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물의 과잉 생산은 기후 위기의 원인 중 하나다. 특히 2014년 유엔 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가축이 대기 중 온난화 가스에 미치는 비율은 최대 51%까지 추정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먹거리를 차고 넘치게 재배했다. 얼마만큼 과잉 생산 했냐 하면, 먹다 남아 쓰레기로 버릴 만큼이다.
농담 같은 쪽파 가격에 적응해야 하는 건 나였다. 동시에 기후 위기 해결에 힘을 보탤 수 있는 것 또한 나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냉장고 파먹기다. 냉장고 파먹기란, 냉장고 속 식재료를 다 먹기 전까지, 다음 식재료를 구매하지 않는 일을 말한다.
양파 한 알, 달걀 한 알,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냉장고 파먹기 훈련이야말로, 기후 위기에 적응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다. 값비싼 식재료를 아껴 먹으니 절약도 되고, 과잉 생산에 일조하지 않을 수 있다. 먹을 만큼 먹기. 이것은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작은 일 중 하나다.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쓰레기가 아니다
|
▲ 가족이 모이면 밥상이 넉넉해진다. |
ⓒ 최다혜 |
관련사진보기
|
문제는 설날이다. 적당히 먹고 덜 버리려면, 애초에 음식을 적당히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설날은 그게 잘 안 된다. 명절 음식을 대하는 가족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먹고 싶은 음식만 준비할 수가 없다. 손이 잘 가지 않더라도 제사상에 올릴 하얀 생선찜은 삼 단으로 올려야 하는 의무감과 치킨에 맥주면 어떠냐는 입장이 상충한다. 먹을 만큼 준비하기도 어렵다. 오랜만의 명절이니 모자라지 않게 푸짐하게 준비하자는 마음과 적게 먹어야 건강에도 좋으니 조금만 준비하자는 마음이 다르다.
여기에 틀린 마음은 없다. 결국, 명절에는 음식이 자주 남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냉장고 파먹기'다. 우리집 냉장고에 있는 한, 우리집 귀한 식재료로 대접해주면 된다. 아무리 남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쓰레기가 아니다.
명절 전, 냉장고 지도부터 그렸다. 냉장고 지도란, 종이 한 장에 냉장고와 찬장 속 식재료를 모두 적은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식재료로 할 수 있는 메뉴까지 적으면 냉장고 속 식재료를 살뜰하게 먹기 쉽다.
|
▲ 냉장고를 다 비운 후(좌) 필요한 식재료를 들였다(우). 모자 쓰고 모자 사러 가지 않기, 냉장고 버전이다. |
ⓒ 최다혜 |
관련사진보기
|
명절 후, 한결 널찍해진 냉장고에 명절 후 남은 음식들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명절 음식들을 소진하기 전까지는 새 음식을 탐내지 않는다. 동그랑땡이 있으면 만두 사러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식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더러, 음식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중요한 살림 기술은 전날 먹고 남은 것으로 다음 날 근사하고 풍요로운 식탁을 만드는 것이다. -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중, 헬렌 니어링 지음
20세기, 헬렌 니어링은 경제 대공황에 맞서 소박한 밥상으로 경제적 자립을 일군 인물이다. 그녀는 밥 짓는 시간을 줄이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고 시를 썼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까지 쓸 수 있던 비결은 간단했다. 물가가 두 배로 올랐다면? 두 배로 절약하면 된다. 그녀는 우아하고 용감하게 절약했다.
헬렌 니어링이 100년 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물가 상승에 절약으로 맞섰다면, 우리도 기후 위기로 인한 2만6800원짜리 쪽파에 절약으로 맞서면 된다. 우리의 냉장고 문에 냉장고 지도가 붙어 있고, 낭비하는 음식 없이 살뜰하다면, 기후 위기와 우리 지갑의 위기에 우리 몫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