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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언더조직과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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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6.09.18 07:30

  • 수정 2026.09.1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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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카르텔과 저항 네트워크의 본질적인 차이

영화는 권력 클럽과 저항 단체를 대비해 보여줘

저항적 언더조직의 역사적 경험과 내부적 한계

저항 언더조직도 반성과 성찰 필요한 그늘 존재

운동 내부의 성찰과 기득권층의 공격은 다르다

마녀사냥 메커니즘은 늘 결함을 빌미 삼아 작동

무엇을 누구 편에서 어떻게 제기하느냐의 문제

이번에 주류 언론과 정치권이 용혜인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집단린치적 공격을 펼치는 과정에서 '언더조직'이 주요한 이슈였다. 진영을 넘어서 모두가 '언더조직'을 비난하는 장면은 솔직히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특히 보수 우파와 족벌 언론들이 '충격적'이라면서 호들갑스럽게 언더조직을 비난하는 행태는 여러모로 기가 막혔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보통 크게 두 개의 언더조직(비공개 정치집단)이 존재하고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국가, 관료, 기업, 군부와 연결돼서 사회 상층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들의 네트워크이고, 하나는 그러한 권력 카르텔과 맞서 싸우며 기존 체제를 변혁하겠다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지난해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도 그것을 다루었다. 거기에는 권력 집단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하 '클럽')'과 저항 집단인 '프렌치 75(이하 '75')'라는 두 개의 비밀 지하조직이 나온다. 둘 다 비밀스럽고 음모적이다. 영화는 '프렌치 75'를 일면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여러 문제점과 어처구니없는 결함들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동시에 두 조직을 대칭적 악으로 그리거나 둘 다 문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두 조직은 정반대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클럽'은 겉보기에는 품위 있는 신사들처럼 보이는 모두가 중장년의 백인 남성 권력자들이다. '75'는 젠더와 인종이 다양하면서, 거칠고 제멋대로인 사람들의 무리로 나온다.

'클럽'은 권력이 있어서 그것을 지키려고 숨어서 음모를 꾸민다. '75'는 권력이 없어서 탄압을 피하기 위해 숨어서 음모를 꾸민다. 따라서 '둘 다 다를 게 없는 언더'라고 싸잡는 것도, 심지어 권력의 언더조직에는 침묵하고 저항의 언더조직만 욕하는 것도 틀렸다.

이 나라의 1980~1990년대는 저항적 '언더조직'의 전성기였다. 수많은 청년들이 부조리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지하서클에 가입했다. 지금 민주당의 지도부에도 그랬던 사람들이 다수 있다. 그런 이들이 이번에 국민의힘과 주류 언론의 '언더조직'에 대한 일방적 공격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거나 침묵했다.

필자도 또 다른 언더조직에 있었다.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적인 변혁을 꿈꾸며 언더를 택했고, 가명을 쓰고 정보 경찰의 미행을 피하고, 새벽 알바를 하며 잘 먹지도 못하며 시간을 쪼개서 활동하다가 감옥에도 갔다. 물론 나는 그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도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부족했고, 위와 밖으로부터 억압에 맞선다며 내부로부터 억압을 외면하는 경우가 있었다.

사회를 바꾸겠다고 했지만, 사회가 만든 잘못된 편견과 위계적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특히 '부정의한 잘못된 세상에 맞서는 우리는 옳고 정의롭다'는 신념이 지나쳐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것은 또 다른 폭력으로 발전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그런 조직에 들어갔던 이들은 더욱 좌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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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조직이 스스로의 잘못을 은폐하거나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 등에서 피해자들을 외면할 때 분명하게 문제를 지적하고 반성을 요구해야만 한다. 용혜인 의원이 과거에 속해 있었던 언더조직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학생연대-전학협-사회당으로 이어졌던 뿌리를 떠올려보면 약간이라도 짐작되는 바도 있다.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과도하고 경직된 태도로 비판받던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괴물들'처럼 묘사하는 국민의힘, 주류 언론, 일부 지식인들의 비판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겠다. 그들은 언더조직이 보여준 문제가 마치 기득권 체제가 만들어낸 문제들과 동떨어진 새로운 문제인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언더조직'이 여성 활동가들에게 '낙태 금지'를 요구했다면, 그것은 낙태 금지를 법으로 강제하고 처벌하던 사회와 무관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런 사회와 질서를 옹호하던 자들이 '언더조직'을 비난하는 장면은 메스껍다. 마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우익 미군 대령인 록조가 여성 혁명가였던 퍼피디아를 탓하며 '나는 그녀에게 역강간을 당했다'고 말하는 장면처럼 헛웃음이 나온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운동과 조직도 사회가 강요하는 편견과 위계적 질서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여러 결함과 잘못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진지한 운동과 조직이라면 그런 오류와 문제를 통해 배우고, 그것을 성찰하고 바로잡아 가면서 세대를 교체하고 이어가면서 '또 다른 이후의(애프터 어나더) 전투'로 나가는 법이다.

결국, 용혜인 후보자에 대한 집단린치적 '검증'을 비판하는 태도에, '용혜인과 기본소득당의 여러 문제와 잘못을 모르는 것이냐'고 따지던 사람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그런 이들은 순수하고 결함 없는 사람만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마녀사냥을 평생 가도 볼 수가 없다. 결함과 잘못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데 뒤에 용혜인 성가족평등부 장관 후보자의 소속 정당인 기본소득당을 깎아내리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2026.9.10 연합뉴스

마녀사냥은 실제 존재하는 결함과 잘못을 핑계로 이용한다. 어릴 때 왕따 당하던 아이들도 찾아보면 결함이 있었다. 실제로 성격과 태도에 문제가 있거나,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미움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왕따는 정당했던 것이고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었나? 전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최근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장애와 자폐를 극복하고 최연소 흑인 교수가 된 제이슨 아데이는 실제로 자신의 경력과 봉사 경력을 부풀리는 등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표적 공격과 신상 털이 끝에 그를 교수직 사퇴와 결국은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영국 사회 주류 언론의 잘못이 사라질 수는 없다. 그 바탕에는 인종주의적 편견과 배제의 논리가 작동했다.

미국의 뉴미디어 언론인 하산 파이커도 자유분방한 트위치 방송 중에 선을 넘는 듯한 발언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사생활에서도 여러 결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치권과 언론의 그에 대한 거대하고 집중적인 공격은 명백히 트럼프와 극우 세력이 주도한 마녀사냥이었다. 그들은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하며 트럼프 정권과 가자 집단학살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파이커의 입을 막고 싶어 했다.

용혜인 의원과 기본소득당도 당연히 순수하고 결함 없는 이들은 아닐 수 있다. 한국 사회와 정치 발전에서 그들의 장점과 기여뿐 아니라 단점과 잘못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무엇을 누구의 편에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제기하느냐는 항상 문제가 된다. 모든 주장과 실천은 구체적 맥락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재명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며 인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앞으로도 거듭 반복될 문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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