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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반기문, '유령' 불러들이는 굿판

[주간 프레시안 뷰] '숨은 실세' 논란과 '제3후보론'

 
임경구 기자 2014.11.07 05:18:57

 

 
이번 주 <프레시안> 정치 기사의 클릭수를 살펴보니 상위권의 키워드는 단연 '정윤회'와 '반기문'으로 압축이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실체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현실 정치와 무관하다며 적극 손사래를 치는 것도 공통적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과 독자들이 이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기현상은 기현상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정윤회 씨가 입길에 다시 오르게 된 계기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잃어버린 7시간' 의혹과 관련한 <조선일보>와 일본 <산케이신문>의 보도 때문입니다. 권력에는 반드시 추한 이면이 있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막후의 실세가 있을 것이라는 대중의 의심은 만국 공통입니다. 여기에 정 씨와 박 대통령의 오랜 인연, 베일에 싸인 정 씨의 개인사 등이 은근한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로 안성맞춤이었죠. 
 
▲ 지난 7월 24일 자 JTBC <썰전> 73회 화면 갈무리. ⓒJTBC

▲ 지난 7월 24일 자 JTBC <썰전> 73회 화면 갈무리. ⓒJTBC

물론 청와대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부인합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케이> 보도에 법적으로 대응해 국제적 망신까지 자초한 정부의 '오버 액션'이 정 씨 관련 의혹을 세월호 참사 당일의 행적 이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정 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비서관) 사이의 관계,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와 정 씨 사이의 권력 암투설 등 기존의 의혹들까지 줄줄이 재조명받는 지경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 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자주 통화한다. 정윤회는 내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역술인 이 모 씨를 자주 만났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실이라면 권력을 사칭한 비리의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일이죠. 정 씨가 최근 대통령 측근들과 독도에서 열린 음악회 행사에 가명까지 써가며 참석한 일도 드러났습니다. 세상이 정 씨를 자연인으로 봐주지 않고, 정 씨의 행적에 이처럼 석연찮은 대목이 드러나는데도 청와대가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권력 암투나 숨은 실세 논란은 대개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벌어지는 말기적 현상입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 들어 비선 의혹이 임기 초반부터 끊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비단 대중들의 말초적인 관심과 언론의 부화뇌동으로만 몰아갈 수는 없습니다. 공식 라인이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그 이면에서 권력을 농단하는 세력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악순환이 작동하는 겁니다. 반복되면서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인사 실패 때마다 따라붙는 '비선 천거설'이 일종의 증좌입니다. 
 
그렇게 볼 때 정윤회 논란은 그의 정치적 실체 문제를 넘어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깊은 곳에 어두운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처음부터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을 가감 없이 밝혔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비밀주의, 청와대와 정부조직 곳곳에 숨어 있는 비정상성을 개선하지 않으면 실체가 있건 없건, 막후의 유령들은 언제든 다시 기승을 부릴 겁니다.
 
 
청와대가 '정윤회 논란'에 휩싸인 사이, 여의도 정치권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차기 대선출마설로 후끈합니다. 정윤회 씨가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권력의 비사를 상징하는 과거의 인물이라면, 반 총장은 박근혜 정부 이후의 리더십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과 관심을 상징합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현재 권력을 형해화(形骸化)하는 악재들인 셈이죠.
 
'반기문 대망설'은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난 10월 중순, 이 업체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반 총장이 나설 경우 39.7%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3.5%로 2위에 오른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격차가 무려 3배에 달했습니다.
 
이를 기화로 반 총장을 국내정치에 끌어들인 이야기들이 공공연해졌습니다. 먼저 여당의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이 주축이 된 모임 '국가경쟁력포럼'의 토론회에서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습니다. 발제를 맡은 여론조사 업체의 대표가 "반 총장을 제외하고는 정권 연장이 쉽지 않다"고 하자 이에 한 의원이 "당내 인사로 도저히 정권 창출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반 총장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서 피어난 연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지난해 초부터 여권 인사가 반 총장과 가까운 정부 내 관료들을 통해 영입설을 타진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주로 뚜렷한 대선주자를 보유하지 못한 친박계가 반 총장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비박계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해석까지 나옵니다. 반대로 김 대표의 오스트리아 식 이원집정부제 개헌론 주장과 맞물려 내치는 김 대표가, 외치는 반 총장이 분담하는 집권 시나리오도 나왔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G20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국제 현안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청와대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G20 정상회의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국제 현안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청와대

반 총장을 둘러싼 여권의 여러 셈법을 접하고 있자니 참 격세지감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박근혜 대항마'로 반 총장을 물망에 올린 친이계 인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미래'가 걱정되는 친이계가 권력 연장의 불쏘시개로 반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거죠. 
 
새정치민주연합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새누리당이 반기문 대망론을 거론하기 무섭게 보다 직접적인 언사로 반기문 영입론을 띄웠습니다. 비주류로 밀려난 동교동계 인사들이 이를 주도했습니다. 권노갑 고문이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반 총장 측근들이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 쪽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운을 띄우자 정대철 상임고문도 "여전히 반 총장이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살아있다"고 호응했습니다. 
 
야권에서 나오는 반 총장 영입설의 주요 근거는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배경에 노무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의리론'입니다. 또한 충청도 출신인 반 총장이 대선후보로 나설 경우 비영호남 후보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는 계산도 한 모양입니다. 일각에선 동교동계 등 비주류 인사들의 독자 신당설과 맞물려, 친노(친노무현)계와 불거진 갈등 관계의 표면화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집권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의 생리상, 차기 대선후보를 물색하는 행위 자체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스펙만으로도 인물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는 반 총장에 대한 여야의 관심은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국민보다 정당, 정당보다 계파의 생존이 우선시된 제3후보론은 설득력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권 바깥의 외부인사 영입론은 정치의 현장에서 리더를 키워내지 못한 정당의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니까요. 이는 제3후보가 성공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2016년 12월까지인 반 총장의 임기는 아직 2년이나 남았고, 대선은 그보다 한참 뒤인 2017년에 치러집니다. 반 총장이 정말 차기 대선에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 4일 반 총장 측은 '언론 대응 자료'를 통해 "반 총장은 (대선후보 출마설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도 미래에 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출마 가능성을 닫아놓지는 않은 거죠. 
 
이렇게 일단 발아한 반기문 대망론은 시간이 갈수록 덩치를 불려갈 겁니다. '반기문 바람'의 본질이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 야권에 대한 절망인 이상, 여야의 정치주체들이 '못난 정치'의 오랜 습성을 버리지 못할수록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집권에 대한 욕망만 존재할 뿐 집권으로 가는 사다리를 스스로 만들지 못한 정치세력에게 국민들은 동아줄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위험수위에 다다른 정치 불신을 보여주는 '반기문 바람'이 곱게 보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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