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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총파업 중심에 선 비정규직·특수고용직 노동자들

배달·택배 기사, 건설노동자, 방문점검원, 학교비정규직, 상담사 등이 주도 “불평등 세상 바꾸자”

이승훈 기자 
발행2021-10-19 20:23:04 수정2021-10-19 21:33:45
 

대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오는 10월 20일 노동 의제를 대선 주제로 끌어올리기 위한 대규모 총파업에 나선다.

그런데 이번 총파업은 이전의 총파업과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코로나19 유행’과 ‘단계적 일상회복 단계’라는 점에서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움츠러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이에 코로나19 유행 이후 열악한 근로환경 문제가 대두됐던 배달·택배·방문점검원·건설기계 등 특수고용직과 콜센터상담사·단체급식조리원·건설노동자 등 비정규직·일용직이 총파업을 이끄는 중심이 되고 있다.

이들은 각자가 처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총파업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이 처한 환경은 모두 양극화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추모하는 배달노동자
< span=""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민중의소리<>

‘도로 위 시한폭탄’ 되어버린 배달노동자
“우리도 누군가의 가족...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배달서비스지부는 지난 15일 정부와 배달플랫폼 회사에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요구하며 오는 10월 20일 ‘오프데이’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오프데이는 배달노동자들이 배달플랫폼 업체로부터 주문내용을 받는 배달앱을 끄는 행위를 뜻한다. 건당 수수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배달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파업인 셈이다. 배달서비스지부 관계자는 “10월 20일 오프데이에 수도권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 약 1천 명가량이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배달노동자들의 열악했던 근로환경 문제가 더욱 부각됐다. 주문이 몰리는 시간에 수수료를 급격히 올려 속도 경쟁을 부추기는 배달플랫폼 시스템 속에서 배달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잇따랐다.

김종민 배달서비스지부 구팡이츠지회 준비위원장은 “이탈리아 검찰은 배달노동자 사망사고가 많이 일어나자, 라이더 단속이 아닌 배달플랫폼 업체를 조사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힘없는 라이더만 단속한다”라며, 오토바이 단속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배달노동자 사고 원인이 배달노동자 개개인에게 있는 것처럼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과속을 부추기는 배달플랫폼 업체의 배달 시스템에 있다는 지적이다.

홍창의 배달서비스지부 준비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해 달라고 호소했다. “우리도 누군가의 가장이고, 가족입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로 위 시한폭탄처럼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배달 건당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직이고,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해야 하는 구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구입비, 유지비, 비상보험료 등을 내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가지려면 빠르게 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분류한 물량을 차에 싣고 있는 택배노동자
< span=""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민중의소리<>

을들의 전쟁 조성하는 CJ대한통운에
총파업 선언한 1700명의 택배기사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도 이달 15일부터 부분파업을 시작해 오는 10월 20일 일일 전면파업에 나선다. 전국택배노동조합 관계자는 “쟁의권이 확보된 1700여 명의 조합원을 중심으로 부분 배송 거부를 시작했다. 20일에는 일일 경고파업을 한 뒤, 이후에도 문제 해결이 안 될 경우 파업의 수위를 계속 높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택배노동자들 중 CJ택배노동자들만 총파업을 하는 이유는 업계 1위 CJ대한통운이 끝까지 노조를 교섭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노조와 대리점소장 간 갈등만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엄연히 정부가 인정한 ‘합법적인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택배노동자와 직접적인 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며 지난 5년 동안 택배노조를 교섭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택배노동자는 각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택배사는 택배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은 택배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가 맞고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까지 했지만, CJ대한통운은 여전히 택배노조를 교섭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교섭 자체를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최근 CJ대한통운 김포지역 대리점에서는 택배노조와 대리점소장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다. 특히 한 대리점 소장이 CJ대한통운으로부터 계약이 중도에 해지된 뒤 택배노조를 탓하는 유서를 남기고 숨지자, CJ대한통운이 유족에게 새로운 대리점을 제공하면서 주변 대리점 소속 택배노동자들의 물량을 유족의 대리점으로 전환하여 또 다른 갈등을 유발했다.

