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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전환 무기한 연기는 '갑오보호조약'"

정세현 "박정희의 피맺힌 '자주국방', 그 딸이…"

[정세현의 정세토크] "전작권 전환 무기한 연기는 '갑오보호조약'"

 
이재호 기자(정리) 2014.10.26 15:39:06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 대해 군사주권을 사실상 포기한 행위라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1894년 갑오년에 민족자주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갑오 농민혁명'이 일어났었는데, 그로부터 120년 후 오늘, 2014년 갑오년에는 우리 정부 장관들이 자진해서 미국에 군사주권을 무기한으로 맡기는 일이 일어났다"며 씁쓸해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905년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을 거론하며 "지난 1905년 일본이 힘으로 외교주권을 빼앗아갔던 경우와 지금은 또 다르기 때문에", 즉 "미국은 전작권 찾아가라고 하는데 우리가 매달려서 맡겼으니까 '늑약'은 아니고. 한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군사주권을 갖고 있기로 했으니 '갑오 보호조약'이라고 불러야 할까"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대중, 대북한 외교에서 한국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이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하는 수순을 밟아갈 것으로 보여,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 전 장관은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대중국 봉쇄에 나서는 것으로 비쳐지면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압박카드를 쓸 것"이라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가인 데다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대중 교역에서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중국이 실력 행사를 하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진단했다. 
 
북한과 관계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도발을 저지른 이후 전작권이 있는 미국에게는 바로 사과했지만 남한에게는 큰 이익이 걸려있지 않은 이상 사과한 적이 없다. 정 전 장관은 "만약 북한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군사문제라는 이유로 미국에게 사과한다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우리는 완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꼴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한 이유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크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2010년 기준 북한의 국방비 예산이 8억 1000만 달러, 같은 해 남한의 국방비 예산은 225억 7000만 달러다"라며 "단순히 국방비만 놓고 봐도 우리는 지금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정상이다. 그 많은 국방비는 다 어디에 썼나?"라고 반문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이 위협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 중에는 실체적 진실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이 적지 않다고 본다"며 2002년 부시 정부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유통시킨 사례를 들었다. 미국에서 이야기가 돌면 그것이 곧 실체적 진실이 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군사주권 포기는 정권의 도덕성, 정통성과도 관련되는 것"이라며 야당에서 이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박인규 대표와 대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SCM)에서 한미 양국 정부는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권 전환'에 합의했는데요. 따로 기한을 정하지 않고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겁니다. 이로써 당초 2012년으로 예정됐던 전작권 환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으로 한 차례 연기됐다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이번 결정이 한국의 대외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세현 : 이번 결정으로 군사주권 환수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군사주권, 경제주권, 외교주권이 있는데, 한 나라의 외교는 사실상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력은 장비와 병력 외에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군을 통제할 수 없다면 군사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바로 이러한 군의 '통제권'을 미국에 무기한 맡겨버린 겁니다.
 
