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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부터 사막까지, 세계 5대 기후대가 한 지붕에

극지부터 사막까지, 세계 5대 기후대가 한 지붕에

 
조홍섭 2013. 09. 04
조회수 9442추천수 0
 

11월 문 여는 `제2의 지구' 막바지 준비 한창, 습지원은 벌써 자리잡아

자연에 중심 두고 생태계 느끼도록 설계…한반도와 열대숲 고스란히 재현 등 볼거리

 

eco1.jpg » 생태습지에서 바라본 생태체험관 에코리엄 전경. 2층짜리 건물이지만 연면적은 2만㎡가 넘는다. 높은 유리돔은 열대관이다.

 

기존 동·식물원과 뭐가 다른가

 

지난해 8월 부산 해운대구 송정 방파제에서 어미를 잃고 헤매다 탈진한 채 발견된 어린 수달 2마리가 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지난달 29일 개울을 잘라낸 듯한 모습의 생태원 수달 전시관을 찾았다. 피라미, 납자루 등 민물고기가 흐르는 개울에서 헤엄치고 있었지만 수달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eco2.jpg » 개울을 가로막은 형태의 수달관. 자연성을 최대로 높였지만 수달을 직접 보기는 쉽지 않다.
 

“풀숲 어딘가에 숨어있을 겁니다.” 정석환 국립생태원 동물 담당 박사가 말했다. 개울가에는 널찍한 풀밭 사이에 쓰러진 고목, 돌무더기 등이 널려져 있었다. 한참만에 풀숲을 헤치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수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동물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사람이 동물 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정 박사가 설명했다. 고라니와 노루 8마리를 풀어놓은 사슴 생태원에서도 동물을 보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힘들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여가시설은 동물원, 식물원, 각종 공원 등 많다. 사람이 보기 편하고 즐겁도록 동·식물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반대로 자연을 중심에 두고 사람이 생태계를 배우고 느낄 수 있도록 한 곳이 국립생태원이다.
 

eco3.jpg » 국립생태원 야외에는 방대한 규모의 습지가 조성돼 있다. 묵논과 기존 지형을 살린 습지는 조성 1년 만에 벌써 자리를 잡았다.

 

충남 서천군 갯벌을 매립해 들어설 예정이던 국가산업단지 대신 건립된 국립생태원이 11월초 정식 개원을 위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100만㎡의 터와 연 면적 5만 8000㎡의 전시관에 한반도는 물론 열대우림, 사막, 지중해, 극지, 온대 등 세계의 주요한 생태계가 망라돼 있어 ‘제2의 지구’라고도 부른다.
 

올 봄까지도 썰렁하던 생태원 야외 전시장은 여름을 거치면서 몰라보게 풍성해졌다. 대규모 습지생태원 덕분이다. 생태체험관 에코리움 앞 습지에는 노랑어리연꽃, 수련, 연꽃 등이 아직도 꽃을 매달고 있었다. 마름, 자라풀, 낙지다리, 자주달개비, 보풀, 물질경이 등 다양한 자생 수초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관리인은 “솎아내기 바쁘다”고 말했다.

 

eco4.jpg » 습지원에 물을 공급하는 120년 된 저수지 용화실 방죽. 외래어종이 전혀 없는 드문 저수지이다.

 

이미 습지에서는 개개비, 쇠물닭, 원앙, 물떼새 등이 번식을 했고, 고라니의 발자국이 찍혀 있는 등 포유동물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습지 생태계가 빠르게 자리 잡은 데 대해 원창오 국립생태원 전문위원은 “원래 하천과 논 등을 그대로 습지로 활용하고 여기에 수심 변화로 지형을 다양화시키는 방식을 채용한 것이 생태계의 빠른 복원을 불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습지의 물은 120년 된 저수지를 확장한 용화실 방죽을 통해 공급한다. 이 방죽에는 블루길, 배스 등 외래어종이 전혀 없다.

