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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없는 ‘5심제’](3)재판의 재판…오판만큼 무서운 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입력 : 2020.12.23 06:00 수정 : 2020.12.23 08:05

 

불확실의 세계 

[헌법에 없는 ‘5심제’](3)재판의 재판…오판만큼 무서운 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헌재의 공권력 감시, 법원은 빠져
‘어쩌면 5심이 가능’한 상황 초래
“법원과 헌재, 합리적 인정 필요”
 

입법·사법 경계 가르기 어려워져
1988년 설계된 사법제도 손봐야
 

아버지는 어떻게 정해질까. 낳아주는 어머니는 확실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민법은 어머니의 배우자가 아버지라고 정했다. 어머니가 혼인 상태가 아니라면 어떨까. 이 아이는 내 자식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아버지다. 이 과정을 인지(認知)라고 부른다. 혼인 외 자녀 출생신고는 보통 어머니가 하지만 아버지가 해도 상관없는데 이때는 인지신고까지 함께 된다.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이 어머니가 혼인 상태가 아니라는 증명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두 명인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아이를 낳은 어머니가 잠적하는 일이 늘었다. 어머니 인적사항을 모르니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출생신고가 안 되니 예방접종도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갔다. 아동수당도 못 받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출생기록이 없으니 버려지고, 불법으로 입양되고, 인신매매 대상이 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2015년 국회가 ‘사랑이법’을 만들었다. 아이 어머니 인적사항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아버지가 가정법원을 거쳐 출생신고를 하게 해줬다. 이 무렵 한국인 남성 A씨는 중국인 여성 B씨와 딸을 낳았다. 결혼하지 않은 사이였다. 그런데 B씨는 중국에서 여권을 갱신해주지 않아 유부녀가 아니라는 증명도 받지 못했다. 출생신고를 못하던 A씨는 사랑이법 소식을 듣고 가정법원을 찾았다. 하지만 법원은 구제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사랑이법으로 불리는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는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라고 돼 있는데, B씨의 신원이 확실했다. 항소심도 신청을 기각했다. 국회가 만든 법이 그렇다는 이유였다.

그러던 지난 6월 대법원이 A씨 신청을 받아줬다. “외국인인 모의 인적사항은 알지만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판결만 헌법재판에서 제외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법을 해석한 것일까, 아니면 법을 만든 것일까.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의회가 법을 만들고, 정부가 법을 집행하고, 법원이 법을 해석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대국가에서 삼권의 경계는 계속 흐려지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행정의 역할이 거대화, 전문화하면서 정부 시행령이 의회 법률을 대체한다. 이런 상황을 의회도 받아들여 중요한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에 위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현상을 작고 느린 의회가 따라잡기 버겁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법원 역할이 급격히 커졌다. 법원 자신도 사법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설정한다. 요즘 대법원은 “법관의 법형성은 변화하는 사회 현실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입법권의 불행사로 인하여 ‘법의 공백’이 발생하였을 때에 사회 현실과 법질서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한 노력으로서 마땅히 사법권에 포함된다”고 보충의견에서 밝히고 있다. 입법과 사법의 경계를 가르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헌법재판은 입법·행정·사법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일이다. 다양한 헌법재판 중에서도 핵심은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이다.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가리는 절차와 공권력이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살피는 절차다. 그런데 우리 헌법재판소법은 공권력 감시에서 법원을 제외했다. 외국에서는 재판 결과를 헌법재판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법원을 제외한 이유는 1988년 헌재법을 만든 의회의 선택, 즉 정치적 결단이다. 법원의 재판은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법원이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는 헌법재판소가 관여하지 못한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하지만 헌재가 개소해 헌법재판을 해보니 입법과 사법이 생각보다 쉽게 나뉘지 않았다.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헌재와 법원 사이에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이에 헌재가 법원의 해석에 일부 관여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법원이 무시했다. “헌재가 법률을 통제하는 체하면서 사실은 재판을 통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국회도 법원도 규범을 만든다 