조선 조 말 이완용 등 조정 대신들이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주권을 일본에 넘겼습니다. '늑약'은 일본이 우리에게서 강제로 빼앗아갔다는 뜻인데, 일본은 '보호조약'이라고 말해왔지요. 1894년 갑오년에 민족자주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갑오 농민혁명'이 일어났었는데, 그로부터 120년 후 오늘, 2014년 갑오년에는 우리 정부 장관들이 자진해서 미국에 군사주권을 무기한으로 맡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905년 일본이 힘으로 외교주권을 빼앗아갔던 경우와는 또 다른 것이죠. 미국은 전작권 찾아가라고 하는데 우리가 매달려서 맡겼으니까 '늑약'은 아니고, 한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군사주권을 갖고 있기로 했으니 '갑오 보호조약'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1905년 일본에 외교주권을 뺏기기 전 우리는 이미 경제주권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군사훈련을 일본 교관들한테 받다 보니 군사주권도 일본에 뺏긴 것이나 다름없었죠. 이렇게 군사주권이 넘어가면 국가 운영이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외교적으로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군사주권을 미국에게 무기한으로 맡긴 이번 결정으로 우리 외교의 운신 폭이 대단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정부는 전작권을 환수하지 않은 이유로 북핵 위협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이 위협이 없어지거나, 위협에 대비하는 군사적 예방책이 완비되면 전작권을 환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위협에 대비하는 군사적 예방책은 킬체인과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구축, 그리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들어가는 도입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국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사드 배치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추 대사는 사드를 두고 "북핵 대응이 아니라 한반도를 훨씬 넘는 범위를 커버한다"면서 우려를 표명했죠. 즉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작권 전환 연기와 KAMD, 킬체인, 사드 배치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작권을 찾아오지 않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대북억지력을 강화하는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움직임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중 간 외교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다가 중국은 전작권 전환 연기를 계기로 한미일 정보공유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중국은 아직 미국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미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국제정치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일단 동아시아만 자신의 세력권 아래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태평양 가운데나 유럽 어딘가에 있다면 중국이 그러든 말든 상관없지만, 우리와 중국은 같은 동아시아에 포함돼 있는 국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웃나라 한국이 중국의 인중(人中: 코와 입 사이의 급소)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국이 우리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경제입니다. 중국이 한중경제관계에서 실력 행사로 나오면 우리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즉 대중 경제외교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가인 데다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대중 교역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대중국 봉쇄에 나서는 것으로 비쳐지면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압박카드를 쓸 겁니다. 그럴 때 우리가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전작권을 환수하기 위한 '조건'이 결국 미국의 대중국 압박 및 포위 전략의 일환이 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북핵 위협 핑계를 대면서 아직 전작권을 찾아올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바둑 용어로, 패착(敗着)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과 관계에서도 남한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남북 간 군사문제가 터지면 북한은 전작권도 없는 남한정부를 상대로 웬만해서는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에는 좀 다르겠지요. 즉 사과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챙겨야 할 큰 이익이 없어지는 상황이 된다면 몰라도. 예를 들어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 당시 북한은 쌀과 비료를 챙겨가야 했기 때문에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가 통일부장관 앞으로 사과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사건이나 1975년 8월 15일 문세광 사건,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사건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북한은 사과는커녕 잡아떼기로 일관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은 대신 전작권이 있는 미국과는 사건 발생 즉시 협상을 하거나 사과도 했습니다. 김신조 사건 이틀 후 발생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때 북한은 바로 미국과 협상했습니다. 물론 그건 미국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고 미국이 먼저 제안은 했지만, 아무튼 미국과는 그런 식으로 합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도 김일성 주석이 미국에 직접 사과했었죠. 북한은 미국을 '화가 나면 바로 군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한은 화나게 만들어도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북한에게 결정적인 군사적 대응조치를 할 수 없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실제 1996년 9월 18일,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북한은 사건 이후 100일 만에 남한이 아닌 미국에 사과했습니다. 그때 제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했었는데 우리 대통령과 나라가 참 처량하게 보이더군요. 북한이 우리 바다에 침투해서 우리 땅에 올라와 총격전을 벌였고, 우리 군에서 조사하고 결과 발표했는데 정작 사과는 미국에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은,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에 환수 받았지만 사실상 진짜 지휘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작권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죠. 
 
