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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라크전에서 리비아 침공까지...미 패권 쇠퇴의 증거들

  • 정강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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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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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패권 몰락의 첫 신호탄, 이라크전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완패

실패의 화룡정점, 리비아 침공

자유무역을 부르짖으며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이 돌연 보호무역을 선언한지 5년이 지났다. 미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자유시장 국제주의를 기초로 하는 ‘규칙기반 질서’는 그로써 스스로 무너졌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어느새 자국을 제치고 무역 세계 1위를 차지한 중국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2018년 중국에 대한 미국의 보복관세로 시작된 거대한 분쟁은, 미일한 삼각 군사동맹과 더불어 중국을 배제한 미-일-한-대만의 반도체 카르텔을 만드는 것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같은 과도한 견제는 명백히 미국 패권 약화를 의미하는바, 세계질서가 다극 체제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하나의 증상이다. 이것을 비관하든 낙관하든, 미국의 유일 패권을 축으로 하던 질서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미국주도 일극 체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쇠퇴하게 되었을까?

중국의 굴기, 브릭스(BRICS) 국가의 성장 등 여러 요인을 꼽아볼 수 있겠으나, 전쟁에 의존한 미국 경제 자체의 내적 모순 역시 중요한 계기이다.

노엄 촘스키와 비자이 프라샤드가 공저한 <물러나다: 촘스키, 다극세계의 길목에서 미국의 실패한 전쟁을 돌아보다>는 이에 대한 풍부한 설명을 제공한다.

요컨대 이 책은 근과거에 미국이 벌여온 전쟁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며, 그 각 순간이 미국의 하향곡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음을 시사한다.

▲노엄 촘스키,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물러나다: 촘스키, 다극세계의 길목에서 미국의 실패한 전쟁을 돌아보다』, 앤절라 데이비스 서문, 유강은 옮김. 시대의창, 2023.

미 패권 몰락의 첫 신호탄, 이라크전

이라크전은 미국 패권 몰락의 첫 신호탄이었다.

2001년, 미국은 911테러를 빌미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이어, 이라크에도 눈독을 들였다. 석유 채굴권과 더불어 중동 일대에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라크가 석유 대금을 유로화로 받겠다고 선언하며 ‘오일머니’로서의 달러 위상을 흔들려 했던 것 역시 고려되었다.

9월 11일 사건 발생 직후, 미 국방부 장관 럼즈펠드는 어떤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이라크를 공격할 계획을 검토했다.

“이렇게 좋은 구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테러와)관련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한꺼번에 휩쓸어버릴 단기적인 표적이 필요하다. 신속히 최선의 정보를 입수하여 오사마 빈라덴뿐만 아니라 사담 후세인을 동시에 타격하는 게 좋을지 판단해야 한다.”(97쪽)

곧이어 미국은 이라크가 알카에다의 뒤를 봐주고 있고,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2003년 3월 침공을 개시했지만 거기에는 어떤 물증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유엔 조사단이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하자, 미국은 ‘후세인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에 민주주의와 자유를 안겨주겠다’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댔다.

그러나 2007년 이라크 내 미군의 주둔군 지위협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 미국의 속셈은 자국 에너지 대기업들에 이라크 자원을 추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고 이라크에 영구적인 미군기지를 설치하는 조항을 강요하는 데 있었다.(109쪽)

그러나 이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은 후세인 제거와 정권교체에는 성공했으나 저항세력과 근본주의 세력이 창궐하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111쪽)

당초 부시 정권은 침공이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종전을 선언했지만, 전쟁은 2011년 미군의 완전 철군이 이뤄질 때까지 약 8년간 지속됐다.

그리하여 미국이 이라크전에 쏟아부은 돈은 2013년경에만 2조 달러(약 2천219조원)가 넘었고 이자 비용을 감안하면 6조 달러 넘게까지 불어나는 수준이었다(브라운대 왓슨연구소).

2002년 당시 미 경제수석보좌관 로런스 린제이가 이라크전 비용을 최고 1천억-2천억 달러로 보면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면 경제에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대조적이다. 개전 당시의 예상 전비 최고치의 수십 배를 초과한 셈.

아프가니스탄전까지 합하면 그 비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불어난다.

보스턴대 왓슨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9.11 테러 공격 이후 미국이 벌인 16년간의 전쟁 비용은 총 4조3천억 달러(4천670조 원)에 이른다. 당 해까지 갚은 이자만 5천340억 달러.

