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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손소독제 제품들서 '독성물질' 메탄올 검출 첫 확인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입력 : 2021.02.09 06:00 수정 : 2021.02.09 09:39

 

코로나19 확산 이후 시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손소독제 다수에 실명, 신경계 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물질 메탄올이 포함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있는 손소독제 제조공정을 철저히 관리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고영림 교수 등 연구진은 시중에 유통 중인 손소독제 34종을 구매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33개 제품에서 메탄올이 확인됐다는 내용의 논문을 지난달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발표했다. 해외에서는 지난해 메탄올이 포함된 손소독제가 판매 중지되는 사례가 있었지만, 국내에서 다수의 손소독제에 메탄올이 함유됐다고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3월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비치돼 있는 손소독제의 모습. 김영민기자.

지난해 3월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비치돼 있는 손소독제의 모습. 김영민기자.

 

33개 제품 중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물티슈 내 메탄올 함량 기준치인 20ppm이 넘는 메탄올이 검출된 제품은 14개로 집계됐다. 메탄올 농도가 가장 높은 제품의 경우 기준치의 28배가 넘는 567.02ppm이 나왔다. 연구진이 이번 분석 결과를 물티슈 기준치와 비교한 것은 국내에 손소독제 메탄올 함량에 대한 기준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2017년 식약처는 이 기준치를 넘은 메탄올을 함유한 물티슈를 판매 중지하고 회수 명령을 내렸다.

손소독제에 든 메탄올 성분은 눈이나 입, 피부로 흡수되거나 강한 휘발성으로 인해 코로 흡입될 수 있다. 연구진은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서 손소독제를 반복적으로 수십회 사용할 경우 미국 정부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의 단시간 노출허용기준(STEL)인 250ppm의 10% 정도의 메탄올에 노출된다고 밝혔다. 이는 체중이 적고 호흡량이 많은 유·소아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충분한 양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만성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질의 위험성은 해당 물질이 지닌 유해성(독성)과 얼마큼 자주 해당 물질에 노출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손소독제에 든 메탄올의 함량이 매우 낮더라도 메탄올의 독성이 매우 높고 많은 시민들이 빈번히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많은 이들이 메탄올로 인한 건강 악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들은 낮은 농도에서도 어른보다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무색의 액체인 메탄올은 매우 독성이 강한 물질로 식약처는 지난해 9월 배포한 ‘손소독제 안전사용을 위한 질의응답’ 자료에서 메탄올에 오염된 손소독제를 사용할 경우 중독 위험이 있으며, 삼키는 경우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식약처는 이 자료에서 “메탄올에 노출되는 경우 구토, 시력 흐림, 실명, 발작, 신경계 손상 및 사망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탄올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메탄올은 다른 물질을 녹일 때 사용하는 유기용매로 자동차 워셔액, 부동액, 향수, 포름알데히드 용액, 페인트 제거제, 세제, 살균제, 소독제 및 공업용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의 메탄올 성분이 확인된 손소독제 77종을 회수 조치했고, 메탄올이 든 손소독제를 마시고 최소 7명이 사망했다. 또 3명은 중태, 3명은 시력 감퇴, 1명이 영구실명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한 가정에서 소독을 위해 메탄올 희석액을 실내에 분무했다가 가족 전체가 구토, 어지럼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2016년에는 인천의 한 사업장에서 파견노동자들이 메탄올에 노출돼 실명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한국소비자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유통되는 15종의 손소독제를 분석한 결과 메탄올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당시에도 메탄올이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량한계 미만의 메탄올만 검출되었기 때문에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량한계란 어떤 물질에 포함된 성분의 양을 분석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최저의 양이나 농도다. 학계에서는 정량한계 미만으로 검출되었을 경우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의 낮은 수치라고 여겨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제품의 경우 같은 제품 내에서도 특정 물질의 농도가 크게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5일 현재 1627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확인된 가습기살균제의 경우 유독물질 농도가 같은 제품끼리도 최대 19~32배가량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번 손소독제에서 검출된 메탄올은 업체들이 에탄올 대신 고의로 넣은 것이 아니라 제조공정에서 생긴 불순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메탄올이 검출된 모든 제품에서 함량은 1% 미만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을지대 연구진은 논문에서 정부는 손소독제의 메탄올 함량 기준을 마련하고, 제조업체들도 메탄올이 함유되지 않도록 원료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손소독제를 오남용하지 않도록, 특히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사용방법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 소독제 용기. 어른이 쓰기 쉽도록 대개 지면에서 1m 높이에 설치되다보니 아동들의 눈에 소독제가 들어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제공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 소독제 용기. 어른이 쓰기 쉽도록 대개 지면에서 1m 높이에 설치되다보니 아동들의 눈에 소독제가 들어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제공

국내외 전문가들은 메탄올이 든 손소독제뿐 아니라 에탄올만 포함된 제품도 오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빌딩이나 상점 입구,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손소독제를 비치해 놓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FDA는 물과 비누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해 6월 배포한 메탄올 함유 손소독제 관련 주간리포트에도 알코올을 기반으로 한 손소독제의 섭취를 방지하도록 지속적으로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포함돼 있다.

어린이들의 경우 에탄올만 들어있는 손소독제 역시 어른의 보호하에 사용해야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연구진은 지난달 말 자국의 독성물질통제센터(PCC) 자료를 분석해 손 소독제에 의한 아동의 안구 손상사고 비율이 한 해 사이 7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로스차일드 재단병원 등 연구진은 손 소독제에 의한 아동의 안구 손상이 늘어난 건 공공장소에 손 소독제가 비치되는 일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공공장소에서 손 소독제 때문에 아동이 안구를 다친 사례는 모두 63건이었는데, 2019년에는 한 건도 없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6월 대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비치된 손 소독제로 인해 5세 아동이 눈에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공장소에서 손 소독제가 어른이 쓰기 편한 위치에 비치되는 일이 많아 이를 사용하던 아이들의 눈에 튀는 사고 위험이 있다. 손 소독제에는 에탄올이 60% 이상 들어가는데 에탄올이 안구에 접촉하면 각막의 상피가 벗겨지고, 극심한 고통을 유발한다.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식약처는 “어린이는 소량의 손소독제를 마셔도 알코올 중독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손소독제를 어린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어린이가 사용 시 보호자가 주의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또한 “유아는 피부가 약하고 민감하기 때문에 알코올 제제인 일반적인 손소독제 사용 시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어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090600011&code=610103#csidx7bcdb17c05ce87a86783d170bb7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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