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 타이완] 대만의 지정학(地政學)적인 중요성
박범준 자유기고가 | 기사입력 2025.11.29. 22:35:20
일본과 중국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불구경,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하던가? 카페에서 옆자리 연인끼리 다투기만 해도 다른 일 보는 척하면서 온 신경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중국과 일본의 싸움, 우리는 바다 건너 불구경이나 즐기면 그만일까?
다툼의 양상은 이미 언론에 상세히 보도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첨예한 대립을 통해 대만이 가진 지정학적 중요성을 살펴보자.
먼저 사건의 발단이 된 다카이치 총리의 말을 살펴보자. 지난 11월 7일, 그는 일본 국회 답변에서 "중국이 대만을 해상 봉쇄할 경우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라는 후보 시절 자신의 발언을 재확인했다. 같은 말이지만 자민당 총재 후보의 발언과 현직 총리의 발언은 그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일본, 미국, 한국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지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르면 중국의 대만해협 봉쇄는 중국 국내 문제다. 그런데 그게 왜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될까? 일본이 존립위기 사태라고 판단하든 말든 그게 왜 또 이렇게 큰 문제가 될까? 중국은 왜 그 발언을 용납하지 못할까?
대만해협 문제를 자국의 존립위기 사태로 받아들인다는 건 일본이 동아시아 지역 패권국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인접한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일본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WSJ)의 칼럼 '왜 중국은 일본과의 싸움을 선택하고 있나(Why China is picking a fight with Japan)'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일본이 대만을 공격하면 일본에 막대한 위협이 된다. 단기적으로는 무역이 중단돼 일본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과 에너지 수입이 차단되며, 대만에 체류 중인 수만 명의 일본인이 위험에 처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발언을 옹호하는 주장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움직이는 시대가 아닌가? 이런 논리라면 전 세계 웬만한 분쟁에도 우리 문제라고 나설 수 있다. 대만해협이 아니라 페르시아만이나 말라카 해협 분쟁도 자국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본인이 많이 사는 하와이나 페루의 분쟁에도 개입해야 한다. 대만만큼 가까운 한반도 분쟁에도 당연히 일본이 개입할 수 있다. 대만 문제를 자국의 존립위기로 받아들이겠다는 주장은 '지역 문제를 우리 문제로 인식하는' 지역 패권국의 꿈을 공식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존립위기 사태'는 그저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는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2015년 아베 정권은 안보법제를 제·개정했다. 그때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을 법적으로 규정한 용어가 바로 '존립위기 사태'다. 바꿔말하면 '존립위기 사태'는 '일본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태'를 의미하는 법적인 표현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해석하면 중국이 대만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면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이 된다. 그동안 다른 현직 총리들이 대만 관련 발언을 자제했던 이유다.
중국과 수교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 – 미국, 일본, 한국 등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중국의 대만 병합을 허용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지지하지만, 그 '실현'은 엄연히 다른 얘기다. 미국의 공식 입장은 '하나의 중국을 변함없이 지지하지만,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이다. 원칙은 지지할 뿐 중국의 대만 병합에는 명확하게 반대한다. 중국은 '원칙'에만 만족하고, '실현'엔 욕심내지 말라는 뜻이다. 외교적인 말장난처럼 보인다. 초강대국이니까 할 수 있는 '배짱 외교'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대만 문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표현만은 자제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 나섰다.
중국에게 대만은 소위 '발작 버튼'이다. 단지 체면 때문이 아니다. 그들 표현에 따르면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 이익'이다. 초강대국을 꿈꾸는 중군은 경제, 과학기술, 군사력,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중국이 넘어야 할 장벽은 소위 도련선(島連線, Island Chain)을 넘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해상 영향력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갇혀 있다. 도련선 너머 대양으로 해군력을 내보낸다는 건 세계적인 군사적 영향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러시아, 소련 등 소위 '대륙 세력'이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꿈이고, 영국과 미국 등 '해양 세력'이 모든 것을 걸고 막아온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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