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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민영화로 요금 싸져?"…일본·영국·스페인을 보라

[민영화 공동 기획 ⑥] 천연가스 직도입 정책 전면적 재검토 필요

백종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기획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9-05 오전 7:05:04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토교통부는 '자회사' 형태의 수서발 KTX 분리를 추진하고 있으며, 기획재정부는 영리 병원과 각종 규제 완화로 대변되는 '의료 산업 활성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도시 가스 도매 시장에 경쟁 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가스 민영화법(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일부 지자체도 수자원공사를 통해 상수도를 민간 위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과 민주노총은 철도,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민영화(사유화) 현황을 짚는 기획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편집자>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 시민적 참여,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인간사회의 덕목이 사라지게 된다. 효율성만 추구하기보다는 무엇이 정말로 소중한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한다 -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中



국내 천연가스 도입은 1970년대 1,2차 석유파동 이후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과 성장위주 경제정책에 의한 환경오염을 개선하고, 국민들에게 쾌적하고 편리한 청정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80년대 초반부터 추진되었다.

대부분의 국가기간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전 부문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LPG와 연탄 등 지역 난방사업자들의 반발로 인해 해외 천연가스 수입과 국내 도매사업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수행하고, 한국가스공사로부터 공급받은 천연가스를 가정 또는 산업체에 소매하는 사업은 전국 각 지역별로 독점 영업권을 부여받은 30개의 민간 도시가스 회사가 수행하는 산업 구조로 출발하였다. 일반 시민이 가스산업이 이미 민영화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이런 기형적인 산업구조에 기인하는 것이다.

국내 가스산업이 성숙단계에 들어서기도 전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아래 놓인 한국은 영국식 공기업 분할매각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때부터 추진되었던 국내 가스산업 민영화 기도는 끊임없이 실패하였고 박근혜 정부 들어 또다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LNG 수송선. ⓒ연합뉴스


집요하게 시도되는 가스 민영화

1999년 11월 정부는 한국가스공사를 3개의 도입·도매회사와 1개의 설비회사로 분할하여 도입·도매회사는 민간에 매각하고 설비회사는 공기업으로 유지한다는 민영화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2년 2월 25일 철도·발전·가스 공동 파업이 일어나고 노동조합이 제기했던 민영화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2005년에 이르러 민영화 추진은 일단 중단됐다.

파업 당시 노·정 협약을 통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국내 가스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동조합의 합리적 대안을 검토하여, 민영화 시기 및 시행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것이 정부의 일방적인 민영화 추진에 제동 장치로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MB 정부 들어서 2008년 10월에 가스 도입·도매부분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명분 아래 에너지 재벌기업이 신규로 가스 산업에 진입하는 방식의 민영화 계획이 다시 발표됐고, 이는 정부 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에너지 재벌 기업의 천연 가스 산업 진입은 재벌 특혜 보장과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 폭등을 유발하고 국내 가스 수급을 불안하게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민영화 법안은 18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에서는 또 우회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천연가스 민간 직수입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며 새누리당 청부 입법을 통해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지난 4월 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에너지 재벌 기업에게 사업 기회를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제출된 개정안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자가소비용(발전용, 산업용)으로 천연가스를 직수입하는 에너지 재벌 기업들의 부정확한 수요 예측 또는 고의로 과대 수입한 천연가스 물량에 대해 국내 판매를 보장하는 것이다. 둘째, 천연가스 반출입업이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발하여 자가소비용 직수입자에게 천연가스 반출입업 사업자라는 겸업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실제 에너지 재벌 기업은 자가소비용 직수입과 천연가스 반출입업을 동시에 수행하면 해외 판매뿐만 아니라 국내 발전용, 산업용 물량을 판매하는 사업자로 확실히 자리 매김하게 되며 그 규모는 국내에 수입되는 천연가스 물량의 70퍼센트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민영화 공동 기획
<1> '박정희 폐해' 해결책이 사유화? 잘못 짚었다
<2> 50여 명 죽인 '돈 먹는 하마'…한국 철도도?
<3> "세계 어디서도 안 되는 걸 왜 박근혜 정부는 된다고 하나"
<4> 박근혜 야심작 '의료 관광', 실은 독(毒)사과?
<5> "동남아처럼 의료 관광하자던 정부, 태국 의료 현실 아나?"


