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및 청년단체, 정당소속 청년들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없는 이정식 장관 공개토론회'를 하고 있다. 양대노총 청년노동자들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정식 노동부 장관에게 청년들과의 공개토론회를 제안한 바 있다. 2023.04.06. ⓒ뉴시스
요양병원 노동자부터 고졸 노동자까지, 청년 노동자들이 한데 모여 자신의 노동 현실을 전했다. 오늘도 공짜 야근을 하고,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몸, 이렇게 10년을 일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삶. 이들에게 정부의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은 절망 그 자체였다.
"청년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찾아가 소통하겠다"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끝내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앞서 양대노총은 이 장관에게 청년 노동자와 공개 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장관이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청년 노동자들은 "본인도 부끄러워서 차마 이 자리에 나오지 못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청년 노동자들은 6일 오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정식 장관 없는 이정식 장관-청년 노동자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비바람이 불어 입김이 나올 정도로 싸늘한 날씨였지만, 국민의힘을 제외한 청년정당과 청년단체가 대거 참석해 정부의 개편안을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요양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는 임미선 씨는 "저와 제 동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마이크를 잡았다.
임 씨는 "요양병원에서 8시간 동안 뇌혈관 질환 또는 척수손상 환자분들의 재활을 위한 치료를 하고 있다. 30분 간격으로 환자들을 일대일로 치료하면서, 하루 12명에서 18명까지 치료를 하고 꼬박 8시간을 보내고 나면 제 몸은 너무도 지쳐있다"며 "저녁, 주말이면 집에서 꼬박 누워 휴식을 취해야 그다음 일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고 겨우겨우 한주 버텨가며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주 69시간을 얘기하느냐"고 성토했다.
임 씨는 "일 년에 몇억씩 오르는 집값에 대출이자에 각종 공과금 인상에 정말이지 내 삶이 10년을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주 40시간도 충분히 힘들다"며 "다른 나라에서는 주 30시간대를 이야기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시계는 왜 거꾸로 가는지, 미래가 전혀 그려지지 않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한 청년 노동자로, 여성 노동자로 너무나도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미성 씨는 "이전 직장에서 일이 많은 편이었는데, 입사 후 2개월 동안은 매월 마감 기간 2주에 걸쳐 하루에 1~4시간씩 추가로 야근했다. 그렇게 야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무기력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바로 잠들곤 했다"며 "주 50~55시간 일했지만 추가 근무수당을 받지 못했다. 저처럼 지켜져야 할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거나 야근해도 대가를 받지 못하는 고졸 노동자가 많은데, 이 장관은 고졸 노동자의 현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안 그래도 노동법이 잘 안 지켜지고, 야근해도 대가도 못 받는 고졸 노동자에게 '주 69시간'이 도입되면 안 그래도 열악한 고졸 노동자의 현실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며 "일주일에 55시간 일할 때도 너무 고통스러웠고, 주말에 집안일을 하고 잠자면 끝났다. 69시간은 상상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과거 강남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했던 박동균 씨는 "아침 11시 출근, 새벽 5시 퇴근, 프로젝트가 밀리면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출근해야 했다"며 "제 친구들은 그곳을 강남의 등대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하루 19시간, 주 95시간, 거기에 주말 출근이 있는 주면 주 100시간을 넘어가는 말도 안 되는 노동시간이었다. 퇴근 후 자칫 방에 들어오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씻지도 않고 출근하는 일의 반복이었다"며 "멀쩡히 존재하는 노동법도 지켜지지 않는데 주 69시간 노동을 하고, 장기 휴가를 받는다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한가. 잘못된 정책으로 노동자들이 과로사해야만 주 69시간 없애겠다고 할 것인가. 언제까지 억울한 죽음이 반복돼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도일자리재단에서 일하는 한영수 씨는 "현업에서는 오늘도 공짜 야근을 한다. 주 5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많아 업무를 집으로 가져가거나, 근태 확인 지문을 찍지 않고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노동시간 유연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고민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편향적인 소통을 질타했다. 이들은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시간 제도를 추진하면서 청년 노동자가 원하는 공정한 노동시장이 될 것이라며 청년 노동자들을 선별적으로, 편향적으로 일부의 청년들은 만나며 노조 개혁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다"며 "그러나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와 단시간 노동, 현재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야기조차 무시하는 모습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양대노총 청년의 공개토론을 거부한 이정식 장관을 규탄한다"며 "과로사 부추기는 장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은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이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도 보완을 언급한 이후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을 토대로 다양한 보완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15일부터 IT기업 청년 노동자,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노동부 내 2030 자문단, 제조업 청년 노동자, 청년유니온, 경제5단체 등을 잇달아 만났다.
반면, 전국 단위의 가장 큰 노동단체인 양대노총과의 소통은 철저히 피하고 있다. 이에 반발한 민주노총 소속 청년 조합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자 이 장관은 "면담 일정을 잡겠다"고 약속했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구체적인 일정은 잡히지 않고 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