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장기 침체 리스크’ 올리는 윤석열 정부 재정당국

나원준 교수 “긴축재정이 경기침체 불러올 수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김수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9.21. ⓒ뉴시스 
 
재정건전성을 내세워 긴축 재정을 예고한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이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긴축 재정으로 현재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더라도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코로나19 상황 전 경기침체 상황을 다시 맞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해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것이 큰 틀이다. 여기에 정부는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가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대비 2%까지 상향해 관리하도록 했다.

사회공공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나원준 경북대 교수의 '재정의 책임성 복원을 위하여: 재정준칙 비판' 보고서를 보면 정부가 관리재정수지를 재정 관리 기준으로 삼은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재정 상태를 살펴보는 지표 중 하나인 재정수지는 단순하게 총수입에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와 여기에 국민연금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가 있다. 사회보장성 기금이 대부분 흑자를 내는 것을 고려하면 관리재정수지가 더 엄격한 기준이다.

그러나 나 교수는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긴축재정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를 보면 2017년과 2018년에 각각 1.3%, 1.6% 흑자를 보이다가 2019년 0.6%, 2020년 3.7%, 2021년 1.5%의 적자로 반전됐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와 약 -2.5%포인트 차이로 같은 증감 경향을 보인다. 즉, 관리재정수지 적자 2~3% 정도라면 통합재정수지로 봤을 때는 0%에 가까운 수치로, 수입과 지출이 비슷한 규모라는 의미다.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 ⓒIMF

다시 말하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3%로 관리하겠다는 말은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는 적자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긴축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관리재정수지라는 지표 또한 한국 정부만의 자의적 기준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산재보험기금, 고용보험기금 등 흑자를 내는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다. 반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적자액은 그대로 반영된다. 모든 사회성보장 기금을 제외한 것이 아닌 자의적으로 더 가혹한 기준을 만든 셈이다.

나 교수는 "이미 적자 상태로 돌입한 사회보험만 선별해서 계산에 포함시키고 있는 셈"이라며 "그렇게 계산된 관리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재정준칙을 정의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긴축 편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관리재정수지 개념은 다른 나라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와 비교가 어렵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인플레이션에서 긴축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경제학자들 대부분은 현재 인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해 긴축 재정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흔히 이해하는 인플레이션은 수요가 공급보다 많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상황이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대부분 코로나19로 인해 전 정부가 확대 재정을 벌인 것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서 수요가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니 긴축으로 정부가 푸는 돈을 줄이는 것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용자단체와 정부, 한국은행 등은 이번 인플레이션을 두고 임금과 물가의 연쇄 상승에 우려를 표하면서 임금인상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임금이 늘어난 것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 교수는 이번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수요가 아닌 공급에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나타나는 인플레이션의 핵심적인 특징은 공급 측 요인에 주로 기인한 국제적 현상이라고 나 교수는 분석했다.

나 교수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아주 머지않은 장래에 또 다른 대규모 감염병 위기가 벌어질 수 있고 다시 경제위기로 번져올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진보 진영은 최근 인플레이션 경험에 기초해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를 더는 요구하지 않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OECD 통계를 보면 한국 노동자의 평균 실질임금은 2019년 수준에서 정체된 상태다. 실질임금은 액수 그대로인 명목임금을 물가지수로 나눈 것이다. 2021년에는 오히려 실질임금이 전년 대비 1.37% 하락하기도 했다. 임금의 액수가 올랐어도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생활수준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후퇴했다는 말이다.

거꾸로 미국, 호주, 유럽에서는 이윤과 물가 사이의 연쇄 상승 우려가 제기된다. 공급망 문제를 핑계로 기업들이 이윤을 올린 것이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는 말이다. 미국의 진보적 경제씽크탱크인 EPI(Economic Policy Institute)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기업의 이익률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며, 기업의 약탈적인 이익 보호를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나 교수는 긴축 재정이 오히려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봤다. 이번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더라도 2010년부터 이어진 장기침체의 원인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침체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4월에 IMF가 발표한 최근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까지도 GDP산출갭이 마이너스 값으로 나타난다. 산출갭이란 실질 GDP와 잠재 GDP의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0보다 작은 만큼 불황인 것을 말해준다.
 