북한은 자신들의 도발에 대해 사과할 때 주어를 명시하지 않고 얼버무립니다. "OO사건이 일어난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자"는 식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필요에 따라 북한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이같은 방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는데, 만약 이런 식의 사과마저 군사문제라는 이유로 미국에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만약 그리된다면 우리는 완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군 통수권자'입니다. 군통수권은 인사·재정 등 군정권과 작전지휘 등 군령권으로 구성되는데, 이번 일로 앞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는 인사권만 있고 군 지휘권은 없는 거나 다름없이 됐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군정권은 국방부 장관이, 군령권은 합참의장이 집행하는데, 대통령이 합참의장에게 지시를 해도 합참의장은 ‘협의’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주한미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6.25동란이 터진 지 40일 만인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넘긴 이후 그래 왔습니다. 그걸 노무현 정부가 2012년 4월 17일에 찾아오게 만들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2015년 말로 연기시켜서 안타까웠는데 박근혜 정부는 한 수 더 두었습니다. 아예 무기 연기시켜 버렸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1.21사건이나 아내의 목숨까지 앗아간 '문세광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북한이 미군 장교가 죽게 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는 미국에 즉각 사과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엄청난 굴욕감과 비애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자주국방'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주국방'은 멋진 수사(修辭)가 아니라 피맺힌 절규였다고 봅니다. 
 
이게 40년이 넘었고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그동안 엄청난 국가예산을 국방비에 투자했는데도 아직도 군사력으로 북한을 감당할 수 없어서 전작권을 무기한 미국에 맡길 수밖에 없이 됐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자주국방을 피맺히게 외쳤던 아버지의 딸이 40여 년 후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 '의존국방'의 시대를 열어 놓은 셈입니다.  
 
'북한 곧 붕괴' 예상하면서 북한 핵미사일은 위협적이다? 
 
프레시안 :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고 후속 조치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군 출신인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을 외쳤다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붕괴를 가정한 흡수통일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북한의 체제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것인데 불과 9개월 만에 북한이 위협적이라면서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정세현 : 통일대박론과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는 상충되는 이야기입니다. 말씀하신 통일대박론,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론, 통일준비위원회 등은 모두 사실상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곧 붕괴할 북한, 흡수할 북한을 상대로 해서 군사력을 강화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자가당착도 이런 자가당착이 없습니다. 
 
통일대박론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9개월 남짓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곧 붕괴할 북한’, ‘흡수통일 대상인 북한’이 ‘무시무시한 핵·미사일 강국’으로 변했습니다. 청와대나 군부는 이걸 국민들이 그대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번에 이런 큰일을 벌인 거겠지요?
 
청와대 대변인의 해명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불과 2년 전,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당초 계획대로 전작권을 2015년 12월에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청와대 대변인은 “공약보다는 국가 안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변인은 대통령을 2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장 2년 전에 했던 말을 뒤집어야 할 정도로 사안을 보는 통찰력이 없다면 안보 책임을 맡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경욱 대변인은 대통령을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대선 끝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국가 안보 상황이 어려워져서 전작권을 찾아오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어느 국민이 믿겠습니까. 
 
한쪽에선 북한 붕괴를 전제로 통일 대박론을 얘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의 군사력이 커지고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2020년대 중반까지 우리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북한은 언제 붕괴하는 건가요? 대박은 언제 터집니까? 킬체인, KAMD 개발· 배치하면서 드레스덴 선언에서 제시한 대북지원 프로그램을 쓸 수 있을까요?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만들겠다는 각종 정책과 프로그램은 언제 쓰려는 거죠? 요컨대, 통일이 임박했고 그래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해놓고는 전작권은 2020년 이후까지 연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붕괴 직전에 있는 집단의 군사력이 무서워서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 그것의 핵심인 전작권을 미국에게 무기한 맡긴다?   
 
국방비 차이 30배, 그런데도 북한이 위협적이다? 
 
