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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평화로운 집회에 등장한 집회 방해

 

  • 발행 2023-07-19 16:13:53

 

  • 수정 2023-07-19 16:20:04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조합원들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역 인근에 열린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노동 탄압 중단 윤석열 정권 퇴진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7.12 ⓒ민중의소리
"원래 집회가 이렇게 얌전한가요?"

지난 12일, 서울 이촌역 인근에서 열린 민주노총 금속노조 총파업 대회에서 만난 모 매체 수습기자가 동그란 눈으로 물었다. 본대회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한 지 10여분쯤 지났을 때쯤이었을까. 큰 충돌이라도 있을까 싶어 집회 장소를 분주히 오가던 그는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는 모습에 적잖이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민주노총이 집회를 열 때마다 정부와 보수 언론이 '불법 집회', '폭력 집회'라는 딱지를 앞다퉈 붙이니 집회를 하면 으레 중대한 불법 행위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날의 집회도 그 전의 여느 집회들과 마찬가지로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하기야 윤희근 경찰청장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불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물리적인 폭력이 없이도, 소음과 교통체증이 있으면 불법 집회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그날 집회를 소란스럽게 만든 건 바로 맞은편에서 집회를 연 극우단체였다. 신자유연대 등은 집회 전날 커뮤니티를 통해 "윤석열 지키는 사람들도 맞불집회를 진행하겠다"며 '봉쇄 작전'이라고 명명한 계획을 전파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은 20여명 남짓. 금속노조 집회보다 30여분 먼저 집회를 연 그들은 말 그대로 막가파식 집회 방해를 시작했다.

방식은 이렇다. 차량 위에 마이크를 든 1~2명이 올라서더니 차마 적을 수도 없는 원색적인 욕설을 내뱉고, 대열 바로 옆 차도에는 확성기를 단 차량이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를 내며 일부러 속도를 줄여 천천히 지나갔다. 경찰의 소음 단속을 의식한 이들은 '10분간 소음 중단하자'라면서도, 확성기를 둘러메고 금속노조 대열을 향해 온갖 조롱과 막말을 쏟아내는 사람을 따로 배치했다. 집회 장소 인근에 아파트와 중학교가 몰려 있어 최대한 소리를 낮춰 집회를 시작하려 했던 금속노조는 요란한 집회 방해에 마이크 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고 양해를 구했다.
금속노조 집회가 시작된 뒤에도 이들 단체의 방해 공작은 난동 수준으로 이어졌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금속노조 위원장이 차례로 무대에 오르자 시끄러운 댄스음악을 튼 뒤 추임새를 넣으며 발언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집회 취재를 위해 금속노조 대열 속에 있었지만 발언을 제대로 받아 칠 수 없을 정도로 소음이 컸다. 무대 스피커 옆으로 자리를 옮겨도 상황은 비슷했다. 집시법은 평화적인 집회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장에 있던 경찰은 이들의 집회 방해를 제대로 저지하지 않았고, 집회 취재 내용을 적은 메모장에는 이들 단체의 집회 방해 스케치만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순간, 경찰청장에게 진심으로 따져 묻고 싶었다. 이 집회 방해는 청장 기준에서 불법이 아니냐고.

기사에는 차마 담지 못한, 아니 담지 않은 내용을 여기서 다룬 이유는 이들의 집회 방해 행위가 점차 진화해, 이제는 임계점에 이른 실상을 조금이나마 알리고 싶어서다. 지난달 경찰청 차장은 경찰청장을 대신해 참석한 간담회에서 '경찰이 주장하는 불법집회만큼 집회 방해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질문을 받자, "집회를 방해하는 행위는 당연히 경찰이 엄중하게 현장에서 방해하지 못하게 저지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하지만 금속노조의 집회 당시 경찰은 집회 방해를 중단시켜 달라는 요구를 묵살한 채 수수방관했다.

돌이켜보면, 극우단체의 고의적인 집회 방해는 현 집권 세력이 좌표를 찍은 대상에 맞춰 움직여왔다. 정의연을 향한 무분별한 공세 뒤 열린 수요집회에서, 이태원 유가족들이 참사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연 추모집회에서 어김없이 극우단체들이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이다. 윤석열 정권이 노조 탄압에 나서자, 극우단체 화력은 민주노총에 집중됐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집회 방해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과격한 행동대장으로 나선 극우단체일까, 불법인 집회 방해 행위를 단속하지 않은 경찰일까, 노동조합을 향한 공격을 부추기는 정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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