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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숫자’ 빠진 연금 개혁안 발표...“보험료 인상 불가피” 예고만

연금행동 “‘맹탕’ 연금개혁안...윤석열 정부, 구체적 수치 제시 않고 책임 회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10.27. ⓒ뉴시스


정부가 국민연금의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방향성만 담은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보험료율),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소득대체율), 언제 받을 수 있는지(수급개시연령) 등 핵심 수치는 빼놓은 채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결론냈다. 이에 연금개혁의 핵심인 '모수 개혁'이 빠진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날 오전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심의·확정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했다. 종합운영계획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가 의무적으로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 계산을 바탕으로 수립해야 하는 국민연금 전반에 대한 운영 계획이다.

이번 종합운영계획안은 지난 3월 발표한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재정계산위원회의 제도개선 자문안, 국회 연금개혁 특위 논의내용 등을 거쳐 수립됐다. 앞서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을 12%·15%·18%까지 올리는 안, 연금 수급개시연령을 68세까지 올리는 안, 기금수익률을 올리는 안, 소득대체율을 45%·50%로 인상하는 안을 조합한 총 24가지 시나리오를 담은 최종 보고서를 복지부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종합운영계획안에는 연금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수급개시연령 모두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현재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42.5%, 수급개시연령은 63세다. 앞서 진행된 연금개혁의 계획에 따라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40% 더 하향되며, 수급개시연령은 2033년 65세까지 추가 상향될 예정이다.

복지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평균 보험료율은 18.2%, 소득대체율은 42.2%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소득대체율은 유사한 반면 보험료율은 절반 수준으로,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험료율 인상의 방향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상 수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한 만큼 공론화를 통해 구체화한다"고 결정을 미뤘다.
정부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해 국민과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동안 개혁 과정을 보면 정부가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수준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해왔는데,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연금특위에서 진행 중인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구조개혁 논의 결과에 따라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이르면 올해 말에 나올 새로운 장래 인구 추계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향후 국회의 연금개혁특위에서의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하여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눈에 띄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활동 기한을 내년 5월로 미룬 상태다. 내년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사실상 총선 이후로 연금개혁 시기를 미룬 것이다.

공론화에 대한 일정과 계획조차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스란 연금정책관은 "국회하고 진행을 해보면서 일정을 말씀드릴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언제 하겠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보험료율 인상 방식과 관련해서는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이라는 방향성만 제시됐다. 같은 비율로 보험료율을 올리더라도 내는 기간이 짧은 중장년층은 단기간에 올리고, 가입 기간이 긴 청년층은 장기간에 걸쳐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등 인상'에 대해서도 정부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지 않았다. 정윤순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보험료 인상 수준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인상 시나리오가 있는지는 실무적으로 저희가 검토한 바는 있다"면서도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논의가 추후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국민연금공단(자료사진) ⓒ뉴시스

 

'낸 만큼 받는' 방식으로 전환 추진...기금 해외투자 비중 확대


복지부는 공론화를 통해 재정방식 개선을 위한 논의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자동안정화장치' 도입 또는 '확정기여방식(DC)'으로 전환 등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방침이다. 자동안정화장치는 향후 출산율과 경제동향 등에 따라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등을 달리 적용하는 것이다. 정해진 소득대체율에 따라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닌 경제 지표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도록 설계하겠다는 뜻이다.

DC방식은 '낸 만큼 되돌려 받는' 방식이다. 기금 운용 수익에 따라 급여액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확정급여방식(DB)으로, 낸 돈과 관련 없이 받는 급여액이 정해져 있다. 사실상 국민연금을 민간 금융 상품처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복지부는 국민연금 운영에 대한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노후소득보장 강화 ▲세대 형평과 국민 신뢰 제고 ▲재정안정화 ▲기금운용 개선 ▲다층노후소득보장 정립 등 5개 분야 총 15개 과제다.

기금운용 개선과 관련해서는 기금수익률을 최근 5년 평균 4.2%에 수준에서 1%p(포인트) 이상 더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해외투자 비중을 2028년까지 약 60%로 확대하고, 2024년부터 대체투자 분야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또한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전략적 자산배분 권한을 기금운용본부로 이관하고, 기금운용위원회는 장기수익률과 위험 수준을 설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노후소득 보장 강화와 관련해서는 국민연금 외에도 기초연금, 사적연금 등을 함께 강화해 다층노후소득보장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잡아가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기초연금을 40만원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해 정하기로 했다.

또 소득 활동에 따른 국민연금 감액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에서는 퇴직 후 소득 활동을 하면 소득액에 비례해 노령연금을 깎아서 지급하고 있다.

 

 

 

연금행동 "'맹탕' 연금개혁안...오히려 국민연금 죽이기 계획 담겨"


구체적인 '모수 개혁' 내용이 빠진 이번 개혁안에 대해 "'맹탕' 연금개혁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복지부가 재정방식 개선을 위해 제시한 공론화 과제에 대해서도 "오히려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이날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대한 논평을 내고 "단일안은커녕,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등 핵심적인 숫자는 아무것도 없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되는 '맹탕' 연금개혁안"이라고 비판했다.

연금행동은 "윤석열 정부에게 있어 국민의 존엄한 노후는 정책의 고려대상이 아닌지, 종합운영계획에 구체적 보장목표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국민연금의 보장 목표가 제시되지 않으니 구체적인 숫자가 담길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제시한 DC방식 전환,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 등에 대해서는 "DC방식 전환은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낸 만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공적연금의 사회연대 및 재분배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어떤 복지제도도 그렇게 설계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은 소득대체율 삭감 이상의 연금 삭감제도로 보장성을 크게 훼손해 제도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의 방향으로 제시한 세대에 따른 보험료 차등 인상에 대해서도 "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자의적이고, 재정조달에 있어 사회연대의 원칙이나 부담능력에 따른 부담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금행동은 "윤석열 정부는 국민연금 제도 근간을 흔드는 엉뚱하고 위험한 주장만 담고, 핵심 수치는 하나도 담지 않는 등 수준 이하의 무(無)내용, 과제나열에 불과한 '맹탕' 연금개혁안을 제출했다"면서 "국민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오만과 무능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의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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