의 베트남 이주선원 ㄹ씨는 인천에 도착했을 때 잠깐 안전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배에 타서는 따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양망기처럼 자주 쓰이는 단어를 띄엄띄엄 알아듣는 수준으로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같이 일하는 한국 선원들이 진짜 일을 잘한다. 위험한 것을 많이 가르쳐주는데, (제가) 말을 못 알아듣는다. 몸짓으로 하는 것을 보고 알아듣는다”고 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맡긴 연구용역 보고서 ‘어업작업 안전재해예방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 및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어업인의 절반 이상(51.8%)은 외국인 선원들과의 작업 시 ‘언어소통 어려움’에 따른 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4270600045&code=940702#csidx234b8e101e991e485549625c0d0ffa4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