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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쏘아올린 기본소득, 불확실한 내 삶 지켜줄까

 

[흑백 민주주의⑧]코로나가 쏘아올린 기본소득, 불확실한 내 삶 지켜줄까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입력 : 2021.02.25 06:00 수정 : 2021.02.25 06:00
 

ㆍ기본소득, ‘복지’를 묻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경험이 마중물로
모두에 무조건…정치권서 뜨거운 이유
단순 분배보다 복지 체계로 접근 필요
재난으로 예측 불가한 위험에 처할 때
공공부조 형식으로 ‘안전망’ 기능해야
 

서울 4년제 대학 중국어학과 졸업반인 이현경씨(25·가명)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카페 아르바이트는 주 4회에서 2회로, 근무시간은 반 이하로 줄었다. 과외도 끊겼다. 대신 온라인 튜터링 사이트를 통해 홈스쿨링을 하는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얼마간의 돈을 벌고 있지만 교재값이나 생활비, 월세를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경기 수원시에서 4년간 운영하던 PC방을 올해 초 접고 배달원으로 나선 신주원씨(38·가명)는 “PC방이 집합금지업종에 지정되면서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입임에도 월세, 업그레이드비 등 고정비용은 계속 빠져나갔고 나중엔 아르바이트생 퇴직금도 겨우 지급했다”며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몇번이고 잠에서 깰 정도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은 기존 사회복지의 울타리가 지켜내지 못하는 자영업자 및 불안정 노동자들을 낭떠러지로 밀어내고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전국상가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지난해 4분기에 문 닫은 상가 점포는 총 14만3403곳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엔 23만여점포가 사라졌다. 통계청 지난해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청년의 체감 실업률은 25.1%로 역대 최고였다.

대선 국면을 앞두고 복지 체계 개편 논의가 정치판을 달구고 있다. 코로나19 쓰나미가 서민들을 휩쓸면서 기존 정규직, 근속 노동자 위주로 짜인 사회보장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급진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특히 기본소득의 경우 지난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지급·사용 경험이 마중물이 돼 단연 관심의 대상이다.

기본소득이 뭐길래 

“엄마가 난생처음으로 동네 빵집에서 5000원이 넘는 마카롱 세트를 사왔어요. 평소엔 단팥빵도 꼭 떨이 시간에만 사오던 엄마가요.” 이선영씨(31)는 지난해 5월 무렵 재난지원금을 받았을 당시를 즐겁게 회상한다. 정기적 지급도 아니고, 생활비를 전부 댈 만큼 큰돈도 아니었지만 얼마간의 현금은 힘들어진 가계와 자영업계에는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지난해 12월 한국개발연구원은 긴급재난지원금 효과로 인해 신용·체크카드 소비가 약 4조원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민간 소비 회복에 기여했다고 발표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 정관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공유부(common-wealth)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서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소득”(제2조)을 뜻한다. ‘공유부’란 빅데이터나 축적된 지식, 자연환경 등과 같이 개인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자원을 의미하고, 이에 대한 개개인의 정당한 몫을 주장하는 것이 기본소득론의 출발점이다. 정관에 포함된 기본소득의 5대 조건이 모두 충족된 형태로 현실에 구현되긴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무조건성·보편성 등을 기본소득의 핵심 가치로 꼽고 있다.

기본소득이 정치판에서 ‘뜨거운’ 이유는 명확성 때문이다.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체계는 일반인들이 절차나 자격조건 등을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지만 기본소득은 명료하다. 전 국민 지급을 원칙으로 하기에 자격 조건이 따로 없고,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현실적 문턱인 ‘자격 조건’이 사라지면서 모든 유권자들이 정책 당사자가 된다. 시민들은 지난해 재난기본소득, 재난지원금 등의 이름으로 한 차례 혹은 그 이상 유사 기본소득을 받은 경험이 있다. 중산층에 소구하는 드문 복지정책이라는 점도 대선 주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그간 중산층들은 의료보험 등 넓은 의미의 사회보장체제 테두리 안에 있긴 했지만, 직접적 지원 등에선 상대적으로 소외됐다. 재난지원금은 납세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던 중산층들을 복지 제도의 ‘직접적’ 수혜자로 만들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지속되고 있지만, 문제는 기본소득 본뜻이나 복지 체계 전체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보다는 단발적 공방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16년 성남시장 시절 최초로 ‘청년배당’을 시행하고, 2017년 대선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내거는 등 그간 꾸준히 기본소득 모델을 실험하고 주장해왔다. 경기도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2차 재난기본소득(인당 10만원) 실시를 확정, 지난 1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경기도는 기존 공공임대주택에 기본소득 개념을 더한 ‘기본주택(30년 이상 장기임대주택)’ 모델도 주장한다. 반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알래스카 빼고 하는 곳 없다”며 기본소득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10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차라리 허경영처럼 1억원을 주겠다고 하라”고 힐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전 국민 위로금’ 지급을 거론한 것에 대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2일 “대통령이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겠다는 선심성 이야기를 하는 예를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욕구와 문제의식들이 있는데 이를 적절히 담아낼 수 있는 사회적 의제, 언어가 없다보니 기본소득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기본소득이 복지 논의를 납작하게 만드는 단어가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성숙도에 따라 기본소득이 작동하는 맥락이 다를 듯한데 우리는 아직 분배에 대한 생각도 잡히지 않은 사회”라며 “세금을 쓰는 방향 등의 논의가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이뤄지다보니 자칫 현금성에 집중해 분배율을 더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고 말했다.