법률을 통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조문에 위헌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일부에서 말한다. 그게 맞다면 ‘제1호 내지 제4호’라는 조문을 놓고 “제2호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한 헌재 결정(93헌가1)을 거부해야 한다. 헌법재판은 조문(條文)이 아니라 규범(規範)을 심판하는 일이다. 조문은 형식이고 규범은 내용이다. 1980년대 법원은 사죄광고 명령을 자주 내렸다. 근거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중략)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는 민법 제764조다. ‘적당한 처분’으로 법원이 사죄광고를 만들었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헌재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제764조가 법원에 광범위한 권한을 줬다면서 없애거나, 사죄광고를 규범으로 보고 그것만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후자를 헌재가 택했고 법원이 받아들였다. 헌재 출범 직후인 1991년 일이다. 이후로는 이런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에 대한 간섭이라며 무시했다.

이렇게 법원 자신은 입법 영역을 넘나들면서도, 헌재에는 한발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헌법재판에 공백이 생겼다. 의회 단계부터 위헌인 법률을 법원이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에는 헌재가 위헌 무효로 만들 수 있지만, 의회 단계에서는 합헌이던 법률이 법원 적용을 거쳐 위헌이 되면 방법이 없었다. 가령 법원은 노동자의 파업을 형법 제314조 제1항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왔다. 헌법 제33조 제1항이 보장하는 파업의 본질적 속성은 업무방해인데도 이를 처벌했다. 의회 단계에서는 합헌이던 업무방해죄가 법원의 적용을 거쳐 위헌이 된 셈이다. 헌재는 이 문제에 “쟁의행위는 고용주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면서도 “법원이 쟁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2010년 적고 말아야 했다. 더구나 위헌이 의심되는 판결이 드물지 않았다. 법원이 위헌 판단에 서툴다는 뜻이고, 재판이 위헌 상황을 해소하기는커녕 불러온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법제도 재건축 검토할 시점 

헌재가 일정한 판결을 규범으로 인정하고 위헌성을 확인하는 방식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유리할 때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법원이 말하는 이유는 “법원의 해석이 아닌 의회의 입법을 향한 것일 때는 받아들인다”이다. 이렇게 되니 3심제도 아니고 5심제도 아닌 ‘어쩌면 5심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법원 판결에서 규범을 찾아내 위헌으로 판단하는 경우, 헌재가 직접 무효를 선언하기보다 국회에 보내 개정토록 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이에 대해 “법률 개정 결과에 따라 정작 헌법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구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이런 반론에 대해 “엄밀하게 말하면 위헌법률심판은 개인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절차가 아니다. 헌재가 규범에 위헌을 선고한 결과 개인 권리가 보호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라는 재반론이 있다. 더구나 판결에서 추출한 규범의 경우 무효만 가능한 헌재가 정밀하게 다루기 어려운 만큼, 국회가 없앨 것은 없애고 채울 것은 채우는 방식이 옳다는 지적도 있다.

중대한 인권침해를 막으려 만든 제도가 헌법재판이다. 헌법재판 대상에서 법원을 제외한 이유는 재판이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으리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왔고, 이에 헌재가 법체계를 흔들며 해결했다. 언젠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게 됐지만,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까지 생겼다. 잘못된 재판만큼이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재판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법원 판사들은 “소송하고 항소하고 상고하고도 다른 재판을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적절한 시점에서 소송을 끝내고 생활로 돌아가는 게 나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적용되면 위헌” 소송이 시작되면서 재판이 끝나지 않는 사회가 됐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을 거친 원로 법조인들은 “법원과 헌재가 시민을 위해 서로를 합리적으로 인정하면서 가야 한다”고 말한다. 1988년 설계한 사법제도를 재건축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불확실의 세계에 살 수밖에 없다. 헌법에 없는 5심제가 시작됐다.


<시리즈 끝>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230600005&code=940301#csidx9dfe39eec35aae8b4de7c2f841a7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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