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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대신 단두대에 선 엘프리데 숄츠, 연좌제란 야만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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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상 없다』 E. M. 레마르크의 여동생

나치, 정권 잡자마자 책 불태우고 시민권 박탈

작가는 스위스로 망명한 뒤라 여동생에 "사형"

"오빠는 우리의 손 벗어났지만 당신은 못할 것"

나치, 처형 비용을 다른 여동생에게 청구하기도

권력에 밉보인 자 처벌하지 못하면 대신 가족을

법치의 언어 빌려 사적 원한을 처리하려는 유혹

재봉틀 앞에 앉은 조용한 여자

1943년 12월 16일, 베를린 플뢰첸제 형무소에서 마흔 살 여성이 목이 도끼에 잘려나간 참수를 당했다. 이름은 엘프리데 마리아 레마르크 숄츠(Elfriede Maria Remark Scholz, 1903~1943). 직업은 양장점 주인이자 재봉사. 정치범도 아니고 지하조직원도 아니었다. 그녀가 저지른 죄라고는 손님과 집주인 앞에서 몇 마디 흘린 게 전부였다. '이 전쟁은 이미 진 것 같아', '병사들은 그냥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 신세야", 딱 이 정도였다.

처녀 때 성이 문제였다. 레마르크, 그렇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쓴 그 유명한 반전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의 여동생이었다. 나치는 정권을 잡자마자 오빠의 책을 불태우고 시민권까지 박탈했다. 오빠는 이미 1932년에 스위스로, 다시 미국으로 망명한 뒤였다. 나치 입장에서는 화가 나 죽겠는데 손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잡은 게 독일에 남아 조용히 바느질을 하던 여동생이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쓴 그 유명한 반전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와 그를 대신해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여동생 엘프리데 마리아 레마르크 숄츠(Osnabrücker Rundschau)

"당신 오빠는 놓쳤지만, 당신은 놓치지 않겠다"

재판을 맡은 자는 나치 인민재판소(Volksgerichtshof) 소장 롤란트 프라이슬러(Roland Freisler, 1893~1945). 사형 선고를 내리며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신 오빠는 우리 손을 벗어났지만, 당신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재판기록에 그녀의 실제 범죄가 아니라 오빠의 문학적 죄가 버젓이 언급되었다. 법정이라는 곳이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복수극 무대가 된 사례도 드물다.

처형 비용 청구서가 살아남은 다른 여동생 에르나에게 날아갔다고 한다. 사람을 죽이고 그 값을 유가족에게 청구하는 나라. 잔혹함이 이렇게까지 사무적인 얼굴을 하고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차라리 섬뜩하다. 정작 오빠 레마르크는 스위스에 있다가 종전 뒤에야 여동생의 죽음을 알게 됐다. 그는 훗날 강제수용소를 다룬 소설 『생명의 불꽃』을 여동생의 영전에 바쳤다. 정작 독일어판에는 그의 헌사가 빠졌다. 전후에도 한동안 독일에서는 그를 조국을 버린 배신자 취급했기 때문이다.

 

엘프리데, 에르나, 에리히 레마르크의 어린시절( Elfriede Scholz, Erich Maria Remarque’s sister | Executed Today)

연좌제, 근대국가의 옷을 입고

한국인에게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 역모 사건 때 삼족을 멸하던 그 논리가, 20세기 한복판 '문명국' 독일에서 재판 절차라는 근대적 형식을 빌려 되살아난 셈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 권력에 밉보인 자를 처벌하지 못하면 대신 가족을 벌한다. 죄형법정주의니 개인 책임의 원칙이니 하는 것들은 권력이 화가 풀릴 때까지만 유효한 장식품이다.

한국 현대사도 이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다. 월북자나 사상범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과 결혼, 심지어 해외여행까지 막혔던 연좌제의 기억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법으로는 1980년대 폐지되었다지만, 특정 인물을 향한 분노가 그 주변 사람에게로 번지는 습성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익신고자의 가족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정치인을 비판한 언론인의 가족사가 별안간 탈탈 털리는 일은 지금도 낯설지 않다.

 

롤란트 프라이슬러(위키피디아)

지금 한국이 곱씹어야 할 대목

2024년 12월 3일 밤 갑작스레 선포되었던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권력이 궁지에 몰리면 법과 절차를 얼마나 손쉽게 복수의 도구로 바꿔치기하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프라이슬러가 법정에서 뱉은 말과, 권력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 세력' 취급하며 명단을 작성했다는 정황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법치의 언어를 빌려 사적 원한을 처리하려는 유혹은 시대와 체제를 가리지 않는다.

엘프리데 숄츠의 이야기가 남기는 교훈은 단순하다. 어떤 사회든 '진짜 표적'을 잡지 못했을 때 그 화풀이가 누구에게로 향하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 권력자의 분노가 향하는 방향이 곧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재판정에 앉은 판사가 피고인의 죄가 아니라 그 부모형제의 이름을 들먹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 나라의 법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엘프리데 마리아 레마르크 숄츠(Frauen im Widerstand: Biograf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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