재원은 어디서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재원 부족으로 기존 사회복지 체계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가 복지예산 역시 한정된 재원 내에서 꾸려가야 하는데 국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적은 액수라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해온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재정에 대한 우려가 ‘만들어진 공포’일 수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 ‘복지병’을 내세우며 복지예산을 줄였던 마거릿 대처는 ‘국가 경제도 가정 경제와 같아서 아껴쓰지 않으면 파산할 수 있다’고 했다”면서 “돈이 없어서 (복지 정책이) 안 된다고 하는 것도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강남훈, 남기업, 금민 등 기본소득을 주장해온 학자들은 시민기본소득세, 토지보유세, 탄소세 및 빅데이터세 등의 공유부 추징을 통한 증세안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기본소득은 마치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모두 타파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부터 기본소득을 주장해온 전문가, 학자들은 기본소득을 만능 대안으로 여기는 것에 비판적이다. 단번에 이상적인 형태의 기본소득을 구현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뿐더러, 사회복지 체계 전반에 대한 논의 과정도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 복지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건 이미 10~20년 전부터였지만, 그 한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며 “지금 상황은 기존 복지 체계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다 이를 (기본소득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로 발화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본소득론 

코로나19 이후를 사는 이들에게 기본소득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김만권 참여연대 참여정치연구소장은 정기적으로 소액을 분배하는 기본소득 모델 대신 생애주기별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기초자산제를 주장해왔다. 김 소장은 “산업혁명 이후 노동 중심적 분배의 근간이 된 ‘능력주의’는 최근 외려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의 공통적인) 핵심은 노동 중심적인 부의 배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부터 한국의 중산층조차도 자신들 지위의 안전함, 전망에 대해 불안해했다”며 “과거엔 많은 이들이 사회복지가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누구나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누구나 일시에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고, 부의 분배는 노동의 대가가 아닌 분배 정의와 권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맥락이다.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기본소득 도입이 ‘사회 복지망을 더 촘촘히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서 교수는 “통상 개인이 감당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사회적 위험을 공공 차원에서 부조하는 것을 ‘사회보험’이라고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계산 불가능한 위험’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게 됐다”며 “불확실한 위험에 대처하는 기본소득을 1차, 소득 비례 방식의 기존 사회보험을 2차로 한다면, 기본소득과 기존 사회보장제도가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 실험,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기본소득과 관련된 국가 차원의 정책 혹은 실험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돼 왔다. 각 사례들은 기간이나 금액, 대상 선정 과정에서 차이가 존재하고, 아직까지 이론적으로 완벽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 대표적으로 꼽히는 주요 관련 참고 사례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미국 알래스카주

지급 기간 : 1982년~현재
대상 : 배당 신청일 이전 알래스카주 1년 이상 거주민
전체금액 : 해마다 다름. 2019년 1606달러(약 178만원), 2020년 992달러(약 110만원)
집행 주체 및 재원 : 알래스카 주정부,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의 25%로 조성한 기금
특이사항 : 주정부 차원에서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보편 지급. 82년 당시 연 35만원 수준으로 지급 시작했으며, 해마다 금액은 변동. 지급 금액이 충분하지 않아 기본소득으로 분류되지 않기도 함. 해당 기금 시행으로 농촌의 원주민, 노인의 빈곤 감소 효과 나타남.
 

핀란드

지급 기간 : 2017년 1월~2018년 12월
대상 : 복지수당을 받는 25~28세 국민 중 2000명 무작위 선발
금액 : 월 560유로(약 75만원)
집행 주체 및 재원 : 핀란드 정부
특이사항 : 좌·우파 세력이 합의. 전국 단위 무작위 통제실험 방식을 채택한 최초의 기본소득 실험. 법안 심의 과정에서 ‘참여와 고용을 촉진시키기 위함’이라고 명시. 실험 참여자들은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느꼈으며 사회 참여와 직업 선택의 자율성 증가. 다만 2018년 1월 ‘활성화 모델’(적극적 구직 노력 없을 경우 실업급여의 약 4.6% 삭감) 도입 이후 정확한 실험 결과 도출이 어려워짐
 

캐나다 온타리오주

지급 기간 : 2017년 7월~2019년 3월
대상 : 4000명(18~64세 시민 중 연소득 일정 금액 이하 가구)
금액 : 연 최대 1만6989캐나다달러(미혼 약 1500만원, 부부 약 2070만원)
집행 주체 및 재원 : 캐나다 온타리오주
특이사항 : 근로소득의 50%가 기본소득에서 공제되는 ‘부의 소득세’를 채택해 엄밀한 의미에서 기본소득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무조건 지급된다는 점에서는 기본소득 의의를 실현. 실험 결과 참여자의 80%는 건강상태 개선, 66%는 가족관계가 개선됐다고 응답. 3년 프로젝트로 예정됐으나, 보수 성향 주지사 당선으로 1년 만에 중단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

지급 기간 : 2018년 6월~2019년 10월
대상 : 사회보장급여 수급 250명 대상
금액 : 개인 월 972유로(약 130만원), 부부 월 1389유로(약 186만원)
집행 주체 및 재원 : 위트레흐트시
특이사항 : 위트레흐트시. 흐로닝언 등 네덜란드 각 지자체에서 동일한 프로토콜 및 구성으로 동시다발 이뤄짐. 정부가 강조한 ‘노동시장 재진입 의무(PA)’ 조건을 두고 암스테르담 등 일부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대립. 다양한 실험군으로 나눠 근로 의욕 및 복지 효과를 관찰한 결과, 수급 단위의 노동 참여율 및 사회참가, 웰빙 등의 지수가 모두 높게 나타남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2250600005&code=920100#csidx7a82f4d5d434492bf315ad41c4e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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