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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들의 위수탁계약서가 노예계약서가 된 이유

마트산업노조 “정부,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 권리 보장해야”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20-12-22 17:24:13
수정 2020-12-22 17: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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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마트산업노조 제공 
 
 
 
 
 
코로나19 위기로 대형마트 온라인 주문 물량도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그 부담을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들이 떠안아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용자의 권리만 명시된 위수탁계약서로, 배송노동자의 권리는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은 2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온라인배송노동자 착취하는 대형마트 규탄! 노예계약인 위수탁계약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수암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지회장은 “하루 1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중량물로 인한 육체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형마트 온라인주문도 폭증하고 있다. 주문이 폭증하면 마트가 배송노동자들과 협의하여 업무 부담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충분치 않아 그 부담이 그대로 배송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배송노동자들은 건당 배송물량도 늘어나 더욱더 무거운 물량을 배송해야 하는 상황에서, 늘어난 주문량을 처리하기 위해 평소보다 1~2시간 이상 추가로 일하고 있고, 일부 배송노동자들은 쉬기로 한 날까지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노조가 이날 공개한 사진을 보면, 온라인배송 차량에 배송해야 할 물량이 가득 찼다. 이 중에는 딸기·귤 등 25개 상자 또는 컨테이너 5개 분량을 한 집에 배달해야 하는 경우 등도 있었다. 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많은 물량을 한 번에 주문 받아서 배송을 해야 해도, 건당 수수료는 똑같다”라고 설명했다. 또 “늘어난 물량 때문에 9시30분에서 10시쯤 출근해서 오후 10시쯤 퇴근하거나 그보다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1회차에 나가는 배송물량
1회차에 나가는 배송물량ⓒ마트산업노조 제공
박스 포장 또한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노조 관계자는 설명했다.
박스 포장 또한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노조 관계자는 설명했다.ⓒ마트산업노조 제공

대형마트 온라인배송노동자가 이같이 업무를 일방적으로 떠안게 된 이유는 ‘불공정한 위수탁계약’ 때문이라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 측은 “위수탁계약서에는 사용자의 권리만 있고 노동자의 권리는 찾아볼 수 없다”라며 “언제든지 계약해지가 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배송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정해진 휴일이나 근무일을 대형마트가 마음대로 바꿔도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노조가 제공한 각 운송사의 위수탁계약서를 보면 “단체행동, 파업 등으로 인하여 ‘위임인의 업무 지장이 심각하게 초래되는 경우”, “불법노동조합 설립 또는 노동조합에 산발적으로 가입하였거나 단체행동을 할 징후 및 단체 행동을 하였을 때” 등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까지 계약해지 사유로 정하고 있다.

온라인배송노동자들 위수탁계약서
온라인배송노동자들 위수탁계약서ⓒ마트산업노조 제공

이에 노조 측은 대형마트 측에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형마트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배송노동자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고 협의해야 할 대상으로, 마트 직원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자회견문에서, 노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주문이 나오지 않자, 대형마트는 반강제적으로 무급으로 쉬게 했다”라며 “하지만 최근 온라인주문이 다시 늘어나자, 예정되어 있던 휴일을 없애는가 하면 갑자기 근무일수를 늘려 업무를 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배송노동자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라며 “노동자들은 계약서를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되지만 사용자는 마음대로 어겨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강조했다.

또 “대형마트 배송노동자들은 대형마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여전히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며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잇달아 교섭에 나서라고 하고 있지만, 운송사는 여전히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정부는 실태조사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대형마트와 운송사가 교섭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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