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쌍용차 판결 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등록 : 2014.11.23 14:13수정 : 2014.11.23 15:10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신소영 기자가 이소영 독자님께 드리는 편지]

‘쌍용차 해고’ 대법원 판결 날, ‘한겨레’ 1면에 실린 사진을 보고 
한 독자가 한겨레신문사로 편지와 작은 정성을 보내왔습니다
그 사진 너머, 그날의 이야기를 현장에 있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독자 이소영 씨가 ‘한겨레’ 14일자 1면에 실린 대법 판결 후 울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기사를 보고 4만 7천 원과 편지를 보내왔다. 이소영 씨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응원하는 내용과 함께, 손배·가압류 해결을 위해 시민 1인당 4만 7천 원씩 모두 4억 7천만 원을 모으는 캠페인 ‘노란봉투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모금 목표액 4억 7천만 원은 장기 파업을 한 쌍용차 노동자가 회사와 경찰에 배상해야 할 액수에서 착안했다./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송파에 사시는 이소영 독자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 김장은 하셨나요? 저는 지금 막 평택에서 김장 담그기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독자님께 보낼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평택을 떠날 때 한 분이 손에 쥐어주신 검은 봉지 속에서 김치 냄새가 폴폴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독자님께 무슨 말로 답장을 시작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는 한겨레신문사 사진부의 신소영입니다. 독자님께서 며칠 전 저희 신문사로 보내주신 편지를 잘 받아보았습니다. 제 이름과 같은 성함을 가지신 독자님께서 지난 11월14일치 <한겨레> 1면에 실린 사진을 보시고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순간 여러 생각이 교차됐습니다. 무엇보다 독자님께서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는 그 사진을 취재한 13일 오후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독자님께 사진 너머의 그날 이야기를 좀 더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겨레 11월 14일자 1면
▶기사 바로 가기 : 25명 보내며 5년 버틴 ‘복직 꿈’ 대법원에서 무너지다

 

그날은 지난 2009년부터 오랜 시간 해고의 아픔 속에서 힘든 상황을 버텨온 153명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정말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해고노동자들이 ‘해고무효 확인소송’ 2심에서 승소한 터라,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대법원 법정 앞으로 모였지요. 저도 해고농자들의 눈빛에 담긴 간절함이 느껴져 선고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함께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백하건데 제가 찍고 싶었던 사진은 독자님께서 보신 그 사진이 아니라 해고노동자들이 승소 확정에 기뻐 함께 부둥켜 안고 감격해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문에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을 듣고 법정 밖에서 눈물을 훔치던 한 해고노동자의 모습이 실렸습니다.

 

사실 오후 2시 재판이 열리기 전부터 불길한 조짐이 느껴졌습니다. 의경들이 법정 주변에 가득 배치됐기 때문이죠. “혹시 판결에 대비한 경비 병력 배치?” 생각하기도 싫은 결과가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대법원의 차가운 판결이 전해지면서 법정 주변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법정에 있었던 해고노동자들과 변호인이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있던 이들이 숨죽인 채 그들을 지켜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긴 탄식이 터져나왔고, 사진기자에게는 ‘찍는 자의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한 해고노동자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는 그의 모습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며 저도 속으로 함께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다른 동료들도 서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애꿎은 시선을 바닥을 향해 떨어뜨렸습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오른쪽)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민주노총 주봉희 부위원장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이날 쌍용차 해고노동자 노모(41)씨 등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금 뒤 금속노조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이 상황을 추스르고는 취재진을 향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소처럼 큰 그의 눈에는 눈물을 참으려다 생긴 핏발이 벌겋게 섰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건네는 이들을, 그는 되레 다독였습니다. 그도 위로를 건네는 이들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연신 플래쉬를 터트리며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기자가 어쩌면 야속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들려드렸나요?

