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수준의 프레임의 덫에 걸렸다. 대파 프레임이 활성화되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 유행어라던 '파테크'와 '반려대파'라는 말이 '윤석열 정부'에서 실시간으로 부활했다. 언어는 프레임을 활성화한다. 대파 가격에 대한 비판 프레임에 '파테크'와 '반려대파'로 응수한 대통령실은 오히려 '대파 프레임'에 붙은 불에 휘발유를 얹었다. 여기에 이수정 후보가 "대파 한단이 아니라 한뿌리"라며, 팩트를 거스르고 논쟁에 뛰어든 것이 유권자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됐다.
부엌에나 있어야 하는 대파가 선거 한복판에 떨어지니 일종의 오브제로 기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한 단어로 축약하려 고민하던 야당은 그 '대파'를 기꺼이 집어들었다.
미국 대선 결과를 9번 연속으로 맞혔다는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 대학교 역사학과 석좌교수는 선거 예측 과정에서 여론조사를 절대적 상수로 놓지 않는다. 그는 미국 선거사를 분석해 개발한 '13개의 지표'를 모델로 선거를 예측하는데, 후보 캐릭터나 인물 구도, 스캔들과 같은 선거공학적 지표 외에도 경제 지표를 예측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단기 경제성과, 장기 경제성과와 함께, 정책 변화, 사회 불안 등 정성적 평가를 포함시킨다. 단순 지지율 구도를 통한 예측이 간과할 수 있는 경제사회적 지표들은 한국에서도 시퍼렇게 살아있다. '운동권 심판론'이나 '이조 심판론'같은 걸 구호로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이걸 간과하고 있는 건지, 애써 모른채 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민생 경제 지표들이 '여당이 성공할 수 없는 선거'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석달 연속 상승세다. 생산자 물가는 곧바로 소비자 물가 지수에 반영된다. 대파로 상징되는 농산물 물가는 1년새 20.9% 폭등해 전체 물가를 0.80%포인트 끌어올렸다. 이어서 조개, 새우, 오징어, 김 등 서민들이 이용하는 수산물의 생산자 물가도 무섭게 상승 중이다. 모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내수 시장 부진이 장기화될 우려를 전한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 수준이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일본보다 낮은 것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2% 안팎으로 본다. 만약 올해도 1%대로 떨어진다면 한국은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1%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저상장의 장기화' 우려는 일본의 '잃어버린 n년'의 입구에 한국을 세워 놓고 있다. 여기에 고금리 장기화로 '동료 시민'들의 이자 부담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불안감도 있다.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을 기록했다. 이 판국에 윤석열 정부는 '긴축 재정'을 내걸고 역대급 '세수 펑크' 속에서 예산 증가율을 최저치로 만들었다. R&D 예산 삭감하고 항의하는 학생에 '입틀막' 하면서 대통령실 예산은 4.8% 증액했다. 한국갤럽의 지난 19~21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부정 평가는 58%를 기록했는데, 부정 평가 이유는 '경제/민생/물가'가 22%로 가장 높았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의 반사이익으로 '여당 승리 전망'을 내놓던 전문가들이 '야당 승리 전망'으로 견해를 수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파'는 이미 알고 있었다. 기저에 흐르는 수많은 지표들이 '여당이 승리할 수 없음'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장강의 앞물결을 막을 순 없는 일 아니겠나. 한동훈의 등판도, 조국혁신당 돌풍도, 민주당 공천 파동도 곁가지였을 뿐, 앞으론 지지율 수치에 매몰된 우리의 선거 예측 모델도 조금 쯤은 변화가 필요하겠다.
뭔 대파 한단에 이렇게 박절하게 말 할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사실 박절한 물가가 대파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린 것이다. 대통령이 설마 전국의 모든 마트 대파를 875원으로 만들자고 했겠나. 대통령은 "여기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이렇게 싸게 사기 어려운 거 아니에요"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대파 논란'에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대파는 죄가 없다. 대파는 '발견된 오브제'일 뿐이다.
정치가 예술과 닮은 점이 있다면 비정치와 비예술로 보이는 어떤 물건이라도, 어떤 개념이라도, 정치와 예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와 예술은 그래서 마치 공기와 같다. 인물과 지지율로 그림을 그리든, 페인트와 붓으로 그림을 그리든 '세계를 재현'하고 또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는 갑자기 낯설게 등장한 오브제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비예술과 비정치가 예술과 정치의 문맥 속에 난입해 '예상 가능했던 결과'를 뒤흔드는 건 예삿일이다. 그것이 '들고 나른 옥새'든, '외국 회사 그 뭐 쪼만한 백'이든, 혹은 대파 한 뿌리든, 오브제들이 전통적인 의미를 벗어나면 근원적인 질문에 다가설 포털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심성과 행동은 낯선 오브제 앞에서 변화하게 된다. 대파는 대통령실에는 '불쾌한 오브제'이겠지만, '동료 시민'들에겐 진실에 다가서는 문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대통령과 여당은 대파를 꺾을 수 있지만, 대파 뒤에 숨어 있는 유권자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대파'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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