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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마저? 윤 대통령님, 이러다 나라 망가집니다

반도체 네 번째 특별과외] '300조 반도체 공장 건설'의 실상

23.03.21 07:37최종 업데이트 23.03.21 07:37

▲ 2022년 5월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의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 발언 중 일부.

안녕하세요.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관심은 많은데 아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기사를 통해 반도체에 대한 기본적인 것만 알려드린 게 작년의 일인데, 그 사이 과외를 좀 받은 것 같네요. 시스템반도체라는 걸 다 언급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발표한 내용을 보니 시스템반도체, 팹리스, 파운드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대충 뭉뚱거려 시스템반도체라고 한 것 같아서 오늘 추가 과외를 하려고 합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테니 긴장말고 편안하게 따라오세요.
메모리반도체 vs. 시스템반도체

우선 반도체의 기본적인 분류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예전부터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반도체로 나눠 왔습니다(이하 메모리와 비메모리). 메모리는 데이터 저장에 특화된 반도체로, 저장 방식에 따라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도 날아가는 휘발성(DRAM 등) 및 데이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비휘발성(NAND Flash 등)으로 또 구분이 됩니다.

메모리는 일반적으로 대량으로 생산해 놓은 후 판매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요에 따라 가격변동이 큽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재고가 부족해 비싸게 팔았는데, 재고가 일 년치 가까이 쌓여 있는 지금은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업체들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 상황입니다. 재고가 더 쌓이는 걸 막기 위해 일부 업체는 감산을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메모리는 한 회사가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류는 그리 많지 않은데 대량생산이 필수적이거든요. 이렇게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는 회사를 종합반도체(IDM)회사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세계 시장의 57%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키옥시아까지 더하면 메모리의 90% 이상을 한미일의 특정 반도체 회사가 공급하고 있습니다.
 

▲ 반도체 소자의 종류와 구분 ⓒ KISTEP브리프. 시스템반도체

 
비메모리는 메모리를 뺀 나머지입니다. 반도체 시장의 30% 정도는 메모리, 나머지 70%는 비메모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메모리 시장이 훨씬 더 큽니다.

비메모리는 크게 시스템반도체와 광・개별소자로 또 나눌 수도 있습니다. 연산이나 제어 등 정보처리 기능을 가지는 반도체를 시스템반도체라고 하는데 컴퓨터의 CPU, 휴대폰의 AP, 전기자동차에 들어 가는 온갖 반도체들이 모두 시스템반도체입니다. 카메라에 쓰이는 이미지 센서는 광・개별소자로 분류됩니다. 요즘은 이 둘을 묶어 그냥 시스템반도체라 부르기도 합니다. 비메모리반도체가 곧 시스템반도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겁니다.

시스템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일반적입니다. 그냥 쉽게 다품종이라고 말했지만 고객사가 요구하는 성능, 전력, 보안, 안전성 등의 기준에 따라 셀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제품을 필요한 만큼 생산하는 게 시스템반도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걸 한 회사가 다 설계하고 생산할 수 없어서 설계는 팹리스 회사가 하고 생산은 파운드리 회사가 하는 식으로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시장이 크고 제품도 다양한데다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주문형 생산 방식이라 가격 변동이 그렇게 크지 않고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시장도 안정적인 편입니다.

파운드리의 경우 대만의 TSMC가 50% 정도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이 삼성전자인데 16% 정도 됩니다. 미국의 GF와 대만의 UMC를 더하면 세 나라의 네 회사가 전체 파운드리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메모리반도체도 그렇고 시스템반도체도 그렇고 한국, 미국, 일본, 대만 이 네 나라의 반도체 회사들이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인 것입니다. 한국의 반도체, 자랑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시스템반도체의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 쪽은 상황이 다릅니다. 팹리스 상위 열 개 회사를 보면 미국의 퀄컴과 엔비디아, 대만의 미디어텍, 중국의 하이실리콘 등 미국, 대만, 중국의 업체들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은 상위 50위로 확대를 해 봐야 겨우 LX세미콘(실리콘웍스) 하나가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앞에서 메모리반도체는 IDM이라 부르는 종합반도체 회사가, 시스템반도체는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분업해서 생산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고, 파운드리 역시 일정 수준의 위치에 올라와 있지만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인 팹리스만 도무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겁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투자 발표는 재탕에 삼탕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가 대충 이해가 되나요? 대통령님은 이번에 세계 최대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뜯어보면 시스템반도체의 핵심이자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한 부분인 팹리스에 대한 지원책은 별로 보이지 않고 민간기업들이 이미 계획해 놓은 투자계획만 취합해 놓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한 국가산단 만들겠다는 거 말고 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반도체 팹 공사가 진행 중인 삼성전자 평택 단지의 모습 ⓒ 삼성전자 유튜브


