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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 내내 고열 호소한 아버지, 이식수술한 병원에만 갔어도…

등록 :2022-05-30 05:00수정 :2022-05-30 08:35

[코로나로 빼앗긴 삶 24158]
③ 관리받지 못한 집중관리군
장기이식을 받은 60대 아버지를 코로나19로 떠나보낸 아들 최윤호(가명·42)씨가 49재를 일주일여 앞둔 23일 오후 산소를 찾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경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장기이식을 받은 60대 아버지를 코로나19로 떠나보낸 아들 최윤호(가명·42)씨가 49재를 일주일여 앞둔 23일 오후 산소를 찾아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경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는 창간기획 ‘코로나로 빼앗긴 삶 24158’의 하나로 온라인 추모소 ‘애도’(www.hani.co.kr/interactive/mourning)를 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이버 공간입니다. 30일부터 누구든지 방문해 헌화하고 추모편지를 읽고 방명록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대구 사람 최규식(가명·67)씨는 평소 연락을 자주 하는 살가운 아버지가 아니었다. 3월4일 코로나19에 확진된 뒤에도 자식들에게 시시콜콜 건강상태를 알리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지난 3월10일 가쁜 숨을 쉬며 아들 최윤호(가명·42)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진다. 산소포화도 기기가 고장 났다. 폰으로 측정하는 방법 좀 갈치도….” 확진자 격리 의무가 해제되는 7일째 낮 12시께였다. 윤호씨는 그날 혼자 집에서 재택치료 중이었던 아버지한테 전화를 받자마자, 감염 위험도 방역수칙도 잊고 아버지 집으로 내달렸다.
 
격리 마지막 날 “숨 안 쉬어진다”…수백통 통화 뒤 보건소 연결

“아버지가 장기이식을 받은 코로나19 확진자예요. 격리 해제 마지막 날인데 산소포화도가 안 잡힙니다.” 윤호씨는 곧장 119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출동할 수 없다”였다. 코로나19 확진자 이송은 보건소의 요청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첫 관문이었던 보건소 문턱은 높았다. 윤호씨는 500통을 걸고서야 담당자와 첫 전화통화가 이뤄진 것으로 기억했다. “기다려보세요. 저희도 긴급 공문을 올리고 빨리 조치하겠습니다.” 1시간 만에 연결된 보건소에선 또 기다리라고 했다. 보건소의 출동 요청에 따라 119 구급차가 도착한 건 오후 3시30분께였다. 그때 측정한 아버지의 산소포화도는 정상 범위인 95% 이상을 크게 벗어난 65%였다. 심각한 저산소증이었지만, 병상 배정 절차가 마무리되려면 또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대구시 병상배정반은 출동한 119로부터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도 산소포화도는 88%로, 호흡곤란 상태였다. 배정반은 아버지를 중증 환자로 분류했고, 중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을 수소문했다. 아버지는 구급차에서 2시간30분가량 더 기다린 뒤인 오후 6시께야 병원에 도착했다.

 

신장이식 60대 ‘재택치료 원칙’…주치의 병원은 ‘병상 포화’

“꼭 경북대병원으로 부탁합니다. 아버지가 그 병원에서 신장이식을 받으셔서, 아버지 진료기록이 그 병원에 다 있어요.” 윤호씨는 보건소 등에 병상 배정을 요청하며 여러차례 부탁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배정된 병상은 경북대병원이 아닌 ㄱ대학병원 중환자실이었다.

 

“걸으실 수 있으니 괜찮을 거다.” 아버지를 이송할 때 구급대원의 말과 달리 상태는 심각했다. 자가호흡이 어려울 때 시행되는 ‘기관 삽관’이 이뤄졌고, 곧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폐렴 증상에 따라 중환자실과 일반실을 두차례 옮겨다닌 아버지는 4월11일 염증 수치가 치솟았다. 윤호씨 눈에는 치료 과정이 내내 미흡해 보였다. 경북대병원에 비해 장기이식 수술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 것만 같았다. 장기이식 면역저하자인데다 중증 코로나19 환자였지만 단순 폐렴 치료 수준에 그쳤고, 신장이나 이식 전문의와의 협진은 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상태를 살핀 ㄱ병원 의사조차 “아이고 어르신, 빨리 경북대병원에 가셔야 할 텐데” 하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주치의와 진료기록이 있는 경북대병원으로 이송됐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너무도 답답했던 윤호씨는 대구시 병상배정반에 경북대병원이 아닌 ㄱ병원으로 배정한 이유를 물었다. 병상배정반은 “환자 중증도에 따라 배정하되, 이전 진료 이력이 있는 병원에 코로나19 병상이 있는 경우 우선 협의하는 게 병상 배정 원칙”이라며 “경북대병원에 문의했으나, 당일 중증 병상이 포화 상태라 수용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답했다. 3월10일 오후 5시 기준 대구 지역에는 32개의 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이식 수술을 받았던 경북대병원엔 병상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로 숨진 최규식(가명·67)씨의 묘 앞에 생전에 좋아했던 과자가 놓여 있다. 경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코로나19로 숨진 최규식(가명·67)씨의 묘 앞에 생전에 좋아했던 과자가 놓여 있다. 경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의료진 모니터링…산소포화도기 고장, 증세악화 놓쳐