프레시안 : 정부는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의 이유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40년 동안 자주국방을 외쳐왔고 경제 규모로는 북한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경제강국인 한국이 아직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두려워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세현 : 북한의 군사력은 재래식 전력과 비대칭 전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는 우리가 북한을 겁낼 것이 없습니다. 하기야 한때 무인기 가지고도 법석을 떨었으니까 재래식 무기나 원시적 무기에도 대비는 해야겠지만, 문제는 핵과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자금이 없으면 만들 수가 없습니다. 결국 군사력은 경제력과 직결되는 겁니다. 부국강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2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도착해 사전 의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한민구(왼쪽)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 2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도착해 사전 의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한민구(왼쪽)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북한의 국방비 예산은 8억 1000만 달러입니다. 같은 해 남한의 국방비 예산은 225억 7000만 달러였습니다. 국방비만 따지면 28배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예산 규모로 따져 봐도 북한은 남한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2010년 남한 국가 총예산이 1740억 달러인데, 북한은 52억 달러입니다. 만약 북한이 이 국가 예산 전부를 국방비에 쓴다고 가정해도 남한 군사비 225억 7000만 달러의 4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국방비만 놓고 봐도 우리는 지금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정상입니다. 대체 그 동안 그 많은 우리 국방비는 어디에 사용한 겁니까?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투자를 했으면 이제는 북한의 군사능력이 위협적이라는 말은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 북한의 핵미사일이 그렇게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미국에 떼를 쓰던지 애원을 해서라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 등을 해결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정권의 성격과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군부의 사고방식과 의식구조의 문제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북한을 상대할 수도 이길 수도 없으니까 모든 걸 힘이 센 미국에 맡겨야 한다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애당초 이런 요구도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결국 자주국방이란 고가의 첨단무기를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평화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 고민, 즉 의지의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제가 최근 한 공직자로부터 들은 얘긴데 우리 군에 별을 단 장성이 400명, 대령은 3000명이라고 하더군요. 이 수많은 별들이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 자주국방을 외친 지 40년이 지나서도 북한 군사력이 무서워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를 선택하는 것을 보면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세현 : 그렇습니다. 여담이지만 북한은 장성이 1000명이 넘기는 하지요. 그래서 무섭다고 할 수도 있지요(웃음). 아무튼 우리는 그 많은 국방비로 북한에 대응할 무기를 샀지만 그냥 무기만 사다 놓은 겁니다. 고가의 미국 무기를 열심히 구매해준 셈입니다. 북한 무기에 대응해야 하니까 우리도 고성능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전략적 판단 없이 미국이 사라고 하는 것을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식으로 구입해준 겁니다. 한국 무기의 80%가 미국산 무기라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최근 언론 보도를 보니 전작권 전환 연기를 위한 미 의회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미제 무기 구매를 대폭 늘였다고 하더군요.
 
