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승리한 시민들의 뒤통수를 향한 사법 권력의 비열한 가격이었다. 재판은 단지 법률 조항의 해석이 아니고 사회적 메시지를 생산한다. 특히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한 판결은 그 자체로 역사 해석이 된다. 이것은 지귀연 재판부의 정치적 목적이 한국 사회와 역사를 바꾼 '빛의 혁명' 참가자들의 자부심, 자신감과 용기를 꺾어놓는 것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자신감과 용기는 계속 발전하고 확대되면서, 단지 특정 정권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를 넘어서 한국 사회를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방향으로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득권 카르텔의 입장에서 보자. 재벌, 고위 관료, 주류 법조 엘리트, 일부 언론 권력으로 구성된 구조적 동맹은 한국 사회의 부와 권력을 오랫동안 독점해 왔다.
이들에게 광장의 집단적 각성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시민이 스스로를 정치의 주체로 자각하면, 폐쇄적 엘리트 구조는 균열을 맞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열광과 연대를 일상적 무력감으로 되돌리며 그 힘을 다시 ‘호리병’으로 집어넣는 일이다. 그래서 지귀연이 선택한 것은 윤석열 정권의 문제점과 12·3 내란의 위험성을 최대한 축소하는 방향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윤석열은 내란을 위해 북한과의 전쟁을 도발한 적도 없으며, 독재와 학살을 꿈꾼 적도 없는 '야당의 폭주에 가로막혀 길을 잃은 통치자'일 뿐이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존중해야 하며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통치행위론의 부활이다.
오직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점만이 문제라는 식의 논리는 장차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반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마치 '다음에는 더 일찍 결심하고, 더 치밀하게 준비하며, 국회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도 비상계엄을 성공할 방법을 찾아보라'는 반혁명적 충고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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