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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20년, 병원은 너댓번”…멀기만 한 지정병원 가는 길

[르포] 홈리스 병원 동행기
지원센터서 진료의뢰서 떼고
서울시 지정 병원 가야
‘의료급여 수급’은 높은 벽
 
“20년간 병원 4∼5번 가봐”
노숙인 10명 중 3명 이상
“아파도 병원 안 간다”
박재혼(62)씨의 꺾어 신은 운동화.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박재혼(62)씨의 꺾어 신은 운동화.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4월13일, 박재혼(62)씨의 아침이 분주했다. 깔끔한 옷을 갖춰 입고, 쌀쌀한 날씨에 비닐 점퍼까지 챙겨 입었다. 눌러 쓴 검정 모자 밑으로는 하얗게 샌 머리카락들이 정갈하게 삐져 나왔다. 이날의 단정한 차림새와는 다르게, 박씨는 왼쪽 신발을 한껏 꺾어 신었다. 박씨를 괴롭히는 불편한 다리다. 이날은 박씨에겐 흔하지 않은 ‘병원 가는 날’이었다. 노숙 생활 20년간 병원 치료를 받은 기억은 네다섯 번 정도. 심지어 한 번은 구급차를 타고 실려 갔던 경험이다. 지난 13일 <한겨레>가 동행한 박씨의 ‘병원 가는 길’은 길고도 멀었다.
아파도 가지 않는 곳, 병원
 

“발가락이 저릿저릿해서 잠자다가 깨고 그랬어요.”

 

 이날 오후 2시, 용산역에서 만난 박씨는 꺾어 신은 왼쪽 신발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가 신발을 꺾어 신은 지는 두 달도 넘었다. 박씨는 지난 2월 중순부터 다리 통증을 느꼈다. 발가락에 힘을 줘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에, 절뚝절뚝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그렇게 움직이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생활을 했다. 박씨가 사는 용산역 아래 텐트촌에서 역까지 올라가는 데는 통상 2∼3분이 걸리지만, 아픈 다리로는 십분이 넘게 걸렸다. 생활이 불편해도 병원에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혹시 통풍은 아닐지’ 박씨의 이상한 걸음걸이를 본 홈리스 단체 활동가의 권유로, 박씨는 3월 말이 돼서야 병원을 찾았다. 이날은 2주 전에 했던 피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발이 퉁퉁 부었는데도 병원 생각은 안 했어요. 생존에 위협이 느껴질 정도가 아니면 굳이 안 가는 거죠.”박씨가 병원 가기를 망설인 데는 이유가 있다. IMF 이후 집을 나와 20년이 넘게 노숙 중인 박씨는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노숙인들은 ‘노숙인 의료급여 1종 수급자’를 신청할 수 있지만, 박씨는 수급자가 아니다. 박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지방자치단체 의료지원을 받는 것이다. 서울시 의료 지원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매번 노숙인 종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은 뒤, 센터가 정해주는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지정 병원’만 갈 수 있는 노숙인
 

“진료의뢰서 떼러 왔는데요.”오후 2시 반, 박씨는 ‘진료가 필요한 노숙인’이라는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서울역 인근 종합지원센터에 들렀다. 노숙인에게 1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2차 병원으로 연계해주는 곳이다. 해당 센터는 치료가 필요한 노숙인을 동부병원, 서울의료원 등 서울 시내 5개의 2차 병원이나 결핵 전문 병원, 정신과 전문병원으로 인계한다. 시민사회단체는 2012년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 시행 이후 줄곧 폐지를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고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발도 거세다. 박씨는 동작구 보라매병원 정형외과 진료 의뢰서를 받았다. 서울역을 기준으로 걸어서는 2시간30분, 대중교통으로는 40분 정도가 걸리는 곳이다. 이날 박씨는 운좋게 활동가와 함께 지원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박재혼(62)씨가 13일 오후 보라매 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역에 위치한 다시서기부속의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 받아 나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재혼(62)씨가 13일 오후 보라매 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역에 위치한 다시서기부속의원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 받아 나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씨는 3시15분 예약 시간에 빠듯하게 맞춰 도착했다. 접수를 하고, 대기하며 박씨는 계속해서 진료 의뢰서를 통해 본인의 치료 필요성을 증명해야 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는 박씨 통증이 ‘방사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4∼5년 전 허리를 삐끗해 4번 척추가 내려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후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 통증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다리 통증으로 왔다.“약을 드리고 싶은데, 간이 많이 망가지셔서 약 드시는 건 어려우세요. 붙이는 패치를 처방해 드릴게요.”수십 년의 노숙 생활로 간이 망가진 박씨는 먹는 약을 처방받기에는 간 수치가 너무 높았다. 치료의 때를 놓친 질병들은 박씨 몸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겼다. 내시경 검사와 추가 채혈 검사 등이 필요했다.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검사를 전달받자, 박씨는 한숨부터 나왔다. 박씨가 사는 용산역 주변에 정형외과와 내과는 많지만, 박씨에게 이용이 허락된 병원은 멀기만 하다.

 

박재혼62)씨가 13일 오후 발급받은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보라매 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공간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재혼62)씨가 13일 오후 발급받은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보라매 병원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공간으로 들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냥 이러다 죽겠지…하고 사는 거에요.”
 