IMF 산출갭 추정 ⓒ한국은행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맞기 전까지인 2010년대에는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장기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제로금리를 실시하던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인플레이션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장기침체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나 교수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현재의 긴축 정책이 자칫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경제의 근저에서부터 작동하고 있는 장기 침체의 구조적 요인들이 경기침체의 진폭을 키우고 지속성을 갖도록 발전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요 측면에서 장기 침체의 구조적 요인은 불평등과 양극화"라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된다고 해도 장기 침체를 야기한 구조적 요인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양극화와 불균형 문제는 코로나19 경제위기와 인플레이션의 충격이 취약계층에 집중되면서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 긴축재정은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약화를 불러오고,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것이 나 교수의 주장이다.
 

"숫자를 관리하는 재정준칙에서 벗어나야"


나 교수는 이번 재정준칙이 재정수지를 관리를 원칙으로 삼으면서도 증세 계획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정수지를 관리하기 위해선 수입과 지출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윤 정부의 재정준칙은 지출 관리만 강조하고 있을 뿐 재정 수입, 즉 세입을 확대하는 증세 계획은 없다. 오히려 정부는 법인세 등 감세를 기조로 삼고 있다. 수입이 늘어나는 방안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좁혀놓은 셈이다.

또한 현재 당면한 기후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산업구조 전환에 대한 계획도 보이지 않는다. 나 교수는 "재정준칙은 전환기와 전환기 이후의 장기로 나누어 내용을 달리해야 한다"면서 "그 중 전환기의 경우 전략적 지출 소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정준칙에 관한 세계적인 흐름에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운영에 대한 최근 논의에서 대세는 고정된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과거 방식은 지양하자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숫자를 기준으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은 유럽연합(EU)을 결성하던 1992년 당시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국가채무 GDP 대비 60%, 재정수지 적자 3%를 준수하도록 했다. 그러나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이를 준수하지 못했다.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조차 2002년 이후 국가채무 비율을 지키지 못했고 2019년 국가채무 비율은 GDP의 97.6%까지 상승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맞자 결국 유럽연합은 올해 초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면책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이미 실패가 예견된 재정준칙을 다시 한국에서 해보겠다는 셈이다. 나 교수는 "재정운영의 틀을 재정립하기 위한 최근 논의 맥락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재정 지표 수치를 관리하는 방식보다는 재정을 운영하는 원칙을 규정한 재정 규범을 정하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영국 노동당 정부가 도입한 '재정신뢰성 규칙(fiscal credibility rule)'은 공공투자에 국한해 적자지출을 허용하고 일반 지출은 증세로 조달하는 등을 재정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단순히 재정 지표를 관리하는 것이 아닌 경제 상황에 따른 재정 활동 원칙을 정하는 방식이다.

GDP 대비 60%로 국가채무를 관리하겠다는 기준 자체도 근거가 없다. 국가채무비율이 높을수록 성장이 지체되고 경제가 불안정해진다는 일반적인 주장과는 반대로 재정지출 확대가 국가채무비율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부채의 역설(paradox of debt)'이 제기되기도 한다. 부채의 역설이란 국가채무비율을 줄이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에 나설수록 결과적으로 국내총생산을 줄여 국가채무비율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다.

IMF도 지난 2011년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GDP 대비 60%라는 기준은 채무 위기와 직결된 것이 아니며 채무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쓰여서도 안 된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나 교수는 "국가채무비율 GDP 대비 60%라는 기준이 근거가 없는 것처럼 재정적자비율 3%도 아무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재정건정성을 위한 재정준칙이 필요하다면 지금과 같은 지표를 관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한다. 기계적인 재정준칙 때문에 성장률이 높은 상황에서도 국채 관리를 이유로 정부가 빚을 못 내고 공공투자의 재원을 한정하면, 이는 공공투자 자체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나 교수는 재정준칙을 바라보는 틀로서 재정의 '책임성(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국민경제에 대한 기능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재정이 지속할 수 있도록 재정건전성도 신경써야 하지만, 고용확대, 양극화·불평등 해소 등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재정의 역할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나 교수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즉 재정건전성만 일면적으로 강조하면서 재정이 마땅히 국민경제를 위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는 회피해온 측면이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은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부채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에는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 국가부채를 줄이겠다는 의지만 들어있을 뿐, 사회적 책임과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는 찾아볼 수 없다.

나 교수는 "재정적자에 대한 당국의 과장된 우려로 나라빚을 줄일 수 있으면 중·저소득 가구가 희생을 입더라도 어쩔 수 없는 듯 여기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그런 접근법이야말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대다수 시민의 경제적 존엄을 위한 과제라도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는 인식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김백겸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