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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울고만 있지 마세요”

굳이 나서는 사람들을 보라

조현 2014. 09. 16
조회수 88 추천수 0
 

 

[조현의 휴심정]

“더 이상 울고만 있지 마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정녕 몰랐다. 지난달 방한 때 그가 서울공항에 도착하면서 세월호 유족의 아픔에 공감해준 것만으로도 숙제는 한 셈이었다. 그 뒤부터는 박근혜 대통령의 반감을 무마해줄 차례였다. 그런다 한들 어쩔 것인가. 권력자를 위한 추임새에만 열중해 약자의 믿음 같은 건 헌신짝처럼 버린 종교지도자들을 한두번 봐온 것도 아니다. 더구나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한 그가 방문국 국가원수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는 시종일관 ‘어정쩡하게’가 아니고, 확실히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동행해 주었다.

 

아르헨티나영웅페이지.jpg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메르세데스 소사, 체 게바라, 산 마르틴.


아르헨티나의 독립영웅 산 마르틴(1778~1850)도 그럴 것까지는 없었다. 남미에서 스페인군을 몰아낸 뒤 영광을 누리길 거부하고 고국을 떠나 삶을 마칠 필요까지 있었을까. 체 게바라(1928~67)도 그랬다. 아르헨티나 최고 명문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던 그는 민중혁명 같은 게 없어도, 기득권을 누리며 살기에 충분했다. 쿠바까지 가서 혁명에 성공해 중앙은행장을 맡은 그가 다시 볼리비아의 정글로 떠나 게릴라전에 나서 사살될 것까진 없었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던 메르세데스 소사(1939~2010)도 노래나 부르면 됐지 독재자에 항거하다 체포되고, 추방돼 망명할 것까진 없었다. 7월 월드컵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힌 리오넬 메시도 우승국 독일의 주공격수 토마스 뮐러처럼 수비가 다가오면 넘어져 반칙이나 얻어내면 됐지, 상대 선수가 치고받아도 오뚝이처럼 달릴 것까지야 없었다.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교황의 고국 아르헨티나는 의인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폭력과 마약 복용으로 물의를 빚은 축구 악동 마라도나뿐 아니라 1976~83년 ‘더러운 전쟁’에서 3만명을 희생시킨 독재자 비델라와 군인·법조인·언론인들도 아르헨티나인들이다.
7월 브라질월드컵에서 브라질인들이 인접국 아르헨티나의 상대팀만을 응원한 걸 본 시청자들은 눈치챘겠지만, 아르헨티나인들을 ‘밥맛없어하는’ 남미인들이 적지 않다. 인종전시장 같은 브라질 등 다른 남미국들과 달리, ‘인종 청소(살육)’를 너무 깨끗이 해 버려 백인 일색인 아르헨티나인들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기들이 마치 유럽인인 양 행세하는 탓이다.

 

남미인들은 우스갯소리로 신에게조차 이런 혹평을 받는 이들이 아르헨티나인들이라고 비웃는다. 아르헨티나는 석유자원도 풍부하고, 대지도 비옥하고, 재앙도 없고, 풍광마저 아름다워 “왜 아르헨티나에만 좋은 걸 다 줬느냐”고 따지자, 신이 “그래서, 그 땅에 (형편없는) 아르헨티나인들도 함께 주지 않았느냐”고 답했다는 것이다.

 

인간미 넘치는 교황과 산 마르틴과 체 게바라와 메르세데스 소사와 메시가 나고 자란 곳은 그런 아르헨티나인들의 나라다. 그 밥맛없는 땅에서 그들은 ‘밥맛’이 되었다. 뮤지컬 <에비타>에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라고 해놓고는, 정작 자신은 약자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이렇게 노래하는 에비타가 바로 그들이다. “진정 나는 당신들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 힘든 나날 속에서도,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난 당신들과의 약속을 지켜요.”

 

박근혜 정권 들어 깊은 어둠에 절망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국가기관이 전방위적으로 대선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한 것도 모자라 이를 가리기 위해 국가정보원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왜곡하고, 수사 지휘자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폭로해 내쫓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마저 외면하고 유족들을 음해해 두번 세번 죽이는데도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 법조인, 종교인들마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데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보라. 굳이 굶지 않아도 될 텐데 광화문에서 함께 굶는 이들을. 굳이 지지 않아도 될 십자가를 지고 법치주의의 무너진 기둥을 어깨에 진 한 판사를. 권력과 욕망의 불빛으로 향하는 대열에서 나와 자신을 태워 길을 밝히는 밤하늘의 수많은 불빛을. 그래서 우리도 주저앉아 더 이상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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