 

생태원은 금강 하구에 위치해 100년에 한 번꼴로 큰 홍수가 나며, 생태원은 습지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허용할 방침이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건물 안 체험관에는 외국 생물이 가득하지만 야외 체험공간은 외래종 없이 자생종으로만 이뤄진 생태계를 유지한다.

eco14.jpg » 한반도숲의 월악산 소나무 군락 한 부분. 가로 세로 5m 구간에 원 식생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제법 자연생태계 꼴을 갖춘 습지에 견줘 생태원 야외의 나무들은 버팀목에 기댄 채 이제 뿌리를 내리느라 수세도 빈약하다. 생태원쪽은 숲이 제 모습을 찾으려면 5~6년은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그렇지만 훼손되지 않은 한반도의 대표적 숲을 고스란히 본떠 재현해 놓은 ‘한반도 숲’에 대한 자부심은 크다. 예를 들어 월악산 소나무 군락은 월악산에서 가로세로 5m의 모델 숲을 정한 뒤 그곳에 위치하는 모든 나무와 풀의 위치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어떤 나무 옆에는 주로 어떤 나무가 살고 그 나무 밑에는 어떤 풀이 자라는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1㎞가 넘는 숲의 나무를 일일이 이런 고려 아래 심은 것이다.

 

완도부터 설악산까지, 소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구상나무 등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숲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1㎞가 넘는 숲의 모든 수종을 일일이 조사해 선정해 심다 보니 조성에 3년 이상이 걸렸다.
 

유태철 국립생태원 기획총괄팀장은 “생태원에서는 종보다 생태계를 줌심에 놓는 점이 기존 식물원과 다른 점이다. 한 가지 식물을 한 군데 몰아넣으면 보기에 좋을지 몰라도 자연적으로는 어색한 모습이 된다. 생태원에서는 지저분해 보일지 몰라도 자연에 맡겨 둔다.”라고 말했다.
 
주목할 전시물과 시설

 

eco5.jpg » 살아있는 산호와 물고기가 사는 순환형 생태 수조. 인공적인 물 여과를 전혀 하지 않고 자연광을 비춘다.

 

eco6.jpg » 홍수림(맹그로브)에 사는 물고기를 기르는 수조.

  
살아있는 산호와 물고기를 기르는 수조는 대개 햇빛을 차단해 조류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생태원의 산호 수조는 조류의 번식을 허용한다.

 

또 물만 바꿔줄 뿐 여과를 하지 않는다. 기존 수족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 관리 방식이다. 대신 산호와 조류, 물고기 사이의 먹이사슬을 통해 수질을 유지하도록 생태계 기법을 채용했다. 정석환 박사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어서 물고기를 모두 죽이는 등 시행착오도 겪었다”고 말했다.

eco7.jpg » 야생 바나나. 열매에는 단단하고 큰 씨앗이 잔뜩 들어있지만 바나나 품종 개량에 쓰이는 소중한 원종이다.

 

열대관에는 화려한 꽃 위주로 조경하는 기존 식물원과 달리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칼리만탄 숲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현지조사를 거쳐 수종과 배치를 원래 열대우림과 똑같이 만들었다.

 

배정진 국립생태원 박사는 “기후변화로 인도네시아 숲의 생태가 바뀐다면 일정한 조건을 유지한 생태원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열대관에는 개량품종인 바나나의 원종인 야생 바나나 30종도 있는데, 이들은 딱딱하고 큰 씨앗이 든 열매를 맺는다.

eco8.jpg » 어린이 놀이터 곁에 자리 잡은 동물보호센터. 부상당해 치료를 마쳤지만 자연에 돌려보낼 수 없는 야생동물을 전시한다.  

 

어린이놀이터 바로 옆에는 아이들의 동물보호 의식을 일깨우고 동물과 친해지도록 하는 동물보호센터가 있다. 이곳의 칡부엉이는 낚시터에서 낚시 줄에 날개가 걸려 큰 상처를 입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로 보내져 치료를 받았지만 야생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여서 이곳으로 왔다.

 

이처럼 사람 때문에 장애를 입은 동물로부터 자연보호를 배우고 이들을 직접 만져보거나 팔에 올려 보는 체험을 통해 동물과 친해지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eco9.jpg » 사막관에 풀어놓은 호주 턱수염도마뱀.

 

자연스런 생태계 모습을 이루기 위해 식물 전시관에 동물을 함께 방사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눈에 잘 띄는 것은 아니다. 제주 난온대림관에는 청개구리와 참개구리 200마리를 풀어놓아 밤이면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지중해관 식물에는 카멜레온이 산다. 물론 나비를 방사하자 애벌레가 식물 잎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등 예상치 않은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생태계를 위한 전시냐, 탐방객을 위한 전시냐의 갈등은 생태체험관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eco10.jpg » 인공 풍혈을 이용해 한여름 최고기온을 낮춰 고산식물을 기르는 시설.

