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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칼럼]대통령은 임기제 국왕인가 호민관인가

전우용 역사학자

histopi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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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과 민주주의, 대통령에 관한 질문

'신흥귀족' 테크노크라트에 둘러싸인 대통령

검찰 계혁안 자문위원도 법조계 인사로 가득

검찰 행태에 대한 국민의 공분 해소방안 빠져

대통령 '제왕' 안되려면 시민 목소리 귀 기울여야

계엄의 밤, 시민에게 호소하던 초심 잊지 말아야

정부의 검찰개혁안이 입법예고되자 시민사회는 충격과 분노를 표시했고, 여당 의원 일부도 공공연히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여당,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의 첫 번째 심각한 의견 대립이었다. 검찰청을 법무부 소속의 공소청과 행안부 소속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분리하되 중수청 조직을 전문수사관과 수사사법관으로 이원화한 이 법안은 기존 검사와 법조인들에게 수사 지휘권을 독점시킨 것으로서, 검찰개혁론이 대두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철저히 무시했다.

일부 정치검사’에게만 ‘검찰독재정권’ 책임 돌릴 수 있나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개’로 불렸던 검찰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친독재 반민주’ 성향을 청산하지 못했다. 독재체제 하에서 반민주적 엘리트주의를 체화한 한국 검찰은, 법치주의를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세우려는 정치인들에게 늘 잔인했다. 검찰은 노무현, 조국, 문재인, 이재명 일가와 측근들을 상대로 표적수사, 먼지떨이식 별건 수사, 조작 수사를 일삼으면서도 자기들과 가까운 자들의 명백한 범죄 행위는 모른 체했다. ‘안면불상 김학의’, ‘99만 원 불기소세트’ 등이 세간의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나 그들은 태연히 김건희의 주가 조작 범죄를 덮었다. ‘검찰독재정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윤석열 정권의 반민주적·불법적 행위에 수많은 검찰 출신 인사가 동참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작태들의 책임을 일부 ‘정치검사’에게만 돌릴 수 없는 데에 있다. 12.3 내란 이후에도 검찰은 지귀연이 헌정사상 초유의 ‘시간 단위 계산법’으로 윤석열을 석방시켰을 때 ‘즉시항고’하지 않았고, 내란죄 수사와 관련한 국수본의 영장 청구를 번번이 기각했다. 그들은 국민대중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내란 가담세력이나 내란 동조세력으로 의심받을 만한 행위들을 거리낌없이 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 내부에서 ‘자기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비판은 ‘검찰개혁’으로만 향했을 뿐이다. 검찰개혁을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만든 것은, 검찰의 행태에 대한 국민일반의 공분(公憤)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왜, 국민의 공분(公憤)을 해소하기는커녕 가중시키는 개혁안을 내놓았을까?

 

지난해 3월 8일 석방된 윤석열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경호차량에서 내려 걸어가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검찰이 즉시항고를 하지 않아 윤석열은 불구속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연합뉴스

정부 검찰개혁안은 중세 길드식 ‘법률 전문가주의’의 산물

며칠 전,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 6명이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검찰 관계자들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폭로하면서 사퇴했다. 이를 계기로 자문위원 전체 명단이 공개되었다. 전원이 전직 판사, 검사이거나 현직 변호사와 로스쿨 교수였다. 검찰개혁은 법조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도 법과 무관한 영역에서 살 수는 없다. 검찰의 별건 수사나 조작 기소 피해자들을 빼고 법률가들끼리만 검찰개혁안을 논의하는 것이, 환자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의사들끼리만 모여 의료개혁안을 논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중세 유럽의 길드에서는 ‘장인(匠人)의 자격은 장인만이 인증할 수 있다’는 원칙이 통용되었다. 동업자의 수를 제한하여 구성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유효했던 이 원칙은 근대 사회로 재편되는 과정에서도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전문 직종들에 계승되어 ‘전문가주의’로 자리 잡았다. 특히 법률, 의료 등 인간의 안전, 생명과 직접 관련되는 직업 종사자들은 국가의 도움을 얻어 신규 진입 장벽을 높게 쌓음으로써 자기 직업의 권위와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들은 전문 직업인인 동시에 국가의 법률, 의료, 위생 등 정책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로도 활동했다. 이번 정부의 검찰개혁안도 ‘전문가주의’에 따라 만들어진 셈이다.

 

검찰개혁 방향을 두고 정부와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주선으로 검찰개혁 추진단 자문위원으로 참석했던 6명의 법조인과 교수들이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1.14. 연합뉴스

대통령 둘러싼 ‘신흥 귀족들’의 압박

1973년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책을 낸 미국의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는 민주국가의 바람직한 대통령상으로 ‘호민관’을 상정했다. 사실 영국 국왕 조지 6세의 통치권에서 이탈하여 1789년 대통령제를 처음 만든 미국인들에게도 대통령의 위상은 모호했다. 미국 정치사는 대통령을 임기제 국왕으로 보는 시선과 평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호민관으로 보는 시선이 중첩, 교차하면서 전개되었다. 왕국에는 반드시 귀족이 있으며, 국왕은 귀족의 대표 격이었다. 슐레진저는 대지주, 대기업가, 테크노크라트들이 사실상의 ‘귀족’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 대통령은 ‘호민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로 가는 차 안에서 개인 유튜브를 통해 “시민 여러분, 국회로 달려와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 호소에 응답하여 수많은 시민이 목숨이 위태로운 줄 알면서도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킨 주역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각 지역을 순회하며 타운홀 미팅을 가졌고, 방송을 통해 온국민에게 토론 내용을 공개했다. 국무회의 일부와 정부 부처 업무보고도 공개 대상이었다. ‘모든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실현하려는 조치였다. 그런데 이번 정부가 내놓은 검찰개혁 입법예고안이 만들어지는 절차는 이와 달랐다. 작년 8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검찰개혁 대국민토론회’를 제안했지만, 이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내란의 밤 국회로 달려온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대통령은 직책상 테크노크라트들에게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특정 분야 전문가들이나 테크노크라트들의 의견에 압도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 스스로 “시민 여러분 달려와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가 처음 호소했던 사람들의 응답을 먼저 들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이 문제와 관련해 ‘당에서 숙의하고 정부에서 수렴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1월 20일 이 문제와 관련한 대국민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당은 전문가들보다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들려는 ‘신훙 귀족’들의 압력을 해소하고 민주국가에 어울리는 ‘호민관형 대통령’을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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