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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목욕탕에 떨어진 529만원 ‘가스비 폭탄’

식자재값 상승에 ‘가스비 폭탄’까지... “자영업자 다 죽는다”

동네 목욕탕 자료사진 ⓒ뉴시스
“이렇게 작은 목욕탕에 가스요금이 500만원이 넘게 나왔어요. 말이 돼요? 3개월 전보다 2배 넘게 오른 거예요. 2월엔 가스요금이 더 많이 나올텐데, 우리 부부 인건비는커녕 대출 더 받아 가스비를 내야 할 판이에요”

서울시 종로구 인근에서 남편과 단둘이 ‘ㅅ’사우나를 운영하는 진모(55)씨는 지난달 ‘가스비 폭탄’을 맞았다. 진씨가 내민 1월 도시가스요금 고지서에는 528만8,620원(사용량 6,012㎥)이 찍혀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ㅅ’사우나는 말이 사우나지 실제로는 52평 남짓한 크기의 ‘동네 목욕탕’이다. 1층이 여탕, 지하 1층은 남탕이다. 사우나 출입문 앞에는 ‘목욕합니다’라고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가격은 1인당 8천원이다. 이용권을 10장 단위로 구매하면 장당 7천원으로 낮아진다. 손님 대다수는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다. 보통 하루에 40~50명 정도의 손님이 이 목욕탕을 찾는데, 대부분 10장 이상씩 이용권을 구매하는 단골들이라는 게 진씨의 설명이다.

“가스비 부담이 커졌느냐”는 물음에 진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영수증을 모아둔 바구니를 한참 뒤진 진씨는 “다른 고지서는 버렸는지 없다”며 작년 10월과 12월 나온 가스요금 고지서를 찾아 보여줬다.

 

 

 

‘ㅅ’사우나 도시가스요금 고지서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작년 10월 고지서에 적힌 가스 사용량과 가스요금은 각각 2,956㎥, 218만6,960원이었다. 그런데 두 달 뒤인 12월 고지서엔 적힌 사용량과 금액은 5,009㎥, 435만9,730원이다. 겨울이 시작되며 가스 사용량이 69.4%(2,053㎥)가량 늘어났는데, 가스요금은 2배가 늘었다.

진씨는 “200만~300만원 정도 나오던 가스비가 점점 오르기 시작하더니 11월부터 무섭게 올랐다”며 “겨울에 가스사용량이 늘면서 아예 감당이 안 된다. 1월에 530만원 정도 나왔는데, 2월엔 얼마나 나올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목욕탕 문을 여는 게 무서울 정도다”라고 말했다.

목욕탕의 성수기는 겨울이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손님도 늘어난다. 날씨가 추울수록 온탕과 사우나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게 진씨의 설명이다. 진씨는 “날씨가 따뜻할 땐 손님이 없다. 이럴 땐 가스비가 100만원 후반에서 200만원대 초반 정도가 나온다”며 “하지만 겨울이 되면 손님도 늘고, 가스비도 200만원대 중반에서 300만원대 초반까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진씨가 가스비 폭탄을 맞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스요금은 지난해 4월과 5월, 7월, 10월 등 총 4번이나 인상됐다. 인상폭은 3%, 9%, 7%, 15.9%다. 날씨가 따뜻해 손님이 없는 4월과 5월, 7월엔 가스 사용량 적어 가스요금 인상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10월 15.9%나 인상된 가스요금은 ‘폭탄’이 됐다. 겨울로 접어들며 늘어난 손님들로 인해 가스 사용량이 늘었는데, 가스요금까지 큰 폭으로 인상된 탓이다.

진씨는 “1월에 사용한 가스비가 2월에 나올 텐데,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시기였다. 가스도 더 많이 썼다. 더 큰 ‘가스비 폭탄’이 예상된다”며 “남편과의 대화 대부분이 다음 달 가스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탄했다.