 

고산생태원에는 백두산 등의 고산식물이 한여름 더위를 이기도록 대규모 ‘인공 풍혈’이 조성됐다. 지하에 대형 저수조를 만들어 찬물이 순환하도록 해 그 냉기로 주변보다 3도 낮은 환경을 만든 것이다.  

 

탐방객이 조류를 관찰하도록 조성한 금구리못 주변에는 아이들과 새들의 안전을 고려해 고압선과 도로를 지중화했다. 전선을 약 1㎞ 지중화하는데 120억원의 돈이 들었다.
 

국립생태원의 모델은 2001년 문을 연 영국의 에덴 프로젝트이다. 에덴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는 기후변화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시설 조성과 운영에 이산화탄소 방출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었다.
 

eco11.jpg » 국내에서 처음 도입된 온실 유리창의 창틀 난방 방식. 더운물을 창틀로 흘려 난방하는 에너지 절약형 온실이다. 여름엔 전자제어로 창문을 열어 온도를 조절한다.

 

국립생태원도 조성 과정에서 원래 지형을 그대로 살려 흙을 깎고 메우는 것을 최소화하도록 설계했다. 초대형 건물인 전시관을 2층으로 만든 것도 높이를 낮춰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자는 뜻에서였다. 이 건물에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만 있다. 

 

전시관의 온실 유리창에는 창틀난방 방식을 도입해 창틀 둘레를 관으로 두르고 그 속에 온수를 위에서 아래로 흘려 난방을 하도록 했다. 이 방식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내부를 고루 덥히는 효과를 낸다.

 

지열에너지를 대규모로 활용해 난방과 냉방 에너지는 지하 100m에서 얻는 70~80도의 온수를 이용해 전량 충당한다.
 

이밖에 방문자 숙소는 단열 강화 등을 통해 화석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는 패시브하우스 방식이거나 연간 ㎥당 기름을 2ℓ 이하를 쓰는 에너지절약형 건물이다.
 
극복할 과제
 

eco12.jpg » 극지관의 펭귄 전시관. 남극 세종기지의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을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들여왔다. 생태원에서 탐방객이 쉽게 동물을 구경할 수 있는 예외적 시설이다. 사진=국립생태원


국립생태원은 지난 6년 동안 3400억원이 투입된 국가 시설이다. 기존 민간시설과 기능의 중복과 경쟁을 피하면서 공익에 기여하고, 동시에 지역주민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한 국립생태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이 명시한 구체적인 사업 10가지 가운데 6가지가 조사·연구·평가이고 여기에 전시, 교육, 생태관광이 추가돼 있다. 일반인을 위한 전시·교육과 지역주민을 위한 사업은 사실상 생태원의 보조 기능에 불과하다.

 

실제로 생태원 시설의 3분의 2는 연구소 등 연구 공간이다. 여기에 기존 국립생물자원관과 국립환경과학원의 생태 관련 기관이 모두 생태원에 이관하기로 정해져 있다.

애초 지역개발의 대안으로 국립생태원을 받아들인 지역주민은 에덴 프로젝트처럼 연간 최소한 1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자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벌써 서천군은 생태원의 전시가 너무 ‘밋밋하다’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작 볼거리 위주로 생태원이 운영되면 막대한 세금을 들여 민간이 하는 또 하나의 시설을 지방에 세운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
 

국립생태원을 국가기관으로 세우려다 ‘작은 정부’ 공약 때문에 공공법인으로 바뀐 것도 문제다. 당장은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하겠지만 앞으로 예산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라는 압력이 커질 경우 자체 수익사업에 급급해 연구보다는 전시에 비중을 두어 공익성이 뒷전에 놓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갈등을 풀기 위한 방안으로 생태원은 이 시설의 교육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유태철 국립생태원 총괄기획팀장은 “생태원은 실내·외에 다양한 교육재료와 시설, 최고의 강사진을 갖춘 환경교육 시설이다. 장기적으로 이런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요즘 교장을 대상으로 한 팸투어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천/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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