또 CJ대한통운은 최근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해 사회적 합의로 정한 170원 요금인상분에서 75원가량을 회사의 수익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조는 “170원 요금 인상분은 택배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쓰라고 국민이 허용해 준 돈”이라며 “그 돈은 택배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은 18일 서울 서대문구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웨이 소속 3개 직군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다고 밝혔다.ⓒ민중의소리

비정규직·정규직이 함께 공동투쟁
코웨이 노동자들의 10·20 총파업

택배·배달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특수고용직인 코웨이 방문점검원 4500명도 10월 20일 총파업에 나선다. 이들의 총파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코웨이 정규직·영업관리직 2500명과 함께 총파업에 나선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같은 회사 정규직이 반대하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코웨이 노동자들은 반대로 함께 투쟁에 나섰다. 이 같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은 노조가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은 코웨이 방문판매원, 설치수리기사, 영업관리직 등 3개 직군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동자는 하나다’ 등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에 3개 직군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 날 공동투쟁본부 발족을 알리고 지금까지 함께 회사에 제도개선을 요구할 수 있었다.

덕분인지, 방문판매원들은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직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업계 최초로 교섭권을 얻었다. 코웨이 방문판매원들은 2019년 11월 노조를 설립한 이후 24회에 걸쳐 회사에 교섭을 요구했으나, 코웨이는 “방문판매원들은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교섭요구를 무시해 왔다. 그러다가 올해 8월 중앙노동위원회가 “회사의 지속적인 교섭 거부는 법에서 금지한 부당노동행위”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회사가 교섭의 문을 열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교섭에 나온 코웨이 사 측은 형식적으로만 응하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이영철 위원장이 19일 총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사람 살리는 총파업”
건설노동자들도 나선다

일용직·특수고용직 건설노동자도 위험작업을 거부하며 10·20 총파업에 나선다.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여한 민간 업체 화천대유 퇴직금이 50억인데,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왜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해야 하나”라며 이같이 밝혔다.

건설노조는 이번 총파업을 두고 “사람 살리는 총파업”이라고 부른다. 건설현장 산재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들에겐 ‘안전 문제를 건너뛰고 작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절실하다. 지난 8월 17일에서 24일까지 조합원 대상으로 이루어진 건설노조 설문조사에서 83%의 조합원이 건설안전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부도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건설현장 산재사망사고를 줄이겠다고 한 바 있지만, 국회에 법안만 발의된 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제 겨우 공청회를 1번 열었을 뿐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7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12층 회의실에서 학교비정규직노조 총파업 위한 투쟁선포 및 쟁의행위찬반투표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7일부터 10월7일까지 찬반투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참석자들이 비정규직 신분 철폐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를 촉구하고 있다. 2021.09.07ⓒ김철수 기자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극화
“인권위 권고 등 받아들여, 처우개선 해야”
학교비정규직, 역대 최대 규모 총파업 참여

10월 20일 총파업에서 가장 큰 규모로 참여하는 단위는 학교비정규직이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동조합 등 3개 학교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12일 총파업에 나선다고 밝혔다. 3개 노조 조합원 수는 약 9만4천여 명이다.

앞서 공무직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내년도 공무직 노동자의 인건비 예산을 동일 기관 내 정규직 임금인상률보다 상회한 수준으로 편성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는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 대비 55%(교육기관 기준) 수준인 상황에서 점점 벌어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한 권고다.