산업통상부 담당자에게 확인해 보니 향후 5년간 투자한다는 340조원은 현재 건설 중인 삼성전자의 평택 반도체 팹처럼 기업들이 기존에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이던 시설 투자 및 R&D 투자들을 단순 취합해서 더한 금액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건 시스템반도체뿐만 아니라 반도체 전체 투자금액을 다 더한 겁니다.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만든다는 300조원은 언론에 보도된 대로 2042년까지 (그 때 어떤 정부가 들어서 있을 지, 삼성의 회장은 바뀌지나 않았을지 모를 긴 시간이네요) 삼성전자가 짓겠다는 반도체 팹 다섯 개의 비용입니다. 10나노 이상의 최첨단 공정의 경우 팹 하나의 건설 비용을 대략 30조원 정도로 예상하는데 향후 20년에 걸친 장기 계획이다 보니 여유있게 300조원이라 발표한 겁니다. 이거 정부가 지어 주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가 투자할 금액을 정부가 발표한 것뿐입니다.

삼성전자가 300조원 투자해서 반도체 팹 다섯 개를 짓겠다는 발표를 왜 대통령님이 하는 지 전 이해가 잘 안 되네요. 그리고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내용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2019년 5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해서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며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습니다. 2년 후인 2021년 5월에는 기존 133조원에 38조원을 추가해 2030년까지 총 171조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는 300조니까 2년에 한 번씩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면서 금액도 더해지고 기간도 늘어나고 있는 모양새네요.

삼성전자가 이렇게 시스템 반도체에 투자를 하는데, 아니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는 계속 하는데 아직까지는 특별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시스템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19년 1분기 19.1%에서 2022년 3분기 15.5%로 오히려 줄어들어 56.1%의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주력제품이던 모바일AP의 경우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19년 12.0%에서 2022년 6%로 절반이 줄었습니다.
 

▲ 휴대폰에 쓰이는 모바일AP의 업체별 시장점유율. 대만의 미디어텍과 중국의 UNISOC가 점유율을 두배 가까이 늘이는 동안 삼성의 점유율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 STATISTA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호들갑과 상관없이 앞으로 20년간 300조원을 들여 만들겠다는 삼성의 반도체 팹 다섯 개가 한국을 세계 시스템반도체 1위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그냥 파운드리 생산 능력이 딱 그만큼 올라갈 뿐입니다. 파운드리는 팹리스업체들이 주문을 하지 않으면 생산할 게 없습니다. 한국에는 그 공장 다섯 개를 가동시킬만큼의 반도체를 주문할 팹리스업체는 없습니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같은 팹리스 회사들이 반도체 생산을 해 줄 파운드리 파트너로 삼성전자 대신 TSMC를 선택하고 있는 건 삼성전자에 주문을 감당할 팹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TSMC가 삼성에 비해 공정의 안정성에서 앞서고, 자사 제품이 없어 고객과 경쟁하지 않으니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없기 때문에 다들 TSMC를 찾는 겁니다. 한국에 팹리스 업체가 많아지고 그 회사들이 삼성전자와 동등한 파트너 자격으로 거래를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한국의 시스템반도체가 세계 1위 자리를 넘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시스템반도체 지원한다면서 삼성전자만 지원?

한국의 시스템반도체를 메모리반도체처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파운드리 보다는 팹리스 쪽이라는 게 이해가 되나요?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세계 최대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관련 보도자료에 포함된 팹리스 관련 내용만 따로 찾아봤습니다.
 