우리 군은 기본적으로 전략 판단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플 일이 없죠. 그러니까 군의 기강이 안 잡히고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들이 생기는 겁니다. 전략적인 고민을 하는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에 간부가 부하를 성추행하는 사고를 일으키겠습니까? 국가를 지킬 전략 짜느라 밤을 새는 상관 모시려면 술 진탕 마시고 딴 짓 할 시간이 없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전력이 위협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전작권 전환 협상이 타결된 이후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정세현 : 저는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 중에는 실체적 진실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정보라는 것이 원래 객관적 사실이기보다 가공된 해석 아닙니까? 그 가공되고 해석된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몇 번 구르고 나면 별것 아닌 위협이 엄청난 괴물로 과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강원도의 고랭지 채소가 밭떼기 상인한테 싼값에 팔렸으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올 때까지 여러 유통단계에서 엄청난 마진이 붙음으로써 생산가의 몇 배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비싸게 팔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북핵과 미사일 관련 정보도 많은 전문가와 씽크탱크 등의 발언과 해석을 거치는 동안 가공되고 과장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 부시 정무는 북한이 연료봉을 재처리 하지 않고도 막 바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자백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표가 제네바 합의 파기의 직접적 원인이 됐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은 사실 당시 부시 정부의 정책적 의도가 개입돼서 나온 과장·왜곡된 정보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부시 정부가 그걸로 북한을 압박해도 문제가 해결 안 되니까 나중에는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말을 바꾸더군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 즉 HEU(Highly Enriched Uranium)이 아니라 그보다 급이 낮은 ‘농축 우라늄’으로 슬그머니 용어도 바꿨습니다. 그냥 ‘우라늄 농축’은 북한이 원자로 연료봉을 만들기 위해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내놓은 북한 관련 정보라는 것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얼마든지 가공·왜곡·가미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과학·기술 면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나라이다 보니까 그들이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기 정보를 가공하고 왜곡해도 그것이 불변의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개된 진실’ 이면에는 사실은 별것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는 명분이자 근거로 내놓는 북한 핵능력에 대한 판단도 실체적 진실보다는 가공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무기 시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시장 관리 차원에서 정보를 가공하기도 합니다.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죠. 군산복합체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이런 정보들을 우리처럼 대미 의존성이 강하고 친미를 넘어 숭미, 종미 하는 사람들이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에 흘립니다. 그럼 여지없이 이것이 진실이 되는 겁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북한에 대한 평가는 일단 싱크탱크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곳이 대부분 군산복합체와 연결돼 있습니다. 제대로 된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군산복합체에 이익이 되는 정보들로 가공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 보수성향의 지도층과 군은 북한의 군사력과 병력에 대해 트라우마, 즉 근원적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싱크탱크와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실체적 진실과 다른 이른바 ‘괴물’ 북한이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미국은 사실 우리와 정보를 100% 공유하지 않습니다. 1995년엔가 오산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북한 전역을 인공위성이나 U-2기로 볼 수 있는 방이 있는데 한국 장교도 거기까지는 들어갈 수 있더군요. 그런데 소리를 듣는 방에는 한국 장교건 사병이건 들어가지 못하더란 말입니다. 군사정보가 됐건 정치정보가 됐건 영상정보보다 음성정보가 핵심인데, 미군사병도 들어가는 방에 한국 장교도 못 들어간다는 겁니다. 한국은 핵심 정보에 접근을 못하는 겁니다. 아니 미국이 핵심 정보는 안 주는 거지요. 
 
프레시안 :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KAMD와 킬체인 등이 마련돼야 전작권을 환수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유치한 발상 아닌가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너무 1차원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과거 정부는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보수 정치인인 김영삼 대통령도 미국에 의존해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을 군사력으로 상쇄하거나 억지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남한의 우월한 경제력을 앞세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19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영삼 대통령의 기본 구상은 “북한의 대남 위협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경제협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경협이 심화돼 남북간 상호 의존성이 커지고, 이를 통해 북한이 지속적으로 혜택을 본다면 북한이 쉽게 군사적인 도발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북한의 위협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2000년 6월 6.15 공동선언이 나왔는데, 당시 정부는 이 정상회담과 그 이후 장차관급 남북회담들에서 경협을 레버리지로 삼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완화시키려는 전략을 썼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이 현저하게 줄어든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 우리에게 MD를 팔려고 혈안이 돼 있던 때, 당시 김대중 정부는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쏘지 않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소한다는 발상이죠.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군사주권의 포기입니다. 어쩌면 훗날 박근혜 정부가 남긴 가장 부정적 유산으로 기록될지 모릅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공사보다도 치명적 피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결정이 아무런 사회적 토론 없이 밀실에서 은밀하게 결정됐습니다. 게다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이번 결정의 중대함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세현 : 전작권 전환의 무기한 연기는 야당 전체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도 모자랄 일입니다. 군사주권 포기는 정권의 도덕성, 정통성과도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바쁘고 전문성이 없으면 연구소라도 잘 만들어서 제대로 된 정책 조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는 그런대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연구소는 해당 전공도 아닌 사람들이 연줄을 타고 내려온다고 하더군요. 다 자신을 밀어준 이른바 ‘보스’가 있구요. 제대로 된 정책 조언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야당은 여당을 비판하고 견제함으로써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우리 야당은 그런 개념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전작권 전환 연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과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을 국민과는 일언반구의 논의도 없이 미국에 갖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군사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가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가진 것은 군 인사권뿐입니다. 인사권만 가진 지휘권은 반쪽에 불과합니다. 야당은 이런 점을 잘 파고들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걸로 봐서는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야당, 참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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