 

4월11일 새벽,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연락이 왔다. 7년간의 투석과 신장이식 수술도 견뎌낸 아버지였지만, 코로나19는 확진 5주 만에 목숨을 앗아갔다. ‘㈎직접 사인: 폐렴, ㈎의 원인: COVID-19(코로나19 영문 명칭)’. 이 사망 진단을 검토한 질병관리청은 29일 <한겨레>에 “의료진 판단에 따라 신고 시 코로나 사망으로 집계가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당시 보건소에서는 코로나19 사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병원 쪽이 신고를 누락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질병청은 “사례 조사 전에는 답변이 어렵다”고 답했다. 4월12일 0시 기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사망자는 171명. 이날 방역당국은 신규 사망자가 27일 만에 100명대로 내려왔다고 발표했다.

 

“원격 진료라고 해도 (관리 의료기관이)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걸 포착하지도 못하고, 장기이식 환자인데 세심하게 보지 않았다는 데 화가 많이 납니다.” 윤호씨는 10년 전 신장이식을 받은 60대 확진자가 단 한차례도 입원 권유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모든 확진자는 재택치료를 원칙으로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다. 확진 판정 즉시 의료기관에 입원하려면 △의식장애나 호흡곤란 △해열제 복용에도 3일 이상 38도 이상 발열이 지속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당뇨 등 위험 요인이 있어야 했다. 60대이면서 장기이식 이후 면역억제제를 먹고 있던 아버지는 재택치료자 가운데 집중관리군으로 분류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떨어진 채 의료진의 손길 밖에 있었던 아버지를 빠르게 무너뜨렸다. 체온계와 산소포화도 측정기(측정기)가 포함된 재택치료키트가 지급되고, 하루 2회 의료기관 모니터링이 이뤄졌지만,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측정기가 고장 나 산소포화도 입력이 중단됐지만, 이를 챙기는 이도 없었다. 아버지가 측정기 교체를 요구하자 보건소는 “구청에 문의하라”고 했고, 구청은 “물량이 없으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밤마다 열이 오른 아버지가 병원에 전화로 1시간 넘게 고통을 호소했지만, 하루 3알 해열제 처방이 전부였다. 재택치료 관리 주체는 제각각이었고 비대면 진료는 충분하지 못했다. 윤호씨는 “측정기는 구청에서 하고, 확진자 관리는 보건소에서 하고, 병상 배정은 시청에서 하고 업무가 다 따로따로였다”며 “코로나19에 걸려서 아프다는 사람한테 감기약만 처방하는 건, 그냥 약국을 갔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떠나보내고 외상후 스트레스

 

상실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윤호씨는 장례를 치른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엔 잠자리에 누웠다가 그리움이 사무쳤다. 대구 집에서 아버지를 모신 경주의 한 봉안당까지 1시간 거리를 찾아가, 늦은 밤 닫힌 출입문 밖에서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왔다. 윤호씨는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얼굴 보던 가족이 다음날 갑자기 입원을 하거나 아예 딴 세상 사람이 되는 건 견디기 힘든 충격”이라며 “코로나19 유가족에 대한 상담치료 등 사후 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49재가 다가오지만 윤호씨의 시간은 아버지가 쓰러진 3월10일에 멈춰 있다. 그날, 아버지는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와중에도 아들이 앱으로 산소포화도를 재주려 할 때마다 스마트폰을 낚아채 소독 티슈로 닦았다고 한다. 행여 아들이 감염될까 봐. 엄하고 애정 표현을 아끼던 전형적인 ‘경상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애틋한 사랑의 기억이다. 지난 23일 윤호씨는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롯데샌드’를 사들고 봉안당 앞에 섰다. “아빠 괜찮나? 아빠가 이식 수술 하고 못 먹던 과자다, 이제 아프지 말고, 우리 걱정 하지 말고….”

 

대구 경주/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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