민영화 본질은 '재벌 이익' 확대…"영국, 스페인, 일본을 보라"

가스 민영화와 관련해 정부는 천연가스 민간 직수입 활성화에 대한 효과로 천연가스 공급 비용과 전기 요금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한전 5개 발전 자회사 영업이익률은 6.7퍼센트인 반면, 일부 민자 발전사(SK E&S)의 영업 이익률은 무려 51.5퍼센트이며 영업이익은 4609억 원에 이르렀다. SK E&S가 보유한 설비 용량은 한전의 5개 발전 자회사가 보유한 설비 용량의 1.4퍼센트 수준이고, 발전 자회사의 2010년도 영업이익이 1조 5450억 원임을 감안할 때 실로 놀라운 경영 실적이다. 이는 그동안 대기업이 천연가스를 싼값으로 수입해서 발전 시장에 참여했지만 전기 요금은 내리지 않고 대기업만 막대한 이득만 올려왔음을 의미한다. 결국 대기업 이익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새누리당 개정안의 본질인 것이다.
 

(자료 출처 : 2011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


다행히 한국에서는 가스산업 민영화로 인한 가스요금 인상 사례가 지금까지 없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 천연가스 수입과 판매를 맡긴 일본은, 천연가스 도입 비용은 한국과 유사하지만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이 가장 비싼 나라로 알려져 있다. 또 일본의 가정용 도시가스요금은 산업용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국내의 경우에도 에너지 대기업의 직수입이 확대될 경우 동절기 수요가 집중되는 가정용 도시가스는 이미 민영화된 일본 사례처럼 원가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2배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 IEA Energy Price & Taxes(2012년4분기), 2008년 일본요금 미발표)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유럽에서는 1998년 가스 지침이 제정된 이래 가스 시장 민영화 성과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있다. 이탈리아 칼리아리(Cagliari)대학의 도론조(Doronzo)교수는 가스 산업 자유화를 진전시킨 유럽 15개국을 조사한 결과 가스 산업 자유화와 소비자 요금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발견하지 못하였음을 보고하였다. 그러나 제20차 세계에너지총회(WEC)에서 이탈리아 국영 석유기업 ENI 회장은 "그동안 유럽연합(EU)은 외부 시장보다 내부 시장 자유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으나, 공급자가 과점인 상황에서 내부 시장의 자유화가 소비자 가격 인하로 귀결되지 않는다"라고 발표하였다. 또한 이탈리아 파비아(Pavia) 대학 Alberto Calvaliere 교수도 "공급 안정성을 위해 불가피한 다수의 장기 계약은 도ㆍ소매 가격경쟁을 제한하여, 시장 자유화로 인한 소비자 혜택이 미흡하며 신규 진입에 따른 시장 분할만 야기"한다고 주장하였다.

