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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적용 ‘노동자성’ 시비?.. 이미 법원은 판단했다

도급노동자의 최저임금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노동자성, 이미 판례 존재

‘국민간식’ 치킨값이 3만 원으로 오른 고물가 시대, 내년 최저임금은 얼마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치킨 값이 오른 것을 두고 ‘라이더’ 탓이 나온다. 배달라이더 비용이 급증한 것이 치킨값을 오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코로나 때 배달라이더들의 연봉이 1억원이라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실제 시급은 최저임금도 안 되는 9,500원대였다.” 구교현 라이더 유니온(공공운수노조) 지부장의 말이다.

‘배달료’는 주식이나 코인처럼 실시간 변동하는 구조에 있고, 사측이 필요에 따라 삭감해도 제동을 걸 수단이 없기 때문에, 배달노동자의 수입은 최저임금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뉴시스

도급노동자의 최저임금

지난달 21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1차 전원회의. 노동자위원들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그동안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저임금에 시달려 온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도록 하는 논의를 안건으로 상정했다.

사상 처음으로 도급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문제와 관련된 안건을 다루게 된 것이다.

‘도급노동자’란 일의 성과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노동자를 뜻한다. 이들은 통상 노동자와는 달리 노동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일의 대가를 받는다. 일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도급노동자의 대표적 직종엔 배달기사, 택배기사, 학습지교사 등이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라 불리는 이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제, 사회보험 등의 사각지대에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규모는 2020년에 이미 200만명을 넘었고, 특수고용의 또 다른 형태인 플랫폼 노동자 또한 1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4일 열린 최임위 2차 전원회의. 사용자측은 이들 최저임금 적용 문제에 제동을 걸었다. 류기정 사용자위원(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은 이날 회의에서 “특고·플랫폼 종사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최저임금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적용될 별도의 최저임금을 논의할 수 없다는 것.

이날 류 전무는 “근로자성이 인정된 도급형태 근로자의 경우 필요성이 인정돼야 (별도 최저임금을) 논의할 수 있는데 인정의 주체는 위원회가 아니라 정부와 법원”이라 말하기도 했다.

‘배달노동자’ 이미 판례 존재

도급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판례는 수없이 많다. 법원은 계약의 형식보다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지휘 및 감독을 받으며 일을 하는지 등 실질적인 ‘종속성’에 중점을 두고 판단해 왔다. 배달노동자들에 대한 판례도 있다.

2019년 11월, ‘요기요’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이 노동청으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았고, 배달노동자는 2020년 노동부, 2023년 경기지방노동위원회 등 노조법상 노동자의 지위를 여러 차례 인정받은 바 있다.

배달노동자의 업무를 살펴보면, 사측은 GPS를 통해 모든 배달노동자에 대한 관제가 가능하다. 업무 중 배달수락거절이 누적될 경우 패널티가 존재하고, 배송지연 시 책임이 부과된다. 업무수행 시 정해진 보수를 지급받고, 그 보수는 사측이 결정한다. 근로조건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정하고 변경할 수 있다.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하기에 충분한 근거다.

법원 판단은 “노동자”

앞서, 2006년 대법원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이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지난 28일 ‘사각지대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대상 확대를 위한 토론회’에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판결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대법원도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계약의 형식 즉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를 보기보다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에게 지휘 및 감독을 받으며 일을 하는지 등 실질적인 종속성에 중점을 두고 판단한다고 가르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교사들은 2018년 대법원에서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바 있고, 또 다른 플랫폼 노동자인 대리운전 노동자들도 2020년 중노위에서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또한, 보험설계사, 대출모집인, 채권추심원, 골프장 캐디, 레미콘 차주, 화물차 기사, 배달라이더, 택배기사, 정수기 서비스기사, 입시학원·미용학원 강사, 백화점 판매원 등에 대해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례가 존재한다. 특수고용노동자 대부분 업종을 포괄하는 상황이다.

정 원장은 또한 “회사로부터 모니터링 및 제재를 받고 업무수행의 내용과 방법을 담은 회사 내 지침의 종속”을 받는 신용카드사 전화권유판매원이 2016년 대법원으로부터 ‘노동자’로 인정받은 것을 예로 들며 “특고·플랫폼 종사자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에게도 근로자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도급제 노동자, 즉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평균적인 업무수행과 노동시간, 업무수행에 따른 수수료를 확인하면 수수료 최소기준을 정할 수 있으며 이것이 도급제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방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가 그 예다.

▲ 최저임금 확대 적용을 요구하는 배달노동자 퍼포먼스 ⓒ뉴시스

사용자들의 주장대로 노동자성을 판정한 것 역시 정부와 법원이다. 그들이 언급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이 ‘최임위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투쟁을 ‘모든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으로 설정하고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회의를 투명하게 공개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용자위원들은 이 역시 반대했다.

노동자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례를 모를 사용자들이 아니다. 최저임금 확대 적용을 비롯해, 업종별 차등 적용, 최저임금 수준(금액)에 대한 본걱적인 논의를 앞두고 최임위 논의에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혜정 기자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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