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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 ‘아메리카니즘’은 무엇인가

[서평] 냉전 체제와 자본의 문화
 
耽讀 | 등록:2013-09-08 10:06:29 | 최종:2013-09-08 10:51: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은 "나는 국정원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고, 김무성 의원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고 했습니다. 또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공판에서 "수도 서울의 치안과 질서 유지를 위한 충정에서 한 발언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적반하장'이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단 한 번이라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때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할 때 피해를 입은 사람도 용서를 합니다. 지도자와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일본이 패전했는데 왜 한국이 분단됐는가'라는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는커녕 오히려 큰 소리치는 일본 극우세력들 망언도 분노가 치밀지만, 패전국 일본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한국은 분단만 아니라 민족끼리 전쟁까지 치른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또 다른 패전국 독일과 비교하면 더 명확해집니다.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됐습니다.

전후 일본 좌우한 것은 '냉전'과 '자본'

1945년 8월 미국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이 원자폭탄을 투하합니다. 일왕 히로히토는 항복하고 이후 1952년 4월까지 6년 8개월 동안 미군은 점령국으로 군부통치(사령관 맥아더)를 합니다. 일본은 이후 '55년체제'라고 부르는 '자민당'이라는 거대한 보수정당이 출범함으로써 패전국 일본 또는 일본제국주의에서 벗어납니다.

이렇게 된 데 미국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제역학관계에 문외한 사람들에게 그 깊은 내막은 잘 모릅니다. 이럴 때 이와나미 강좌 중 제9권으로 나온 <냉전 체제와 자본의 문화>(소명출판)는 굉장한 도움을 줍니다.

요시미 순야(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외 6명(번역은 허보윤씨외 6명)이 쓴 이 책은 "전쟁이 끝난 후 정치·경제·사회·문화와 일상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 변화가 어떻게 지금의 일본을 설명하는 의미가 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후 일본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미-소 '냉전체제'와 '자본'의 막강" 두 가지라고 합니다. 특히 한반도에도 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우리 관심을 끕니다.

"38선-휴전선이라는 한반도분단이 냉전 체제의 서곡이었다면, 1950년의 한국전쟁은 냉전체제의 극단적 표출이었으며, 그 이후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막강한 힘은 남한사회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했다. 우리는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지만, 1945년 이래 여전히 분단국가 속에서 살고 있고, 따라서 우리에게도 '전후'는 여전히 중요한 현재진행형의 문제다."(역자서문)

일본식민지에서 해방되었지만, 미국식 자본주의에 의해 우리는 분단국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패전국이 더 부강하게 되는 비극이 지금도 진행 중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완전한 식민지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일본,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메리카니즘' 소비

요시마 슌야는 '냉전 체제와 미국의 소비'에서 "전후에 미국이 점령군으로서 일본에 주둔하면서 미친 영향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면서 "점령자와 피점령자 간의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양자의 능동적인 '포옹'이 전후 일본문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합니다.

"일본 본토에서는 1950년대 이래 전후의 공간이 거의 일방적으로 '미국'쪽에 열려감에 따라 세계적으로 다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열심히 아메리카니즘을 소비했다. 전후 일본에서 '미국'의 소비는, 본국을 능가하는 충실함으로 미국이 대중음악을 노래하는 필리핀과도, 종종 폭력적으로 개입하는 횡포한 이웃 미국에 당하는 처지에 있던 중남미와도 달랐다.(81쪽)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국을 소비한 일본만큼 우리도 미국을 소비합니다. 미국이 바라기 전, 먼저 우리가 미국을 소비하려고 합니다. 미국없는 우리도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이들도 많습니다.

일본이 미국을 소비한 이유에 대해 요시마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이전의 준제국 일본에 스스로를 종속시키는 거울이 준비된 것을 발견했고, 일본은 사회 전체가 '미국'을 우월한 거울로 삼아 자기 아이덴티티를 재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라며 "1950년대 이래 일본에 널리 퍼진 '미국'을 소비하는 시스템은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가요에서부터 디즈니랜드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미국= 일본적인 것'을 탄생시켰다"고 말합니다.

미국이 우월한다는 것이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 택한 것이라는 요시마 주장이 놀랍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35년 동안 우리를 지배하면서 끊임없이 심어준 것이 '조선놈은 못난 놈'이라는 것입니다. 이 인식은 아직도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데 "대한민국은 안 된다"는 자기 비하가 곳곳에 묻어납니다. 자기는 높이고, 다른 이들은 비하하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존재에 대한 존중감을 스스로 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상징 천황제'… 일본 보수주의는 한계에 도달

지난 달 '귀태' 논란 때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강상중 교수(세이가쿠인 대학)는 '전후 '일본'의 재구축'에서 천황제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말합니다. 그는 패전 이후 '상징 천황제', '일본문화론', 보수주의가 일본 국내용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강 교수는 "전전 천황제가 동아시아에 군림하는 구체제적 천황제로, 국민국가의 원리를 넘어선 광역 개념의 아시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패전하면서 이는 완전히 붕괴합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개념이 "'상징 천황제"였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봄 아베는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전전 일본으로 되돌아가려는 일본 보수주의를 상징한 사건입니다.

강 교수는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제시합니다. "한반도 분단 해소"에 일본이 다시 자리매김 해야 한다면서 "그것은 전후 보수주의가 공백 속으로 몰아넣은 과제이며, 일본은 이 문제를 전후 상징 천황제로 해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즉, "천황 폐하 만세"같은 아베 같은 인식으로서는 한반도 분단은 해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상징 천황제가 아베를 비롯한 극우세력이 나아가는 방향인 점입니다. 과연 이런 행보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강상중은 회의적으로 봅니다.

"이 점이 전후 상징 천황제 국가의 가장 큰 한계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은 채 '탈아'를 보다 급진적으로 추진하려 할 때 나타난 것이 더욱 강력한 '종속적인 내셔널리즘' 아래에서의 미일관계 강화가 아닐까. 보수주의는, 전후 미국과의 합작 속에서 비롯된. 일본 국내라는 공간 안에서 독자적인 내셔널 아이텐티티를 전제로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보수주의가 공백상태가 되어 버리는 상황이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보수주의는 분명 한계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156쪽)

영화 <감기>를 보면 미국관리는 '전작권'을 들먹이며 분당을 폭격하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차인표 분)은 수방사령부가 전작권에 해당되지 않는 것을 알고 미공군이 폭격을 하면 격추하라고 명령합니다. <감기>를 보면서 분노한 사람들이 많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현실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계획한 전작권 환수를 이명박 정권이 그대로 추진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감기>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그 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군직접 점령지 오키나와는 "미군에 의한 '강간'구조가 일상적"

전작권만 아니라 미군 범죄는 한 번씩 우리를 분노하게 합니다. 일본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야카비 오사무는 '경계를 는 오키나와'에서 "미군 점령하의 오키나와가 생존 생활에서 소비문화생활로 이행하는 각 시기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여성들이 강간 범죄에 휘말렸다"면서"미군 점령하의 오키나와에서 여성들은 항상 강간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는 "간접점령하에 있던 일본 본토의 미일합작인 '포옹'과 달리, 직접 점령하에 있던 오키나와에서는 미군에 의한 '강간' 구조가 일상적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들 성범죄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미군이 우리를 무조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인간존엄성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분단 체제에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자본'의 막강한 힘으로 남한 사회를 재구성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냉전 체제와 자본의 문화>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합니다.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미국문화에 대한 고찰과 함께 극복할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도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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