하지만 교육부·시도교육청은 이 같은 권고를 받아들일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3개 노조는 “2차 추경으로 6조3천억 원 이상 증액된 데 이어 전년 대비 11조 원이나 늘어난 2022년 예산에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정규직보다 못한 기본급 인상안을 제시하더니,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서는 작년보다 못한 인상안을 제시했다”라며 총파업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가 원인 모를 암과 질병에 시달려온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잇따라 산재를 인정받으면서, ‘죽음의 급식실’ 환경이 재차 논란이 된 바 있다. 소수의 인원이 수백 명분의 급식을 준비하다 보면 각종 암의 원인이 되는 ‘조리흄’과 위생 관리 중 접하게 되는 화학 약품에 무방비로 노출되는데, 그동안 다수의 학교는 이런 위험요소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지 않고 급식실을 운영해 왔다. 고장 난 환기시설을 고쳐달라고 해도 수년 동안 요구를 무시하거나, 창문조차 없는 지하인 곳도 부지기수였다.

콜센터 자료사진ⓒ뉴시스

공공부문 콜센터 상담사들도 총파업 참여
가스공사, 환경미화, 물재생시설 노동자도 파업
공무원 “점심시간이라도 보장” ‘12시 멈춤’

공공부문 콜센터 상담사들도 10월 20일 총파업에 나선다. 국세청콜센터, SH공사콜센터, 한국장학재단콜센터, 다산콜센터 상담사 노조로 구성된 ‘공공부문 콜센터 노동조합 연대회의는’ 지난 14일 이같이 밝혔다. 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과 대전 국민은행 콜센터 상담사들도 총파업에 참여한다.

이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처우개선의 가능성이 희박한 민간위탁 또는 자회사 노동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곳곳에서 총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비정규직지부도 안정적인 정규직 전환 및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나설 예정이며,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직들도 처우 개선 예산 편성 등을 촉구하며 총파업에 나선다. 일부 지역 민간위탁 환경미화 노동자도 직영화를 촉구하며 총파업에 참여한다. 자동차와 배를 만드는 제조업 노동자들도 부분파업을 통해 총파업에 참여한다. 서울물재생시설공단 노동자 300여 명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서울시에 항의하며 지난 18일부터 전면 파업에 나섰다. 화물노동자들도 안전운임제 확대 등을 요구하며 10월 말 총파업을 준비 중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업무가 급격히 증가한 공무원노동자들도 “점심시간만이라도 법으로 정한 휴식시간을 보장하라”며 ‘12시 멈춤’에 나선다.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5개 정당 대표들이 국회에서 민주노총 총파업 지지 선언을 하는 모습.ⓒ뉴시스

진보정당·농민단체 “노동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전국여성연대 “우리도 온라인으로 동참”

비정규직, 특수고용직들을 중심으로 한 총파업에 진보정당들과 농민단체, 여성단체 등은 지지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적극적으로 응원을 보냈다. 특히, 전국여성연대는 “그림자 노동의 당사자인 여성들도 온라인 공간에 모여 10월 20일 우리만의 총파업을 하겠다”며 연대 투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진보정당들도 18일 “민주노총이 내걸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전면개정! 산업전환기 일자리 국가보장! 주택, 교육, 의료, 돌봄, 교통 공공성 강화!’라는 총파업 요구는 불평등 체제를 해소하고 기후위기로부터 한국사회의 대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 진보정당의 당면 요구이기도 하다”라며 “코로나 방역의 잣대를 들이대 집회의 자유를 구속하지 말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라고 촉구했다.

8개 농민단체가 만든 ‘농민의길’은 지난 18일 “최저임금 인상은 무력화됐고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과 주 52시간도 적용되지 않는 노예노동지대로 여전히 남겨졌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사회였다면 거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불평등 해소와 집회 자유 보장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예고된 총파업 집회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경찰청에서 열린 총파업 대책회의에서, 김창룡 경찰청장은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의 전환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대규모 집회로 인한 코로나19 재확산이 우려된다”며 가용 경력 장비를 최대한 동원한 집결 차단, 불시 집결 또는 신고된 인원 초과 시 해설절차 진행한 뒤 현행법 체포 등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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