▲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관련 보도자료 중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 항목 ⓒ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

 
"국내외 팹리스·소부장 선도기업 최대 150개 유치 및 우수인재 확보" 라든가, "디자인하우스-IP-파운드리 협력 강화", "2035년까지 유망분야(전력, AI 등) 지원으로 매출 1兆 스타팹리스 10개社 육성" 등의 항목은 딱히 뭘 하겠다는 게 보이지 않는 일종의 립서비스 같은 내용으로 읽힙니다. 전력, 차량, AI 등 3대 유망 반도체 R&D에 총 3.2조원 지원한다는 건 어떤 식으로 지원한다는 것도 없고, 팹리스 쪽으로 얼마나 가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니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팹리스를 콕 집어 지원하는 항목은 "대기업-팹리스간 구매조건부 수요연계 프로젝트 지원(50~80억원/건)" 하나뿐입니다. 300조를 투자해서 세계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웅대한 발표 옆에 이걸 놓으니 초라해 보이는 건 느낌 탓일까요? 2019년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의 총 매출은 약 15억 달러 규모로 추정됩니다. 정부의 이 지원책이 팹리스 업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닐까요?

구체적인 대책이 안 보이니까 이번 정부의 발표에 언론만 신이 났을 뿐 팹리스 업체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치고 실망의 한숨만 내쉬는 겁니다. 한 팹리스 회사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출판사와 인쇄기만 마련해 놓으면 작가들이 좋은 작품 쓰느냐며 팹리스에 대한 지원 없이 파운드리 팹만 마냥 짓겠다는 이번 정부의 발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대통령님, 그거 아십니까? 대통령님이 뜬금없이 삼성의 300조원 규모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대신 발표하던 날, 삼성은 300조원 팹에 대해서는 최대한 언급을 삼가는 대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60.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수도권에 공장부지를 이렇게 쉽게 확보하게 된 것에 대한 특혜 시비를 염려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를 준비하는 지금까지도 삼성의 자잘한 소식들이 모두 올라오는 삼성 뉴스룸에는 60.1조원만 있고, 300조원 반도체 투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 삼성 뉴스룸에는 300조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팹 투자 소식은 없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60.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 삼성전자 뉴스룸

 
수도권 집중현상과 지방소멸 문제에는 눈 감은 채 수도권에 대규모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대기업의 투자를 유치한다는 발표를 하는 중에도 "지방 균형 발전의 기조를 지방이 스스로 비교우위 분야를 선택하면 중앙정부는 이를 확실하게 지원하겠다"고 말하는 대통령님에 비해서 삼성전자는 최소한의 염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삼성 뉴스룸까지 압수수색 하지는 말구요.

이번 정부의 발표를 보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나 팹리스를 위한 구체적인 지원책 대신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핑계로 토건개발업자들의 오랜 숙원인 개발제한구역을 풀고,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무너뜨리고, 재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액공제를 확대하겠다는 게 주목적인 것 같습니다. 300조원으로 세계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걸로 바람을 잡고, 실상은 수도권에 대규모 국가산단을 개발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너무 표나게 그러니까 새롭기는 한데 나라 망가지는 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지 모르겠습니다.

진정 한국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길 원한다면 온나라를 공사판으로 만들 국가산단 조성은 뒤로 미루고,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방안을 다시 처음부터 검토해 주기를 바랍니다. 한가지 더, 이런 국가적 과제를 검토할 때는 검사 출신들은 좀 뒤로 물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실제로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실무자들과 함께 하기를 권합니다. 공부 안 하고 급하게 발표한 게 너무 티나서 하는 말입니다. 다음에 또 뵙죠.

[관련기사]
반도체 특별과외①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경악... 이건 특별과외가 필요합니다(https://omn.kr/1zjg5)
반도체 특별과외② 윤 대통령, 또 틀렸다... '반도체 15만 양병설'은 헛발질(https://omn.kr/1zxnn)

반도체 특별과외③ '곤두박질' 윤 대통령, 지지율 올릴 뜻밖의 묘수 (https://omn.kr/206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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