 

그날 마지막에 만난 한 분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며 답장을 마쳐야겠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노란 서류봉투에서 A4용지를 한 꾸러미 꺼냈습니다. 해고노동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들은 승소한다면 각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찢어 하늘로 뿌리려 했다고 합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해고노조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대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이 끝나자 한 노조원이 해고노동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하늘에 뿌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하지만 하늘로 뿌려진 종이들은 맥 없이 땅바닥에 흩어졌습니다. 그때 한 해고노동자가 바닥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집어 들더니 ‘내가 해고노동자’라고 말했습니다. 허탈한 미소였지만 그가 ‘이제 완전한 해고노동자가 되었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은 덕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힘내자”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며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성함은 김수경씨였습니다.

 

대법원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제기해 2심에서 승소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파기환송 선고한 13일 오후 대법원 정문 앞에서 정리해고자 김수경씨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허탈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오늘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제게 김치가 담긴 검은 봉지를 손에 쥐어주신 분의 성함도 김수경씨입니다.

 

네, 저는 오늘 쌍용차 해고노동자 치유 공동체인 ‘와락’에서 김장 담그기 취재를 했습니다. 해고 이후에 해마다 모여 김장을 담그는 그들을 취재하기로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터라 조심스러웠습니다. 무슨 인사말을 건네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와락에 들어섰는데 제일 먼저 김수경씨가 보였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친 김수경씨는 그날처럼 웃어주시더군요. 안심이 됐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김칫속을 넉넉히 묻힌 배추 잎을 여러번 얻어먹었습니다. 몇 년만에 다시 뵌 해고노동자들의 부인들은 수육을 삶고 있으니 먹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바쁜 척하는 기자에게 갓 담은 김치를 서너포기나 담아주셨습니다. 검은 김치 봉지를 들고 취재 차량 앞까지 배웅해주신 김수경씨께 김치를 건네 받으며 열심히 김치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눈물로 담았을 그 귀한 김치를 어떻게 먹을 수 있냐고요?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수경 씨가 21일 경기 평택시 원평로에 위치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치유공동체 ‘와락‘에서 함께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함께 김장을 하던 중 기자에게 김치를 먹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평택/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아니요, 저는 어서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면에 올려 먹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볶음밥도 만들어 먹을 겁니다. 해고노동자들은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 나눠 먹는다는 것으로 무언의 치유와 위로를 나누고, 그 힘으로 끝까지 싸우자는 약속을 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이름이 같으신 이소영 독자님. 제 편지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걱정하시는 독자님께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독자님의 마음이 담긴 편지와 정성이 담긴 4만7000원은 해고노동자들께 잘 전달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2014년 11월23일

 

공덕동에서 신소영 기자 올림
독자 이소영 씨가 ‘한겨레’ 14일자 1면에 실린 대법 판결 후 울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기사를 보고 4만 7천 원과 편지를 보내왔다. 이소영 씨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응원하는 내용과 함께, 손배·가압류 해결을 위해 시민 1인당 4만 7천 원씩 모두 4억 7천만 원을 모으는 캠페인 ‘노란봉투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모금 목표액 4억 7천만 원은 장기 파업을 한 쌍용차 노동자가 회사와 경찰에 배상해야 할 액수에서 착안했다./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소영 독자가 한겨레신문사로 보내온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회사원 남편을 둔 주부 이소영입니다.

 

저는 지난 11월14일 금요일 한겨레 신문에 실린 사진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쌍용차 대량 해고는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우는 분의 모습 때문입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보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들은 ‘노란 봉투’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몰라서 4만7천원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지금 울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분들을 위해 저도 늦게나마 4만7000원을 보냅니다. 저처럼 몰라서 돈을 보내지 못했던 분들도 많은 줄 압니다.

 

우리 다함께 다시 힘을 모아 그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배우 김부선씨가 난방비 비리를 국감에서 증언하면서 한 말을 우리 모두에게 위로로 드립니다.

 

“진실은 느리지만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2014년 11월19일

 

이소영 올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