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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그린벨트 해제에 ‘총선맞춤’ 우려 나오는 이유들

“논의 과정 배제한 총선용 정책…인구 감소·저성장 국면 경제 효과도 미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다시 대한민국! 울산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열린 열세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2.21. ⓒ뉴시스
정부가 비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대폭 해제한다. 논의 과정이 배제된 정책 추진에 우려가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명분은 경제활성화다. 전문가들은 지역 인구가 감소하고 저성장에 빠진 현 상황에서는 그린벨트를 풀어도 경제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총선용 정책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22일 정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다시 대한민국, 울산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주제로 13번째 민생토론회를 열고,그린벨트 규제 완화 구상을 밝혔다.

그린벨트는 1970년대 전국 14개 도시권에 지정된 이후 1990년대 말부터 일부 해제돼, 현재는 7대 광역도시권에 국토 면적의 3.8%에 해당하는 3,793㎢가 남아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그린벨트 규제 완화는 총량 규제 미적용과 환경평가 1·2등급지의 그린벨트 해제 허용 방식으로 추진된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전략사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그린벨트 해제 면적은 지자체별 해제 가능 총량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현재 지자체는 광역도시계획에 반영된 범위 내에서만 그린벨트 해제가 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지역별 해제 총량에 구애받지 않도록 지자체의 자율성도 대폭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르면 오는 3분기에 지역별 전략사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환경평가 1·2등급지는 그린벨트 해제를 불허한다는 원칙도 깬다. 비수도권에서 국가·지역전략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1·2등급지의 그린벨트 해제를 허용한다. 다만, 1·2등급지 면적에 해당하는 대체부지를 신규 지정해야 한다. 그린벨트 내 토지는 경사도와 식물상, 수질 등 6개 환경 지표에 따라 5개 등급으로 평가된다. 그린벨트 내 1·2등급지 비율을 보면, 창원(88.6%)과 울산(81.2%)이 전국 평균(79.6%)을 웃돈다.

그린벨트 환경 등급 평가 체계도 완화한다. 현재는 6개 환경 지표 중 가장 높은 등급으로 최종 등급을 설정한다. 정부는 권역 내 자연환경과 기반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역별 특성에 맞게 환경등급을 조정‧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그린벨트 해제 목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내세웠다. 그는 “첨단산업과 미래산업을 성장 엔진으로 삼아 울산과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할 기회를 만들겠다”면서 “이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산업을 전개할 수 있는 입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에 일자리를 만들고 활력을 불어넣을 첨단 산업단지를 세우려 해도 그린벨트에 막히는 경우가 많다”며 “개발제한구역과 농지이용규제 혁신을 통해 노동과 자본 기술을 효율적으로 결합해 경제적 가치 창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위기 대응 외면한 속전속결 추진에 우려 쏟아져

무분별한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환경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린벨트는 도시의 급속히 팽창으로 주거·환경·교통 문제 등이 지속되자, 녹지와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1971년 도입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전날 논평에서 “그린벨트를 훼손해 지역전략사업 용지로 활용하는 건 자연적·생태적 기능 손실을 고려할 때 효과적인 토지이용이 될 수 없다”면서 “그린벨트가 보전하고 있는 녹색공간은 현재 상태와 같이 일정 규모 이상을 이루고 있을 때 기능과 효과가 보전된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이 강조되는 상황과도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지구 평균 온도 상승에 따른 폭염과 폭우 등 기후위기의 위험이 고조돼, 녹지와 자연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1·2등급지의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대신 대체부지를 신규 그린벨트로 지정한다고 하지만, 보존 등급이 높은 녹지는 줄어든다”면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탄소 저감 정책을 추진하기는커녕 녹지를 훼손하고 탄소 배출을 증가시키는 구시대적인 토건 정책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그린벨트 해제는 환경 파괴일 뿐 아니라, 탄소 중립의 주요 수단인 녹지 조성을 통한 탄소배출 상쇄권을 스스로 없애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그린벨트의 역할을 무시한 채,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속전속결로 규제 해제를 추진하는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그린벨트는 사적 재산권 침해라는 문제가 있음에도 허파로서의 공익적 역할을 해왔다”며 “규제 해제가 어떤 사업에서 어떤 공익적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공론화 과정을 통해 명확히 한 이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한 순서”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도 “그린벨트 해제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가령 반도체 클러스터를 용인이 아닌 지방에 조성하기 위해 추진한다고 하면 논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면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 그린벨트 현황 ⓒ뉴시스

미분양 산업단지도 수두룩…원도심 위협 우려도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도 이미 조성된 산업단지에 기업을 유치하지 못해 빈 땅으로 남겨진 곳이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전국산업단지현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분양률이 90% 미만인 산단은 전국 121곳에 달한다. 그린벨트 해제 최대 수혜지로 꼽히는 울산을 보면, GW산단 분양률은 70%에 그친다. 하이테크밸리산단과 길천산단은 각각 78%, 85%다. 이들 산단의 미분양 부지 면적은 26만 8천㎡(약 8만 1천평)에 달한다. 창원도 상복산단(분양률 42%)과 동전산단(52%) 13만 2천㎡(약 4만평)의 땅이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다.

마강래 교수는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산단이 비어 있는 곳이 많다”면서 “기존 산단도 어려워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기존 산단을 고도화해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인 교수도 “고도와 경사가 높은 위치의 그린벨트가 산단 조성에 적합한 입지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남권 기업들 경영이 악화되면서 도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해당 부지에 다른 기업이 대체해 들어가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린벨트 해제는 인구 감소 추세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구가 감소하는 도시는 인구를 내부로 결집시켜 밀도를 유지하는, 이른바 ‘컴팩트 시티(압축 개발 도시)’로 조성해야 하는데, 도시 외곽을 둘러싼 그린벨트를 풀면 오히려 인구가 분산된다. 도시 외곽으로 인구가 몰리면 원도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 그린벨트가 지정된 창원, 대구, 광주는 대표적인 인구 감소 도시다.

마 교수는 “인구 감소·저성장 국면에서는 기존 그린벨트 지역에 산단이 들어서도 일자리가 팽창하지 않는다”면서 “기존 산단의 일자리가 새로운 산단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후화된 원도심 치유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세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그린벨트 해제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린벨트 해제는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총선용 정책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다. 

참여연대는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정부가 1,560㎢의 그린벨트를 해제한 결과 지가가 크게 상승했다고 짚으면서 “그린벨트 해제는 토건족을 배불리는 정책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포 서울 편입과 1기 신도시 용적률 완화 등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하는 정책을 내놓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남발하는 선심성 정책 가운데 하나”라고 비판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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