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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흉물처럼...관광객마저 탄식한 동해안의 '상처'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벨트 ⓒ 진재중

수도권과 산업용 전력 공급을 명분으로 강원도 동해안에는 대규모 화력발전소들이 들어섰다. 삼척·동해·강릉으로 이어진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바다는 깊게 파헤쳐졌고, 해안에 기대어 살아온 마을들은 설득과 갈등, 그리고 감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혹독한 과정을 거쳐 발전소는 완공됐지만, 그 대가는 잠든 듯 해안마을과 지역에 깊게 남아 있다.

사구는 무너지고, 바다는 마을로 다가왔다

송전망 문제로 기대했던 전력은 흐르지 않았다. 대신 지역에는 분명한 흔적만이 남았다. 해안 침식으로 무너져 내리는 해변과 생계를 위협받는 어민들의 깊은 한숨, 일터를 잃고 떠나야 했던 노동자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흉물처럼 남은 해상 구조물들이다. 전력을 위해 치른 대가는 결국 고스란히 지역이 떠안게 됐다.

8일 찾은 강릉 안인해변의 해안선은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던 군사도로는 사라졌고, 해안사구는 붕괴돼 모래가 바다로 유실된 상태다. 침식을 막기 위해 대형 옹벽이 설치됐지만, 발전소 해상공사 이후 파도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사구가 지니던 완충 기능은 사실상 상실됐다. 파도를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은 오히려 파도의 반사를 키우고 있다. 그 결과 바다는 점차 육지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 주민은 발전소 해상공사 전과 후의 변화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바다 모래가 유실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고, 해변은 마을 주민들의 쉼터였다"며 "지금은 산책로가 사라지고, 모래로 가득해야 할 해안에 돌덩이만 남았다"고 말했다.

안인해변의 변화는 단순한 경관 훼손을 넘어, 해안의 완충 역할을 해오던 자연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구를 대신해 세운 인공 구조물만으로는 바다의 힘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주민들의 삶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다.

바뀐 바다, 흔들리는 어민들의 삶

사구를 지키기 위해 세운 돌제, 그러나 사구는 무너지고 구조물만 남았다. ⓒ 진재중

해안사구 출입금지 경고문 ⓒ 진재중

발전소 건설 이후 어업 환경이 달라졌다는 어민들의 호소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해상 구조물과 항만 공사로 해류의 흐름이 바뀌면서, 어장 역시 예전의 모습을 잃었다.

평생 등명해변에서 미역을 채취해온 정상록(80)씨는 해상공사 이후 달라진 바다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은 암반 지형이라 미역이 잘 나던 해변이었는데, 공사 이후 모래가 밀려와 암반을 덮으면서 수확량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제는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삼척 맹방해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송경근 덕산어촌계장은 "맹방화력발전소 해상공사로 각종 구조물이 들어서면서 어업 활동이 제한됐고, 바다 오염으로 조개가 거의 사라졌다"며 "어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지만 발전소 측의 보상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가동 멈춘 발전소, 함께 멈춰 선 지역 상권

강릉 등명해변에서 미역을 수확하는 정상록 어부 ⓒ 진재중

동해안 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지역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발전소 유지·보수를 맡아오던 하청업체들은 일감이 끊기며 부도 위기에 내몰렸고, 이들 업체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던 음식점과 상가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8일 찾은 강릉발전소 인근 상가는 침체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한때 손님을 맞이하던 공간에는 굳게 잠긴 문만 남았고, 사람의 온기는 사라진 채 허탈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발전소 가동 중단의 여파는 전력 생산을 넘어 지역 상권과 주민들의 삶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발전소 하역 업무를 맡아온 한 중견업체 근로자는 발전소 정상 가동을 기대하며 큰 비용을 들여 장비를 구입했지만, 지금은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발전소가 다시 가동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상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손님 얼굴 보기도 힘들다"며 침체된 분위기를 전했다. 발전소 가동 중단은 일터를 넘어 일상의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굳게 문을 닫은 상가.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자리지만, 지금은 굳게 문이 닫힌 채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 진재중

콘크리트로 뒤덮인 명사십리, 멈춰 선 맹방의 시간

겨울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삼척 맹방해변. 한때 푸르고 드넓었던 명사십리 해안은 이제 하얀 콘크리트 구조물로 뒤덮였다.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설치된 해상 구조물들은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세워졌지만, 제 역할을 잃은 채 흉물처럼 바다 위에 남아 있다.

같은 날 찾은 현장에서는 바다 위로 다양한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고, 자연스러운 해안선은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이 구조물들은 전력을 실어 나르지도,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지도 못한 채 그저 바다 위에 서 있을 뿐이다.

삼척 상맹방해변의 한 주민은 "지난여름 해수욕객도 받지 못해, 어려움이 컸다"며 "콘크리트 구조물로 가득 찬 바다를 바라만 봐야 하고,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겨울 바다를 찾은 관광객들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한 관광객은 "발전소 건설도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구조물로 뒤덮인 해안은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잃었다"며 "출입문까지 걸어 잠근 콘크리트 풍경이 삼척 맹방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삼척 맹방, 화력발전소 해상시설물 ⓒ 진재중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배경에는 발전소를 먼저 건설해 놓고도, 이를 제대로 가동할 수 있는 송전망을 갖추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서 가동률은 급격히 줄었고, 그에 따른 부담은 지역사회와 발전소 측 모두에 전가되고 있다. 발전과 수익이 동시에 정체된 채, 모두가 답답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발전소 관계자는 "송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발전소 가동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며, 회사 역시 큰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빨리 송전망이 완비돼 정상적인 발전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그 과정에서 불편과 피해를 겪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발전은 멈추고, 동해안에 남은 것들

전기를 실어나르기 위해 세워진 송전선로. 그러나 연결될 길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생산된 전기는 흐르지 못한 채 잠자고 있다 ⓒ 진재중

동해안 화력발전소가 남긴 결과는 분명하다. 해안침식으로 무너진 모래사장, 생계의 터전을 잃어가는 어민들의 한숨, 발전소 가동에 기대어 버텨온 소상공인들의 흔들린 일상, 그리고 바다 위에 남은 해상 구조물들이다. 수도권을 향해 설계된 전력 정책의 부담은 결국 지역에 고스란히 남았다.

발전 설비는 완공됐지만,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선로는 갖춰지지 않았다. 전력은 흐르지 못한 채 멈춰 섰고, 책임은 분산된 채 회복의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계획이 아니라, 이 구조를 만든 책임의 주체를 분명히 하고 훼손된 해안과 지역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해안 역시 같은 선택과 같은 상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강릉 안인·하시동 해안사구 사구를 지키기 위한 옹벽이지만, 자연의 흐름 대신 인공 구조물만 남겼다.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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