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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한 소회…

 
 
새누리당, 민주당, 정의당…에게 말한다, 역사의 눈은 매우 냉철하다
 
임두만 | 등록:2013-09-05 10:01:14 | 최종:2013-09-05 10:25:3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는 헌정사상 세 번째로 현역의원이 북한과 연계된 간첩 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사례다.

앞서 첫 가결 사례는 2대 국회에서 있었다. 당시 집권여당이던 자유당 소속의 양우정 의원은 1953년 10월 17일 ‘언론계 간첩 침투 사건’으로 불린 일명 ‘정국은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동의안이 제출되었으며 국회에서 가결됐다. 양우정 의원이 발행인으로 있던 ‘연합신문’에서 간첩혐의로 체포된 정국은이 일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자유당 2인자 자리를 놓고 다툰 이기붕과 양우정의 권력쟁투에서 이기붕이 승리한 자유당 내 파벌싸움이었다는 것이 지금도 회자된다.

양우정은 광복 후 우익 언론인으로서 활동했으나 항일 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해방 후 이승만이 득세하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선전부장으로 반탁 운동에 참여했다. 또 언론인으로서 이승만의 독립운동 경력과 정치 이념을 홍보하는 등 이승만 어용의 길을 걸었다.

이랬던 양우정은 고향인 함안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자유당의 2인자로 부상했다. 이에 2인자 자리를 놓고 싸우던 이기붕 일파가 양우정을 제거하기 의해 만든 사건이 ‘정국은 간첩사건’이란 얘기다. 물론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정국은은 양우정의 연합신문 논설위원이었다. 결국 그 이유로 이기붕이 양우정을 잡았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신한민주당 유성환 의원이다. 일명 유성환의 통일국시 발언이라는 설화였다. 1986년 10월 14일, 신한민주당 유성환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총리, 우리나라의 국시가 반공입니까? 반공을 국시로 해두고, 올림픽 때 동구 공산권이 참가하겠습니까? 나는 반공정책은 오히려 더 발전시켜야 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강대국들의 한반도 현상고착 정책에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분단국에 있어서의 통일 또는 민족이라는 용어는 이데올로기로까지 승화되어야 합니다. 먹고, 자고, 걷는 것, 국군이 존재하는 것 모두가 통일을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그 위에 있어야 합니다. 통일원의 예산이 아세안게임 선수 후원비보다 적은 것은, 사실상 통일을 기피하는 것 아닙니까? 국가의 모든 정책, 사회기풍, 모든 역량을 통일에 집중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위대하고 영원한 화해는 통일입니다.”

그러나 이 발언으로 국회는 난장판이 되었고 유성환 의원은 현역의원 신분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이 되어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고 구속된다. 즉 유성환 의원의 발언이 있은 지 이틀 후인 10월 16일 밤 유성환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을 여당인 민정당 단독으로 처리하므로 유성환 의원은 구속되었다.

이를 포함, 1948년 이후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안 48건 중 가결된 사례는 11건이다. 그러나 대부분 개인비리 사건이었고 특별히 자유당과 이승만을 망하게 했던 3.15부정선거와 관련된 사범들이 4.19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번 이석기 체포동의안은 앞선 두 건과도 다르다.

앞에 거론했지만 양우정 의원은 여당 내 권력쟁투에서 패배한 사례이며, 유성환 의원은 불의한 권력이 저항하는 민중을 제어하기 위해 휘두른 매카시즘 칼날에 희생된 사례다.

당시 신한민주당은 민정당의 유성환 의원 구속 기도에 강력한 저항을 했으나 힘의 열세를 어쩌지 못했다. 특히 민정당은 밤중에 자당 의원들을 비상소집, 현역의원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는 무리를 저질렀다. 그리고 이를 기화로 민정당은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했고 끝내 국민들의 6월 항쟁에 항복해야 했다. 또 체포동의안은 아니지만 김영삼의 국회의원 제명 안을 날치기 처리한 박정희의 공화당도 이 제명처리안의 날치기 때문에 박정희가 부하에게 저격당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이석기 체포동의안 국회가결, 재석 289, 찬성 258, 반대 14, 기권 11, 무효 6… 엄격히 하면 289명의 10%도 안 되는 25명이 현역의원 체포를 반대했다는 말이다. 명시적 반대 14명, 묵시적 반대 11명… 이 중 이석기의 통합진보당 의원은 6명이다. 이들을 빼면 19명이 직접적이든 묵시적이든 반대했다. 나는 이들 중 ‘가결될 것이 확실하니까 나라도 반대라는 기록을 남기자’는 생각을 했던 기회주의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을 빼면 양심에 따라 반대한 의원이 몇일까? 나는 이 점도 궁금하다.

어떻든… 이석기는 이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내란예비음모’를 한 ‘혁명조직 RO의 수괴’라는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박근혜와 새누리당, 국정원과 검찰 등이 헛발질 뻘짓을 할 때마다 뜬금없이 언론을 장식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북한 또는 간첩으로 돌리게 할 것이다. 국정원의 원대한 계획은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래서다. 새누리당, 민주당, 정의당… 당신들에게 말한다. 역사의 눈은 매우 냉철하다. 당신들의 오늘 행위에 대해 역사는 뭐라고 할 것인지 나도 모르고 당신들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박근혜를 필두로 한 불의한 권력이 정의로운 민중들의 저항을 뚫기 위하여 했던 작전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이석기 일파가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부정한 힘으로 권력을 잡았다는 의혹에 싸인 박근혜, 그 부정한 행위를 조직과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음습한 곳에서 저지른 국정원, 이를 옹호하고 덮으려는 경찰, 권력의 단물이 언제나 좋은 검찰, 그리고‘출세’라는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돌리려는 어용언론인들… 여기에 이들의 본산인 새누리당… 이 5각 편대가 기획하고 성공시킨 원대한 정치작전이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이 작전에 초토화 된 민주당이란 야당, 이 작전의 뇌관이 스스로 되어 준 이석기와 그 일파… 이 작전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계속 허둥대며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정희와 통진당… 역사는 매우 냉철한 눈으로 2013년 대한민국 정치의 흑역사 주인공으로 당신들을 기록할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지금 매우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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