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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안전운임제 있어 버텼는데…” 화물노동자 전국 무기한 총파업

화물연대, 전국 16개 지역본부서 총파업 출정식 “화물노동자 생존·국민 안전 위해 안전운임제 유지돼야”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7일 오전 경기 의왕시 의왕ICD제1터미널 앞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노조원들이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6.7 ⓒ뉴스1 
 
전국의 화물노동자들이 7일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화물노동자의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됐던 안전운임제가 올해 말 시행 종료를 앞두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는 책임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화물노동자들은 안전운임제가 폐지될 경우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며 제도의 유지 및 확대를 절박하게 호소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이날 전국 16개 지역본부에서 출정식을 열고 0시를 기점으로 무기한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 이봉주 위원장은 이날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열린 서울·경기지역 본부 총파업 출정식에서 참석해 "전국 16개 지역 본부에서 10시를 기해 총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고,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모든 항만이 완전히 봉쇄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이번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은 총 2만 5천여명으로, 이번 파업으로 국내 주요 항만과 산업단지 등 전국 50여개 거점 사업장에서 물류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이번 파업에는 비조합원의 파업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안전운임제가 노조만의 요구가 아니라 모든 화물노동자들의 공통된 요구라는 반증이다. 화물연대는 비조합원의 자발적인 파업으로 경기 평택항,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울산 석유화학단지, 전남 여수산업단지 등의 운송도 멈춰섰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화물운송료를 책정하는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자본은 최저 입찰을 강요하면서 운반비를 깎고, 운송사는 다시 화물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며 "그나마 안전운임제도로 화물차량 유지에 필요한 원가비용과 최저수익을 보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경우를 볼 때) 7월부터 내년도 안전운임 고시를 위한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전운임 일몰로 인해서 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가 폭등으로 인해 200~300만원의 유류비가 추가 지출돼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 보는 현실에서조차 참아오면서 정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화물연대를 무기한 총파업으로 내몬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물노동자 생존 달린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제도 확대 없이 안전 보장 못 해"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한 7일 오전 경기 의왕시 의왕ICD제1터미널 앞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소속 노조원들이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6.7 ⓒ뉴스1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해 근로 여건을 개선하고,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2018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개정을 통해 2020년부터 시행됐다. 골자는 정부가 조사한 운임 원가를 바탕으로 화주·운송업계·차주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내년도에 적용할 안전운임을 정하고, 안전운임보다 적은 운임을 지급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안전운임제가 도입되기 전, 화물노동자들은 운송업체 간 과도한 경쟁과 화주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운임을 받았다. 지난 2018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에서 의왕까지 40피트 컨테이너 화물 1개를 운임할 경우 정부에 신고된 운임(편도)은 75만원이었지만, 실제 시장에서 거래된 운임은 45만원 수준이었다. 정부에 신고한 운임 대비 60%에 불과한 것이다.

이보다 13년 전인 2005년 실제 운임이 38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10년 이상 화물운임이 상승하지 못한 데다가,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운임이 떨어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물노동자들은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저임금과 같은 적정 운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100대 공약사항과 국정과제에 안전운임제 도입을 명시하고, 화주·운물업계 등 이해 당사자와 함께 논의한 끝에 안전운임제를 담은 절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운임을 강제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거센 반발로 안전운임제를 3년만 시행한다는 일몰제가 생겨났다.

문제는 일몰 1년 전 안전운임제 연장 등 제도 보완을 논의하기로 했던 정부와 국회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단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지난해 1월 일몰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안전운임제의 효과는 이미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 상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조사해 지난 2월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서 및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안전운임 시행 후 화물노동자의 근로 시간은 줄고 소득은 늘었다는 취지의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화물연대는 총파업 출정식 결의문을 통해 "평균 경유가가 2천원을 넘었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모든 비용이 오르고 있다"며 "한 달에 수십 가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화물노동자는 벼랑 끝에 놓여 있다"고 호소했다.

화물연대는 "일몰제 폐지 법안이 발의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화물연대는 지난 1년 6개월간 수없이 정부와 국회를 만나고, 기자회견, 하루 경고 파업, 시한부 파업까지 일몰제 폐지와 제도의 확대 없이는 도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음을 설득해 왔다"며 "그러나 지난 세월 무응답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방기하던 정부는 화물연대가 전면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하니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오히려 화물노동자를 협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물연대는 "화물노동자의 생존을 위해, 국민의 안전을 위해 우리 앞에는 단 하나의 길만이 놓여 있다"며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을 쟁취하고,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기한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편,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불법행위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이날 오후 '화학단지 출입차량을 막겠다'며 도로에 연좌하고, 이 과정에서 경찰에 저항한 4명의 화물연대 조합원 4명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검거했다. 경찰청은 "이후로도 운송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 방침"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나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사용자의 부당노동 행위든, 노동자의 불법 행위든 간에 (대선) 선거 운동할 때부터 법에 따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천명해왔다"고 답했다.
 
화물연대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7일 오전 '화물연대 총파업 출정식'이 열린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인천신항 인근도로 일대에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소속 화물차량들이 줄지어 정차돼 있다. 화물연대는 이날 16개 지역본부별로 전국 동시다발 총파업 출정식을 개최했다. 이들은 조합원 2만5천명 대부분과 비조합원 화물 노동자 상당수가 이번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화물연대는 경유값 폭등으로 안전 운임제 없이는 생계유지가 곤란한 상황이라며 제도 확대를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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