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한국의 대통령도 미국에 버텼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실제 미국의 요구에 버텨내지 못했다. 그나마 김대중 전 대통령 정도가 미국에 버티기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긴 하다.
이런 가운데서도 관세 협상에서 최고의 소득은 국민들에게 미국의 요구를 솔직하게 공개한 것이다. 대통령은 미국의 요구에 대해 일본은 미국과 그렇게 협상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본인은 이렇게 하면 탄핵당한다면서 거부 의사를 표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도 한국 내 협상에 대한 여론이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에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한 조지아주의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을 단속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금의 미국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생각이 변했고, 그래서 옛날보다는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본다. 캐나다나 인도처럼 대놓고 대항하지는 못하더라도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을 서둘러 만들 상황이 아니다. 민주당은 입법 주권 침해하지 말라고 하고 대통령은 "빨리 할게" 라고 하면서 양면 게임으로 가야 된다. 여기서 밀리면 미국은 "우리가 한 번 뭐라고 하니까 한국이 원하는대로 해주네? 그럼 더 밀어도 되겠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덧붙여 안보는 안보 문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우리 자체 방위비 증강 요구, 그리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이 사안들을 어떻게 조정해가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찾아올 것인가가 관건이다.
예를 들면 트럼프가 평택 미군기지 소유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미국이 한국에 임대료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누가 생각해도 이건 임대료를 지급해야 하는 문제인데 우리는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임대료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넣어야 한다.
세계에서 미군 주둔에 대한 분담금을 내는 나라가 세 국가가 있는데, 독일은 기지 사용료로 이를 대체하고 있고 일본은 현금을 지급하긴 하지만, 미국이 예산을 신청하면 이를 심사해서 집행한 이후 남은 금액은 일본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만 총액을 계산해서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투자 실행한다는 일본, 한국에 민폐
프레시안 : 책에서 두 번째 필살기로 '함께, 연대의 미학'을 언급했다. 처지가 유사한 일본, 유럽, 캐나다, 멕시코, 호주 같은 나라들과 함께 '트럼피즘'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런데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중의원 선거를 압승하자마자 대미 투자를 실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전 시설, 원유 수출 등 에너지 분야와 중국을 겨냥한 합성 다이아몬드 시설에 대해 36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의 투자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카이치 정부가 처지가 비슷한 나라들과 연대보다는 트럼프에 빠르게 순응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일본의 행보가 한국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김준형 : 우리한테는 민폐다. 일본이 약속한 투자를 실행하면서 트럼프는 이를 자랑할 수 있게 됐고, 그러면서 한국이 시간을 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트럼프 참모들은 일본이 저렇게 하려고 하니 한국에 투자를 재촉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일본은 이런 선택을 했지만, 우리는 호주나 캐나다, 인도 같은 나라하고 연대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다. 브릭스(BRICS)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에 들어가야 한다.
브릭스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와 연계되는데, 러시아와 중국 등이 자기들 통화로 거래 하는 양상이 나타나면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당장 달러 패권이 뒤집어지진 않겠지만 대안이 생기고 미국이 통화를 통한 제재를 못하는 시대가 오면 브릭스는 과거의 제3세계와는 다른 아주 강력한 체제가 될 수 있다. 여기에 한 발을 걸쳐야 한다.
프레시안 : 최근 뮌헨 안보 회의에서 최초로 중국, 프랑스, 독일 외무장관이 한 자리에 모였다. 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중국에 방문하는 등 유럽이 중국에 가까워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유럽의 흐름을 따라가야 되는 건가?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으로 보는지?
김준형 : 지금이 아닌 트럼프 정부 초기 한창 관세를 협상하던 시점에서 보면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대드는 나라로 인도와 캐나다 등이 있고 완전히 항복한 나라가 EU(유럽연합), 일본 등이 있는데 우리는 버티면서도 대들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실리를 챙겼다. 제3의 모델을 만든 셈이다.
이걸 계속 유지하면서 관세 협상과 관련한 해석 전쟁 및 실행 투쟁에서 버텨내야 되는데 우리 내부에서 누수가 생기고 일본이 저렇게 빠져버리다 보니 좀 어려워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더 버텨야 됐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소위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의 약자로 '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물러선다'는 뜻. 상대를 강하게 위협했으면서도 결국에는 물러서는 트럼프 식 협상을 조롱하는 의미로 등장한 단어다.) 스러운 모습을 보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국의 재산업화, 제조업 부활은 우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것이 미국과 협상에서 우리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법을 만들어 놓고 미국에게 뜯길 것 다 뜯기면, 트럼프가 침몰해도 우리는 미국에 구조적으로, 법적으로 묶여 버리게 된다. 관세만 보더라도 미국 내에서 대법원 판결로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이 판결이 나오기 전에 우리가 섣불리 법을 제정했다면 우리는 스스로 쳐놓은 올가미에 걸렸을 것이다.
트럼프는 양자 차원의 협상을 통해 단기적 이익을 얻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을 소외·고립시키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트럼프가 '피스 메이커'가 맞기도 하다. 트럼프 때문에 안 친했던 국가들이, 심지어 이란과 사우디가 전쟁에 반대하는 회담을 하고 인도와 EU가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하고 캐나다와 중국이 만나고 있지 않나.
미국의 강점 중에 하나가 전 세계에 동맹과 우방국이 60개 이상 있었다는 것인데 트럼프가 이러한 동맹을 다 걷어내면서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계속 버티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를 사용해야 된다. 그런 점에서 중국 카드는 매우 유용하다.
프레시안 : 중국 카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우리가 피해를 덜 받을 수 있을까?
김준형 : 미중 중에 누구도 완벽하게 상대방을 제압하지 못한다. 지금 또 중국이 착해지고 있다. 미국 때문에. 예를 들어 중국은 북한의 대북 제재 해제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소위 '책임대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미국으로부터의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무역, AI, 다자주의 등을 강조해야 한다. 지난해 에이펙(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의 마지막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이건 트럼프의 '파편화'와 반대되는 의제다. 중국도 이러한 부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기본적으로 미국과 절연할 수 없다는 건 아는데 최소한의 자율성을 발휘하면서 중간에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한중은 수직적 관계가 깨지고 경쟁관계가 된 건 맞지만, 여전히 중국은 우리를 서방의 공급망을 향한 일종의 관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카드가 유용하다.
안보적으로도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지난 1월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평화의 중재자가 되어 달라고 했는데 이게 북한을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청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다. 한반도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한국과 접점이 생긴 것이다.
지금은 한반도와 관련해 안보든 경제든 미국하고의 접점보다 중국하고 접점이 훨씬 많다. 한반도 평화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다자주의, 자유무역 등을 보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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