“우리 사람들(노숙인들)은 웬만하면 병원 안 가요. 주변에 보면 아픈 사람은 많죠. 결핵도 있고, 속 아픈 사람도 많고, 통풍 걸린 사람도 있고…참다가 괜찮아지면 그냥 또 그렇게 사는 거에요.” 거리 노숙인의 경우, 박씨처럼 아파도 병원 이용을 미루거나,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 7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실태조사’를 봐도 그렇다. 아플 때 대처방법에 대해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라고 응답한 거리 노숙인의 비율은 2016년 31%에서 지난해 37.5%로, 6.5%포인트 늘었다. 17.9%는 ‘무료진료소를 이용한다’고 답했으며, 15%는 ‘약국 처방’에 그친다고 답했다.특히 노숙인이 갈 수 있는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바뀌면서 치료를 받던 노숙인이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제한적으로나마 이용하던 ‘병원 가는 길’마저 막혀버린 것이다. 박씨는 “내가 용산역 텐트촌에서 제일 오래 살았는데, 그간 죽어 나간 사람도 4∼5명 봤다”며 “코로나19 걸린 사람도 분리는커녕, 같이 밥도 먹고 지냈다. 감염될까봐 걱정은 되지만 ‘그냥 이렇게 살다 가는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동네에 정형외과가 많은데도, 지정 병원만을 가야 하는 노숙인은 차비가 없어서 몇 시간씩 걸어가서 진료받기도 한다. 코로나19가 그 한계를 더 여실히 보여줬다”라며 “이러한 지정 제도 자체가 건강권과 의료 접근권에 대한 침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의료 급여 수급자가 되더라도, 병원은 높은 벽
 

박씨가 노숙인 1종 의료 급여 수급자가 되면 더는 ‘진료 의뢰서’를 뗄 필요가 없다. 하지만 1종 노숙인이 되려면 노숙 3개월 이상이고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체납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다행히 박씨는 해당이 되지만, 수급자를 신청해도 문제다.1종 의료급여 수급자가 되더라도 지정 병원만 갈 수 있는 건 마찬가지다. 노숙인 1종 의료 급여 수급자였던 김아무개(37)씨는 5년 전 발작을 일으켰을 때도 지정 병원을 가야했다. 만성 위장병 때문에도 병원을 자주 가야 했는데, 먼 곳에 있는 지정 병원을 매번 가기가 어려워 한 달치 약을 타놓고 먹곤 했다. 의료급여 수급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한 번 시설에 가서 갱신도 해야 했다. 최근에는 의료급여 개정에 따라 이 기간이 ‘7일’로 줄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거리에 계신 분들은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신청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급 자격 유지하기 위해 시설을 방문하라는 건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지침”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정 병원에서 진료 받은 뒤로는 주사 등 적극적 처방을 받은 기억도 잘 없는 것 같다. 매번 약만 탔지, 제대로 된 상담 받기도 어려웠다”며 “지금은 임대주택에 살고 있어서 모든 병원을 이용할 수 있음에도, 그간 이용해 온 진료기록이 있다보니 가던 공공병원만 가게 된다”고 말했다.

 

지정병원을 이용하는 습관은,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코로나19로 인해 노숙인의 의료 접근성이 극도로 제한되자, 복지부는 앞으로 1년간은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가 모든 1·2차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1년간의 단기적 지침이다 보니,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제약들 때문에, 전체 노숙인 중 의료 급여 수급을 받는 규모는 10% 수준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 전진한 국장은 “물론 의료 급여 확대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일반 의료 급여 수급자나 이주민 환자들도 민간 병원에서는 잘 받지 않는 등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노숙인은 심지어 진료시설 지정제도라는 허들까지 있으니, 그 벽이 너무 높고 야만적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병원 동행 지원 차량을 이용하는 박재혼(62)씨. 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손을 모으고 창밖을 쳐다봤다. 장현은 기자
병원 동행 지원 차량을 이용하는 박재혼(62)씨. 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손을 모으고 창밖을 쳐다봤다. 장현은 기자

“약 써서 나으면, 한 달 뒤에는 또 안 와도 돼요?”이날 의사를 만나서 박씨가 물은 유일한 질문이다. 병원 가는 길 내내 두 손을 모으고 창밖을 쳐다보며 박씨는 “노숙을 하는 내가 잘못” “돈이 없는 게 죄”라며, 연신 동행 활동가에 미안함을 표했다. 의사 권유에 따르면 다음 달 12일 채혈 검사와 13일 위 내시경이 예정되어 있지만,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지난한 이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한다. ‘노숙인’임을 증명해야 하고, 차량을 지원하고 동행해주는 사람에게 미안해야 하고, 혹시라도 혼자 오게 되면 몇 시간을 헤매야 할지 모른다.박씨가 병원 진료를 마치고 용산역으로 되돌아온 시간은 4시30분.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계속 어두웠다. 박씨는 불편한 왼쪽 다리를 끌며 텐트촌으로 돌아갔다. 두 달째 꺾여 있는 박씨의 운동화가 얼마나 더 꺾여 있어야 할지, 몇번이나 더 먼길을 돌아 병원에 가야할지 박씨는 두렵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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