진씨 부부는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인근에 시설 좋은 대형사우나들이 많아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줄어들까’ 마지막까지도 가격인상을 두고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은 찾을 수 없었다. 진씨는 “목욕탕 운영은 남편과 둘이서 하고 있다. 줄일 수 있는 인건비도 없다”며 “결국 목욕비를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진씨의 말대로 목욕탕 한쪽 벽면에는 ‘부득히 요금을 1천원 인상하게 되었습니다. 2월 5일부터 목욕비 8천원에서 9천원으로 인상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식당가 자료사진 ⓒ뉴시스

 

‘가스비 폭탄’에 휘청이는 자영업자... “조만간 문 닫는 가게 속출할 것” 


음식점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들도 ‘가스비 폭탄’에 휘청이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ㅅ’중국집을 운영 중인 최모(41)씨는 작년 말부터 매출이 소폭 늘었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식재료 가격이 계속 오르는 데다, 조리시 사용하는 도시가스 요금까지 크게 오른 탓이다.

최씨가 보여준 1월 가스요금 고지서에는 사용량 826㎥, 사용요금 77만6,850원이 찍혀 있었다. 원래 40~50만원대였던 가스요금이 점점 오르더니 불과 몇 개월만에 8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15평 남짓한 점포에 테이블 9개를 두고 영업 중인 이 중국집은 요즘 보기 드물게 배달원을 따로 고용해 배달하고 있다. 배달 주문시 발생하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직원은 최씨와 그의 어머니를 포함해 총 8명이다. 주방 3명과 홀 1명(어머니), 배달 3명이다. 최씨는 어머니와 함께 홀과 카운터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다.

최씨는 “매출이 오르는 만큼 수익도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물가에 이어 가스요금까지 오르니 장사하는 게 너무 버겁다. 인건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식자재 가격이 급등할 당시 이미 가격을 한차례 올렸기 때문이다. 인상 폭은 메뉴별로 10~15% 정도였다.

최씨는 “그때도 ‘너무 비싸다’는 단골들의 항의가 이어졌었다”면서 “그래서 가격을 다시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근처에 중국집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장사를 계속하려면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코로나19로 인해 근근이 버텨온 시간이 다 지나갔나 싶었는데, 이젠 식자재 물가와 가스비가 미친 듯이 오르고 있다”며 “자영업자들을 다 죽이려 작정한 것 같다”고 성토했다.

 

 

 

고지서 자료사진 ⓒ뉴시스

다른 지역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강북구에서 10평 규모의 ‘ㅅ’라멘집을 운영 중인 김모씨도 가스요금 인상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 작년 9월과 10월 각각 70만3,260원(사용량 900㎥), 69만2,590원(887㎥)이었던 가스요금이 그해 11월 89만7,230원(1,025㎥)으로 올랐다. 가스 사용량이 늘어난 데다, 가스요금까지 큰 폭(15.9%)으로 오른 탓이다.

가스 사용량이 비슷했던 같은 해 7월(1,029㎥) 가스요금이 74만9,04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5개월 사이 24만8,190원(33.1%)이 오른 셈이다.

최씨는 “‘가스요금 폭탄’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그제서야 정부가 대책마련에 나선다고 한다. 영세사업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들뿐”이라며 “자영업들도 가스비 인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식재료 물가도 계속 올라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서울 관악구에서 ‘ㅁ’김치찌개 전문점을 운영 중인 유모씨도 1월달 가스요금으로 45만원이 나왔다. 작년 1월 가스비가 34만원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새 11만원(32.3%)이 오른 셈이다.

유씨는 “가스도 비슷하게 썼던 것 같은데 가스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의아했다”며 “직접 검침원에게 전화해 확인해보니 ‘사용량이 비슷한 건 맞지만, 가스요금이 그만큼 올랐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설명했다.

‘가스비 폭탄’은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들에게 큰 화두 중 하나다. 유씨는 “자영업자 모임에 가면 가스요금 오른 얘기밖에 안 한다. 정부와 국회가 대안을 세워야 하는데 서로의 탓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라며 “대부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더 지속된다면 조만간 문을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기 시작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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