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그 뒤] 화물수송 재개, 유가폭등으로 생계곤란 여전
화물노동자 한씨 “합의 뒤에도 일주일 더 차 세웠다”
입장 바꾼 국토부…“총파업 철회 아닌 유보”

“밤잠 안 자가면서 쓸데없는 짓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58세 화물기사 한아무개 씨는 37년 화물운송을 하면서 이번 파업에서 처음 차를 세웠다. 그리고 지난 14일 합의가 이뤄진 뒤에도 일주일 동안 화물운송을 멈췄다고 했다.

민주노총 화물연대본부와 국토교통부가 올해 종료 예정이었던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키로 합의하면서 노조는 8일 만에 총파업을 풀었다. 그러나 생활고로 인한 파업 불씨는 여전하다. 유가 폭등으로 겪는 고통은 나아지지 않았다.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한다는 합의 직후 국토부 장관이 화주 입장을 대변하는 발언에 나서 안전운임제 근본 취지를 흔든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토부와 화물연대는 지난 14일 밤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품목 확대 등을 논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국토부는 원 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당초 약속대로 안전운임제 시행성과를 국회에 보고하기로 했다. 또 화물노동자들의 유류비 부담 완화를 위해 “조속히 유가보조금 제도 확대를 검토하고 운송료 합리화 등을 지원·협력”하기로 했다.

앞서 화물노동자들은 지난 7일 안전운임제 일몰을 앞둔 유가 폭등 상황에서 최소 운임 기준을 제시하고 유가를 반영하는 안전운임제 유지·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사진=unsplash
▲사진=unsplash

이번 파업은 윤석열 정부 들어 이뤄진 첫 대규모 총파업이었다. 화물노동자들이 ‘노사 자율로 합의하라’고 주장하던 정부를 교섭 자리에 앉혀 합의안을 끌어냈다는 점이 의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 중에도 “노사관계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했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에 “노사 갈등은 자율 원칙”이라고 주장해왔다. 정부는 현재까지 화물노동자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며 ‘집단운송거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화물 수송이 재개됐어도 화물노동자들은 맘 놓고 차를 몰 수 없다. 한씨는 “(파업 뒤 일 주일 간) 나갈 의욕이 없었다”며 파업 일주일 뒤인 21일에야 세웠던 차를 몬다고 했다. 그는 “기름을 가득 채우면 이젠 100만원이 넘는다. 서울에서 부산 한 번 왕복하면 다 사라지는 양”이라며 “운임료 120만~130만원에서 기름값에 타이어값, 수리비 빼면 하루에 몇 만원만 남는다”고 했다.

한씨는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개선해주겠다고 하셨고, 합의도 이뤄졌으니 이제 유가보조금이라도 좀 정상화시켜주겠구나 생각했는데 변한 것이 없다”고 했다. 정부는 리터당 345원의 유가보조금을 지원해왔는데,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하면서 도리어 이와 연동된 보조금도 깎였던 터다.

정부는 19일 유가연동보조금(초과분 50%) 지원 기준 단가를 1750원에서 1700원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한씨는 “공사 현장에 일거리가 많더라. 일당 15~18만원을 준다니 차라리 몇 달 동안 거길 뛰겠더라”며 번호판을 일시 반납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국토부는 도로비 전일 할인 등과 같은 화물노동자 지원대책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28일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대회 모습
▲지난 5월28일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대회 모습

한편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중단한 뒤 여전히 투쟁이 진행 중인 곳도 있다. 하이트진로는 파업 직후 화물연대 조합원 130여명 전원에 계약 해지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이들은 10년 간 운송료가 오히려 1% 떨어져 동종업계보다 훨씬 낮은 운임을 받으며 일했고 이번 파업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김재광 화물연대 교육선전실장은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은 유가 폭등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올초 화물연대에 가입해 투쟁에 돌입했다. 화물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집합된 곳”이라며 “화주가 책임 부인을 지속하면서 계약해지와 손배소에 나섰다”고 했다. 언론이 이번 파업을 “소주 파동”으로 규정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해왔지만 파업 직후에 화물노동자들이 놓인 상황은 언론 조명을 받지 못하는 처지다.

안전운임 일몰 폐지와 품목 확대 요구와 관련해 한씨는 “현재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는 사람이 100대 중 10대도 안 된다. 그걸 전체 (노동자들이) 다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파업에 나섰다)”며 “결과에 아쉽다”고 했다. 현재 안전운임제는 도입 당시 자유한국당의 전품목 도입 반대로 시멘트와 컨테이너 품목에만 적용됐는데, 이는 전체 화물운송량의 5.7% 정도다. 한씨도 두 품목이 아닌 일반 품목을 운송한다.

한씨는 “화물 노동자들은 스무 시간을 길에서, 차에서 생활한다. 기존 임금보다 두 배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수 있는 만큼 달라는 것인데, 그것마저 안 되니 이렇게 ‘데모’를 하게 된 것 아니냐”고 했다.

▲화물연대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총파업 기자간담회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화물연대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총파업 기자간담회을 진행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국토부가 파업 직후 화주단체 입장을 들고 나오면서 안전운임제 취지를 다시 흔들기도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합의 이틀 뒤인 16일 브리핑에서 안전운임위원회에 객관성이 없고 차주가 과대 대표된다고 주장하며 “이대로 제도를 유지한 채 일몰제를 폐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화물연대는 “원가비용 산정은 국토부가 외주한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자료를 근거로 결정된다”며 “지난 3년간 결정된 최종 소득은 공익위원안이었다. 국토부가 스스로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편향돼있다는 것이냐”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화물연대는 먼저 국토부의 안전운임제 시행성과 국회 보고를 지켜볼 예정이다. 김재광 화물연대 교육선전실장은 이번 합의를 두고 “일몰제 폐지라는 문안으로 정리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단순) 연장안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일관되게 밝혔지만 국토부가 ‘연장 등 지속추진’에 합의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고 했다.

이어 “국토부가 어떤 의견을 국회에 보고하는가가 중요한데, 이번 합의는 그에 대한 약속을 받아낸 것”이라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1호 법안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에 법개정 일정을 지켜보고, 법안 처리가 늦어지거나 결국 안전운임제 일몰 상황이 온다면 다시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