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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곶자왈 팔색조가 환경부 장관에게...우리 집을 지켜줄 수 있나요?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연재 바로가기


 

연달아 세 번의 태풍이 지나간 제주 선흘은 이제 가을이 한 발자국 더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남쪽 섬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한라산 중산간 선흘은 어느 곳보다 빨리 가을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지난 5월 20일 이곳에 도착해 둥지를 짓고 새끼들을 키웠는데, 벌써 남쪽으로 떠나야 시간이 되었네요. 더 추워지기 전에 따뜻한 인도네시아 열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는 수 천 킬로미터를 날아 남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의 천국, 선흘 곶자왈!


 

우리가 매년 여름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키우는 멍중내천 주변은 제주에서도 곶자왈 숲이 잘 보존되어 곳입니다. 이곳에는 용암이 만든 바위들 위로 종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같은 늘푸른나무들과 단풍나무, 서나무, 때죽나무 등 잎이 넓고 키 큰 나무들이 원시 밀림처럼 빽빽이 자라 어둡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마치 비밀의 숲처럼 말이죠. 한라산 중턱에 있어 바닷가보다 비가 훨씬 많이 내리다보니, 골짜기 바닥 곳곳에 항상 물이 고여있어 우리들이 언제든 목을 축일 수 있습니다. 나뭇잎들이 소복히 쌓여 만든 기름진 땅에는 지렁이와 벌레들이 많아 먹거리 걱정 따위도 없지요. 지난번 서울에서 온 방송사 기자들이 여기를 잠깐 둘러보더니, ‘우리나라에 아직 이런 곳이 남아 있냐’고 깜짝 놀라더군요. 우리가 사는 곳이 이런 곳입니다.


 

▲원시 밀림처럼 숲이 우거져 어둡고 습한 선흘 곶자왈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

팔색조! 인간들은 우리를 이렇게 부르더군요. 우리 날개와 등은 녹색과 코발트색으로 빛나고, 머리와 배에는 선명한 붉은 무늬가 있어 무척 화려합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천적들(특히 인간들)에게 들키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적이 거의 없는 숲속 계곡 주변에 나뭇가지와 이끼로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웁니다. 제주에 사는 텃새들과 달리 울음소리마저도 크고 특이해 늘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인간들 눈에 띈다면 조용히 둥지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우리를 평생 한 번 보기 힘들다고 투덜대기도 하죠. 눈 주위에 형광빛 테두리가 있고, 꼬리가 길어 쉽게 눈에 띄는 긴꼬리딱새 친구들도 매년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여름을 보냅니다.


 

▲선흘곶자왈에 사는 천연기념물204호, 멸종위기야생생물2급 팔색조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
▲선흘곶자왈에 사는 멸종위기야생생물2급 긴꼬리딱새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으로 파괴될 우리들의 집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막상 이곳을 떠나려니 여러 감정들이 올라오네요. 내년 여름에도 우리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둥지를 틀고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 여년 전 인간들이 우리가 사는 곳 인근에서 제주 조랑말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을 시도하다가 포기하는가 싶더니, 최근 또다시 포크레인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가끔 보입니다.


 

소문으로 듣자하니 옛날과는 달리 기후에도 맞지 않는 사자, 호랑이, 불곰, 코뿔소 등 맹수들을 데려다가 드라이빙 사파리를 만들고, 대규모 호텔과 글램핑장까지 만든다고도 하네요. 사실이라면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입니다. 요즘 제주에서도 갈 곳이 없어 일부 팔색조 친구들이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 숲에 둥지를 틀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리더군요. 곶자왈에 울리는 포크레인 진동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제 우리도 이곳에서 쫓겨나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장에서 포크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

국제보호지역에서도 보호되지 못하는 우리들!


 

인간들은 참 이상합니다. 우리들에게 멸종위기 야생생물, 천연기념물이라는 딱지를 열심히 붙이고 보호하겠다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서식처들이 눈 앞에서 파괴되는 것은 모른척 하고 있습니다. 곶자왈 같은 서식처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는데도 말이죠.


 

선흘2리는 2007년에 국내최초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2018년에는 세계최초 람사르 습지도시로 지정되어 국제적인 보호지역으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국제보호지역에 제주동물테마파크 같은 난개발이 이루어지던 말던, 책임있는 어느 누구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다들 우리 담당이 아니라고만 할 뿐이죠. 인간들은 이런 딱지들을 그저 환경파괴에 대한 자기 위안으로 삼으려는 것 같아요. 아니면 그걸 핑계로 공무원들의 밥벌이를 유지하거나, 돈벌이로 이용할 생각만 가득한 것 같더군요.


 

전문가들이 우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그래서 좀 알아보았더니 인간사회에는 어떤 개발사업이 주변 생태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전문가들이 조사하고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 제도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5년 전 이 사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도 환경영향평가라는 걸 실시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전문가들이 작성했다던 그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들의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5월말 ~ 8월말 까지를 아예 조사 기간에서 제외했더라구요.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소위 교수, 박사라는 전문가들이 과연 이걸 몰랐을까요?


 

▲2005년 제주동물테마파크 환경영향평가 동물상조사에서는 멸종위기 철새들이 도래하는 여름철(5월말~8월말)이 완전히 제외되어 있다.

올여름에는 주변 마을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우리가 사는 멍중내천 곶자왈을 방문해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찾아와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면 어린 아이들이라도 우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주겠다는 인간들마저 우리가 피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전문가입네’라고 거들먹거리던 분들은 왜 한사코 우리들을 못 봤다고 했을까요? 아니면 보고도 못 본척, 듣고도 모른척 지나가야 했던 무슨 ‘중요한 이유’가 그들에게 있었던 걸까요?


 

▲올 여름 생태조사를 위해 선흘곶자왈을 수차례 방문한,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의 모습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

당신은 우리들의 집을 지켜줄 수 있나요?


 

그나마 다행히 인간사회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우리들을 지켜주기 위해 만든 환경부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환경부는 우리 팔색조들을 포함해, 이곳에 살아가는 긴꼬리딱새, 비바리뱀, 두점박이사슴벌레 등 다른 친구들도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곳에 수장으로 계시는 분이 조명래 환경부 장관님이시니, 간절한 심정으로 인간의 입을 빌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소위 전문가들은 우리들이 뻔히 여기 선흘 곶자왈에서 대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들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우깁니다. 만약 이처럼 전문가들이 거짓말로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를 그대로 받아들여 제주동물테마파크와 같은 대규모 난개발이 이루어진다면, 또다시 우리들은 살아갈 곳을 잃고 멸종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이런 식으로 제주 곶자왈의 30% 이상이 사라져 버렸고, 많은 친구들은 살 곳을 잃었습니다.


 

조명래 장관님! 당신은 어떻게 우리들을 어떻게 지켜 줄 수 있나요? 멸종위기 야생생물들과 서식지를 지키겠다는 장관님의 약속을 우리는 언제까지 믿고 기다려야 할까요? 지금 당장 당신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내년 여름 이곳에서 다시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키울 수 있도록 장관님께서 도와주세요.


 

선흘곶자왈 팔색조의 '통역'을 담당한 글쓴이 이상영 은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 학부모입니다.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3월부터 선인분교 5학년 딸과 중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지 주변에 생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생태조사에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팔색조, 긴꼬리딱새, 비바리뱀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을 대거 발견했습니다. 이 글은 선흘곶자왈을 방문한 팔색조를 의인화 해서 조명래 장관에게 선흘2리 곶자왈을 지켜달라는 편지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2309354334235#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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