아프간·이라크전 전비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일찍이 2008년을 기점으로 베트남전 전비를 추월했다. 애당초 석유와 중동 지배를 위해 시작한 전쟁이었지만, 외려 중동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혹자는 전쟁으로 얻게 된 석유 이권보다 막대한 전비지출을 보고 오히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석유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벌어질 만큼, 이로써 미국은 크나큰 손해를 입었다.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완패

미국의 실패는 이라크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반복되었다. 2021년, 미국은 20년에 걸친 전쟁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철수했다. 사실상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괴뢰정권을 세우는 데는 불과 2달이 걸렸지만, 마찬가지로 괴뢰정권의 무능과 부패, 탈레반 게릴라들의 거센 저항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역시 그 손해는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손해는 장기간에 걸쳐 상당히 상쇄될 수 있었을 것이다.

2010년 미군 보고서가 노골적으로 관심을 드러냈듯, 아프가니스탄에는 최소 1조 달러에 달하는 귀금속이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중앙아시아 전역에 중국 기업이 출자한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일대일로’를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힐러리는 중국의 동서 상업 발전에 제동을 걸고자 아프가니스탄 점령 시기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90쪽)

또한 비자이 프라샤드가 지적하듯,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군사기지를 마음껏 운용할 수 있었다면 이란 동부 몇몇 주에서 소요와 테러공작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이라크전을 병행하면서, 미국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의 화룡정점, 리비아 침공

미국의 리비아 개입도 마찬가지다.

‘아랍의 봄’ 대중시위가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며 리비아 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발하자, 카다피 정부의 석유 국유화 정책과 반미ꞏ반서방 기조로 이권을 잃어 불만을 품고 있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은 ‘인권’을 명분으로 삼아 무력으로 리비아를 침공했다.

미국의 경우 OPEC의 석유 대금 전체를 유로화로 결제하자고 제안한 카다피에게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그 외 서방국가들은 석유 채굴권과 중동ꞏ아프리카 일대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노렸다.

특히 이들은 내전 발발 후 채 한 달 만에 안보리 결의를 통과시켜, 미국과 프랑스 주도의 나토군을 리비아에 보내 마음껏 폭격할 수 있게 했다.(143쪽)

이는 서방 세계가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에는 어떤 실질적 개입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이와 달리 아프리카연합은 대화로 내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며 개입했고 리비아의 모든 세력이 전투를 멈추고 리비아 정치개혁을 추진할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으나 이는 서방국가들의 묵살로 진행될 수 없었다.

뒤늦게 아프리카연합의 대표단이 카다피와 만나 상의하여 아프리카연합 측의 평화로드맵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지만, 나토군의 공중엄호를 등에 업은 반군 지도부는 아프리카연합 측의 휴전안을 거부했다.(145쪽)

나토군의 폭격은 어마어마한 민간인 희생자와 더불어, 도로와 수도, 전기 등 기반 시설과 병원, 학교, 관공서 등 모든 국가기관을 날려버렸다.

결국 카다피는 신속히 제거되고 리비아에는 친서방 반카다피 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허수아비 정부가 들어섰지만, 초토화된 사회적 환경 위에서 여러 군벌이 각축하면서 어마어마한 혼란 속에 내전은 더욱 확대되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집단서방의 리비아 무력개입으로 말미암아 리비아 내전은 2020년까지 총 9년간 지속했다.

식민통치를 통해 수백 년간 중동과 아프리카인들의 인권을 짓밟아 온 서방국가들이, 이제는 인권을 지켜주겠다며 ‘국제사회의 숙의’를 거쳐 리비아를 짓이겨버린 것이다.

그 참혹한 아비규환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최악의 실수가 뭐냐는 질문에 ‘리비아 내전’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앞선 전쟁들과 마찬가지로 이는 오히려 자가당착적인 결과를 가져왔는데, 내전이 연장되며 이어진 끝없는 폭격 탓에 리비아의 원유기반시설 전체와 원유 소유권의 법적 토대가 붕괴되어 서방국가들이 리비아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153쪽)

중동 일대에서 벌인 전쟁들이 연이어 무위로 끝나면서 미국은 국제적 영향력을 급속도로 상실하게 되었다.

그렇게 막대한 전비와 이자를 메꾸기 위해 미국이 천문학적인 빚에 시달리는 사이, 중국은 그 틈을 타 추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이 마치 궁지에 몰린 듯 대중 견제에 필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실패로 돌아간 전쟁들이 있는 셈이다.

책의 말미에서 비자이 프라샤드는 “유럽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숨는 쪽을 선택한 반면, 나머지 세계는 이 새로운 상황을 비동맹과 다극화의 새로운 단계를 가속화할 수 있는 계기로 보는 거 같다”고 진단한다.(169쪽)

물론 부자가 망해도 3년 가듯, 미국의 완전한 몰락 역시 다소 먼 미래의 일이다. 그러나 <물러나다>는 미국주도 일극 패권구조에 균열이 생겨온 과정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결국 전쟁으로 흥한 국가는 전쟁으로 쇠락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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