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앞부터 합정역까지 미행, 경찰에 신원 확인 후 풀려나
 
입력 : 2013-08-10 18:39:41 노출 : 2013.08.10 18:39:41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비판하는 단체 일행을 신원불상의 남성이 수시간 넘게 따라다니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신원을 확인했지만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9일 오후 5시경 학생, 노동자, 통합진보당 당원 등으로 구성된 서울지역 자주통일선봉대 10여명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입구에서 시위 중인 국정원 감시단을 지지방문했다.

국정원이 있는 내곡동 일대는 말그대로 허허벌판인 곳이다. 주민들의 왕래도 거의 없다. 검은색 장우산을 가지고 있는 2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최초 목격된 곳도 국정원 입구 앞에서였다.

통일선봉대 일원들은 국정원 감시단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6시경 강남 방향의 버스를 탔다. 버스에 탄 사람은 통일선봉대 일원과 마을주민 2명, 그리고 검은색 우산을 든 남성이었다.

이들은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림역으로 향했다. 신림역에서 통합진보당 정당 연설회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비판하는 홍보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2인 1조로 흩어져 홍보활동을 하고 신대방역에서 만나 불광동 숙소를 가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런데 국정원 입구와 버스 안에서 봤던 검은색 우산을 든 남성이 신림역에서도 발견됐다. 남성은 신대방역까지 따라왔다. 통일선봉대 일원들은 사람들이 모이기 전까지 신대방역에서 몇차례 지하철을 보냈고, 사람들이 다 모이자 지하철을 탔다. 하지만 승차했던 2호선 지하철의 종점이 신도림역이어서 신대방 다음역인 구로디지털 단지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또다시 검은색 우산을 든 남성이 구로디지털 역에서도 발견됐다.

통일선봉대 일원들은 우산을 든 남성이 자신들을 따라다닌다고 의심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수차례 특정 장소에서도 남성이 발견되자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것을 확신했다.

이들은 다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6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합정역에서 하차했고 우산을 든 남성이 또다시 따라오자 역사 안에서 남성을 붙잡았다.

   
▲ 국정원 전경
 

역사 안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통일선봉대 일원들은 경찰에 신고해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출동했다. 경찰은 남성에 대해 임의동행을 요구했지만 거부했고, 단순 신분 확인만 하고 풀어줬다.

통일선봉대 한 관계자는 "쫓아왔다고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자신이 죄가 없다면 우리를 오히려 신고를 하는 게 당연한데 그런 것도 없이 경찰 신원 확인 후 가버렸다"고 증언했다.

경찰 진술에서 신분 확인 요구에 남성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동선을 번복한 것도 이상하다. 남성은 신대방에서 출발해서 자신의 집인 응암에 가기 위해 6호선을 갈아타려고 했다고 진술했지만 통일선봉대 일원들이 신림역에서 봤다라고 주장하자 신림역에서 출발했다고 번복했다.

마포경찰서는 통일선봉대 일원 중 통합진보당 당원과 오병윤 통합진보당 의원실 관계자가 포함돼 있어 정보계에서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계 관계자는 '남성의 직업이 파악됐느냐'는 질문에 "신원 확인 후 남성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했지만 거부해 할 수 없이 지구대로 데려가지 못했다"며 "직업 등 신원과 관계된 것은 정식 절차를 밟아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당시 남성이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신원조회에서 수배 등 특이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근무일지상 직업란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행을 했다는 증거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신원은 일단 확인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붙잡아둘 수 없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통일선봉대 일원들은 우산을 든 남성이 국정원 혹은 경찰 관계자라고 의심하고 있다. 일반인이라면 저녁 5시부터 밤 11시까지 약 6시간 동안 자신들을 따라다닐 이유가 전혀 없고 수사 당국이 통일선봉대 활동을 파악하기 위해 미행을 했다는 주장이다.

오병윤 의원실은 해당 사건을 파악해 공식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미행 및 사찰 증거가 부족하다고 한 이상 공식 요청을 통해 조사 내용을 묻고 통일선봉대가 다녀간 동선을 따라 CCTV 화면을 확보해 증거를 수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