영국은 1986년부터 브리티시가스(BG·British Gas)를 민영화하고, 연간 약 50톤 이상 수요자에 대해 공급자 선택권을 부여하였으나, 실질적인 경쟁은 1996년부터 실시하였다. 1996년부터 단계적으로 가정용 소비자에 대해서도 경쟁을 추진하여 1998년부터는 모든 수요자에 대해 경쟁을 실시하였으나 가정용 소비자에 대해서는 2001년까지 소비자 보호를 위한 명분으로 가격규제(Price-cap) 시행하였다. 영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시장 자유화 초기인 1986년부터 2000년 말까지는 국내의 풍부한 생산량을 바탕으로 하향 추세를 보이다가, 2001년 이후 국내 생산량이 줄어들고 해외에서 수입되는 천연가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가격 등락폭이 커지고 전체적인 가격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스페인은 1998년 탄화수소법 제정으로 가스시장 자유화 로드맵을 설정하였으며 2000년부터 신규 사업자를 진입하도록 하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가스가격 통계자료에 의하면, 1998∼1999년 기간 중 스페인 최종 소비자 가격은 약 2∼7퍼센트 하락하였으나, 2000년부터 신규 사업자가 진입했으므로 가스산업 경쟁도입과 무관하다. 가스산업 경쟁도입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2000년부터 최종 소비자 가격은 오히려 가정용은 32퍼센트, 산업용은 75퍼센트 급격하게 인상되었다.
 

(출처 : IEA의 Natural Gas Information(2009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일본은 1995년 가스사업법 개정으로 가스시장 자유화에 따라 신규사업자 진입을 허용하였다. 1998∼1999년 기간 중 저유가 영향으로 일본 최종 소비자 가격은 일시적으로 하락한 이후 2007년까지 큰 변동 없이 유지됐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도시가스 가격이 평균 14퍼센트 하락했으나, 이는 원료비를 제외한 공급비 부문만을 고려한 것이며, 일본의 공급비는 전체 요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고, 타 연료(전기 등)와의 경쟁 심화 등에 따른 설비투자 축소 등의 방법으로 공급비를 절감하였다(일본가스요금: 원료비 40퍼센트, 공급비 60퍼센트로 구성, 한국가스요금: 원료비 84퍼센트, 도매·소매공급비 16퍼센트). 그러나 민간 사업자의 '이윤 극대화 원칙에 입각한 설비투자 축소'는 오히려 보편적 서비스 확대를 저해했다는 평가이다. 일본의 경우 판매 부문 시장 개방과 신규 진입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독과점 체제로 인한 설비 분산 운영, 사업자간 암묵적인 공급 권역 보장 등으로 가스 요금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출처: IEA의 Natural Gas Information(2012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내리지 않는 석유 가격, 내리지 않을 가스 가격

한국은 인접 국가와 배관망 네트워크가 없고 전량 액화 천연가스(LNG)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 동하절기 수요편차가 극심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가스요금은 일본에 비하여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가정용과 산업용 도시가스 요금 정책을 보면 민영화가 진행된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가정용과 산업용에 비슷한 공공적 가격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는 가정용이 산업용에 비하여 2배 정도 비싼 정책을 취하고 있다. 가스 산업이 민영화된 국가에서는 연간 사용량이 많고 연중 일정하게 사용하는 산업용에 대해서는 할인 정책을 취하고 소량과 연중 사용량 편차가 큰 가정용에 대해서는 가격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정책을 취하기 때문이다.
 

(출처: IEA, Natural Gas Information, 2012, )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 TOE: Tonnage of Oil Equivalent / LNG(Liquefied Natural Gas) : 액화천연가스 / PNG(Pipeline Natural Gas : 파이프를 통해 공급되는 기체천연가스)


가스산업 민영화의 최종 종착지는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 인상과 에너지 재벌 기업의 이윤 증대다. 따라서 새누리당에서 제출한 민간 직수입자의 국내 판매를 허용하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은 명백한 경제 민주화 악법이며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민간 직수입 확대를 통한 가스산업 민영화가 초래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관련 당사자 및 학계 전문가 참여하에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천연가스 민간 직수입을 확대해도 가스산업 지배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결국 에너지 재벌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석유산업처럼 국내 가스산업의 과점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에너지 재벌 기업의 가스산업 지배력이 더 확대되기 전에 국민 편익과 에너지 공공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천연가스 산업 정책을 재편하는 것과 함께 에너지 재벌 기업의 영업이익만 올려주는 자가소비용 천연가스 직도입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백종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기획국장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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