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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성 칼럼]‘코인’으로 갈아탄 ‘영끌’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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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성 칼럼]‘코인’으로 갈아탄 ‘영끌’
 

버블의 다른 이름은 탐욕이다. 본질 가치가 없는 재화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버블은 커진다. 내 뒤에 누군가가 내 물건을 비싸게 사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에 가능하다.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은 기대를 더욱 부풀린다. 내 물건을 사줄 ‘더 큰 바보’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의 순간이 지나면 가격은 폭락한다. 결국 자신이 바보였음을 인증하게 된다. 버블이 낀 시장은 도박장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박종성 논설위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귀족이나 자산가들이 양파 뿌리같이 생긴 화초의 알뿌리에 열광했다. 이른바 튤립 버블이다. 튤립은 유럽에는 없던 꽃이었다. 오스만제국에서 들여온 튤립은 상류층의 사치스러운 취미가 되었다. 그러다 희귀하거나 변종인 튤립의 수요가 늘면서 튤립의 알뿌리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너도나도 사재기에 나섰다. 한 달 동안 몇천퍼센트나 상승하기도 했다. ‘황제’라는 튤립의 뿌리는 집 한 채 가격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다 알뿌리 가격이 높다고 깨닫는 순간이 오자 더 이상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가격은 폭락했다. 투자자들은 본전의 1~5%만 건졌을 뿐이다.

버블은 욕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노린다. 튤립 버블이 발생한 다음 18세기 남해회사 버블이 발생했다. 그때 천재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도 투자대열에 참가했다.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도박판에 줄을 선 것이다. 참담한 실패였다. 뉴턴은 말했다.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었으나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

이젠 달라졌을까. 당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상통화(코인)시장은 활황이다. 한국의 가상통화 거래액이 국내 주식투자와 해외 투자액을 합한 금액보다 많다. 대표적인 가상통화인 비트코인을 대체하는 알트코인은 시가 총액이 지난해 말보다 5배 커졌다.

알트코인 가운데 대표종목인 도지코인의 상승률은 ‘미친 수준’이다. 도지코인의 가격은 올해 초 0.47센트에 불과했으나 묻지마 투자로 40센트에 근접했다. 8000% 이상 폭등하는 상황이다. 시가총액은 영국과 프랑스 대형투자은행보다도 높다. 열풍에는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역할이 크다. 그는 도지코인을 ‘우리 모두의 가상통화’라고 말하는가 하면, “가상통화거래소에서도 거래돼야 한다”고 주장해 폭등세에 불을 질렀다.

도지코인은 2013년 IBM과 어도비 출신의 개발자가 만들었다. 비트코인 열풍을 풍자해 재미 삼아 개발했다고 한다. 도지코인은 비트코인보다 위험하다. 비트코인의 수량은 2100만개로 한정된 데 반해 도지코인의 발행수량은 무한대다.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코인의 사용 목적도 없다. 하루에도 수십퍼센트씩 등락한다. 가상통화 전문가들도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다. 그런데도 도지코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시장도 마찬가지다. 도지코인의 거래대금(지난 16일)은 17조원에 달했다. 같은 날 코스피 거래대금(15조원)보다도 많다. 코인시장이 비트코인이 아니라 위험 덩어리인 도지코인이 주도하는 시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코인 투자자들 가운데 2030세대가 부쩍 늘고 있다. 지난 2월 가상통화 앱 순이용자는 300만명을 넘어섰고 이 중 2030세대는 59%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다. 젊은 세대들이 위험한 코인에 인생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귀에는 코인 성공담만 들릴 뿐이다. ‘코인으로 수십억원을 벌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집도 사고 차도 샀다’는 등의 소문들이다. 이들은 코인세상에 동참하지 않으면 자신만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싸인다. 이른바 포모(Fearing Of Missing Out·FOMO)증후군에 빠지는 것이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따라가야 손해를 보지 않을 것 같다며 코인을 사들인다.

부동산 폭등은 코인에 올인할 구실을 만들어주었다. 젊은 세대는 “부동산 가격을 내리겠다”는 정부를 믿었다가 ‘벼락 거지’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누가 무어라고 하든 ‘코인 거지’는 되지 않겠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벌어서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을 코인을 통해 돌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부동산에서 실패했으나 코인에서만은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수저 바꾸기’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고 있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붕괴되고 흙수저와 금수저의 삶이 고정되고 있다. 꿈과 희망이 삭제되자 한탕주의가 꿈틀대고 있다. ‘노력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더 멀어진 것 같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4210300035&code=990100#csidxfeb02bf4aced9c8aaf9458374077a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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