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국회 승인 없이 멋대로 지방 예산 깎은 정부…“법적 근거 없어”

교부세 삭감 과정서 추경 안 거쳐…“재정 민주주의 흔드는 행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논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10.27. ⓒ뉴시스
정부가 당초 지자체에 주기로 한 지방교부세를 감액하기로 한 가운데, 해당 결정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교부세를 감액하려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정부는 추경 없이 일방적으로 교부세 감액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추경을 거부하는 왜곡된 재정 운용이 국회의 예산심의권 침해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달 광역시도에 교부세 감액을 통보했다. 해당 통보는 기초자치단체로 전파됐다. 정부 세수에 결손이 생겨, 각 지자체에 배정하는 교부세를 본예산 대비 일괄 감액하겠다는 내용이다.

교부세는 정부가 거둬들인 국세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해, 지자체가 행정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교부세는 내국세의 19.24%, 부동산교부세는 종합부동산세의 전액을 지자체에 내려보낸다. 정부 세수가 줄면 교부세도 줄어드는 구조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올해 국세 수입이 예측치보다 59조 1천억원 줄어들 것이라는 재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행안부는 올해 지방교부세는 본예산 75조 3천억원 대비 11조 6천억원(15.4%) 감액한다는 방침이다. 국세 연동되는 보통교부세와 부동산교부세는 각각 10조 6천억원(16%), 1조원(18.3%) 줄어든다.

문제는 교부세 감액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부세를 감액하려면, 추경을 편성하거나 결산을 통해 세입 감액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 결산보고서는 이듬해 5월 국회에 제출되고, 그 이전에 세입 감액을 인식하는 방법은 추경뿐이다.
정부가 추경이나 결산 없이 교부세를 깎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세수가 줄어 당해연도에 배정된 교부세를 감액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이던 2020년이 유일한데, 이때도 추경을 거쳤다. 당시 세입 감액 경정과 세출(교부세) 감액 조정이 동시에 이뤄졌다. 정부가 올해 교부세를 줄이려면, 앞선 사례와 같이 추경을 거쳤어야 했다.

추경 없이 교부세를 감액하는 건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추경을 하려면 국회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교부세 감액을 강행한 것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아직 2024년이 안 됐으니 결산은 할 수 없고, 추경마저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정부에 돈을 덜 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면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가 아무리 예산 심의를 거쳐도 정부가 예산대로 자금 배정을 하지 않는 건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무력화하는 행태”라며 “재정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1회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273인, 찬성 251인, 반대 4인, 기권 18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무조건적인 추경 거부로 ‘교부세 대란’ 초래


“추경은 없다”는 정부 고집이 ‘편법’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추경을 편성하고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 대신, 외국환평형기금에서 돈을 끌어 오기로 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조성한 기금인데, 기금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운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건전재정,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세수 부족이 있더라도 올해는 적자국채 발행 없이 즉 추경 없이 재정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부터 세수가 부진했으나, 정부는 추경을 하지 않았다. ‘상저하고’ 전망을 유지하면서, 하반기에는 세수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버텼다. 하반기 들어서도 경기 반등이 지연되자, 59조원의 세수 결손을 인정하면서 교부세를 감액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각 지자체가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순세계잉여금을 활용하면 된다는 게 정부가 제시한 대응 방안이었다.

교부세 감액은 2년 뒤로 미루는 게 통상적이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르면, 정부 세수가 감소할 경우 교부세를 당해연도에 바로 감액하지 않고 2년 뒤까지 미룰 수 있다. 지방정부 재정이 경기에 따라 크게 변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경기가 안 좋으면 국세뿐 아니라 지방세도 줄어, 교부세까지 감액되면 지자체 타격이 크다. 반대로 세수가 많이 걷혀 교부세를 올려야 할 때는 향후 경기 하방기에 추가 정산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교부세 감액을 올해 정산하든 2년 뒤에 정산하든, 정부가 제1원칙으로 내세우는 재정건전성에는 영향이 없다. 국채를 발행하는 시기만 달라질 뿐이다.

 
이 수석연구원은 “추경 없는 교부세 감액은 재정건전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추경을 하지 않겠다는 정부 기조를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부세 감액을 당해연도에 정산하는 데 대해서는 과거에도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 교부세 감액 추경에 대해 “세입 경정에 따른 당해연도 교부세 감액 정산은 기존 정산 방식과 주기가 상이하다”며 “지방재정 운용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또한 “지자체는 매년 자체 수입 외 교부세 규모를 면밀하게 검토해 세입 예산에 반영하고 이를 근거로 세출예산을 편성한다”면서 “연도 중에 세입 예산이 변경되면 지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 재정난에 대해 “당초 예정된 집행에는 무리가 없다”는 정부 설명과 달리, 지자체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전국 광역시와 도의 세입에서 교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4.7%, 9.7%다. 시와 군 단위 지자체는 각각 23.9%, 45.2%에 달한다. 세입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교부세가 줄면서 지자체는 예정된 사업 집행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강도 세출 구조조정에 나서고 체납액 징수를 강화하는 등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실정이다.

전례 없는 ‘교부세 대란’이 일자, 지방정부 사업 추진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부세 최저한도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최근 양주시의회 윤창철 의장은 ‘보통교부세 감소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재정위기 대책 마련 건의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정부는 세수 결손에 따른 재정책임을 지자체에 전가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과세자주권이 낮은 지방정부의 재정안정을 위해 보통교부세의 최저보장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