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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에 불만 품는 것이 무슨 대역죄인가



송요훈 편집위원

songyoh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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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 입력 2025.12.11 20:00

  • 수정 2025.12.12 09:49

  • 댓글 1

법 왜곡죄와 ‘석궁 사건’과 서부지법 난입 사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 기자)

“법을 안 지켜서 문제가 되는 거지, 법은 아름다운 겁니다.”

“법은 수학하고 똑같아요. 문제가 정확하면 답도 정확하죠.”

 

수학 공식은 예측 가능한 답을 내놓는다. 변수가 같으면 답은 항상 같게 나온다. 수학의 답은 상황이 어떻고 상대가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바뀌지 않는다. 그게 수학이다. 그런 수학을 전공해서인지 융통성이 없어 앞뒤가 꽉 막히고, 고지식하여 원칙과 양심에 어긋나는 타협을 거부하던 수학과 교수는 학교 측에 미운털이 박혀 승진에 누락되고 결국 재임용에서 탈락한다.

 

그 교수는 학교를 상대로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한 거였는데, 1심에서도 2심에서도 대법원에서도 패소했다. 법원은 강자인 학교 편이었다. 법정에서는 수학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법은 유연하여 강자에게는 사근사근하고 약자에겐 거칠었다. 억울함을 풀러 갔다가 억울함을 키웠다. 직장을 잃은 교수는 취미 생활로 갖고 있던 석궁을 들고 2심 판사를 집으로 찾아갔다. 겁을 줘서라고 판결이 잘못됐다는 자백을 듣고 싶었다.

 

‘석궁 사건’ 때는 난리법석, 서부지법 폭동 사태 때는 침묵

 

영화 <부러진 화살>은 그렇게 시작된다. 2007년 1월 15일에 실제로 있었던 ‘석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관객들 앞으로 실제 법정을 옮겨 놓았다. 재판 기록과 녹음을 토대로 마치 실제 재판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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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소송에서 패소한 전직 교수가 재판장이던 판사를 집으로 찾아가 옥신각신하다 상처를 입히는 ‘석궁 사건’이 발생하자 대법원은 즉각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했다.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에게 테러를 저지른 것이며,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해 엄단하겠다는 대법원의 발표를 모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 교수는 판사 테러범으로 확정되었다. 대법원의 성급한 발표를 비판하는 언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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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극렬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여 난동을 벌인 당시의 모습. 법원 현판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2025. 1. 19 연합뉴스

‘석궁 사건’이 있고 18년이 지난 2025년 1월 19일,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흥분한 윤석열 극렬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여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색출하겠다며 난동을 벌이고 법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집기를 부수고 불까지 지르려 한 ‘법원 난입 폭동 사태’가 발생했다. 판사 한 사람이 위협을 받았을 때는 법치주의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며 즉각 반응했던 대법원이 ‘법원 난입 폭동’에는 침묵하였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 나오는 재판장은 방청객이 웅성거리거나 항의를 하면 ‘감치하라’ ‘모두 법정 구속하라’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데, 2025년의 현실에선 내란죄 피의자 김용현의 변호인들이 법정 안팎에서 판사와 법원을 모욕하고 조롱해도 대법원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수학과 교수’ 피고인이 재판장인 판사에게 호소하는 건 오직 하나, 재판을 법대로 진행해달라는 것뿐이다. 재판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영화 <부러진 화살>에 나오는 2007년의 법정과 지귀연 판사가 맡고 있는 2025년의 내란죄 법정은 영 딴판인데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는 비판에선 거기가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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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변호인단의 이하상 변호사는 23일에도 유튜브 채널 '진격의 변호사들'에 출연해 이진관 부장판사를 욕하고 조롱했다. 2025.11.26. '진격의 변호사들' 화면 갈무리

자신의 잘못 책임지려 하지 않는 판사와 기자들

 

“법 왜곡죄 신설은 재판 판결에 불만을 품고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주게 되는 것이다.”

 

8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결과를 전하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경악했다. 판결에 불만을 품으면 안 되는 건가? 판사도 신이 아닌 사람이라 실수를 할 수도 있고, 판결이 신성불가침도 아닌데, 판결에 불만을 품는 게 무슨 불경한 반역죄라도 되는가? 판결을 존중한다고 하는 이유는 판결이 무오류라서가 아니라 판결을 존중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라는 걸 판사들은 모르나? 판결에 불만이 있다 한들 승복하지 않을 수 없고 판사를 혼내줄 방법도 없는데 ‘새로운 무기’라니, 지금은 대체 어떤 무기가 있다는 거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법 왜곡죄 신설의 취지는 수사나 재판에서 특정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할 목적으로 사건을 조작하거나 의도적으로 법을 잘못 적용하는 행위를 처벌하여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자는 거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악용 소지가 크고 판사들이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이유가 잘못된 보도에 대한 징벌적 배상이나 허위조작 정보를 처벌하는 법에 반대하는 쪽의 주장과 흡사하다. 기자로 살아온 나는 징벌적 배상에 기자들이 반대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취재와 보도에서 지켜야 할 언론의 윤리를 성실하게 준수하면 잘못된 보도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고, 설령 과실이 있더라도 언론 윤리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걸 입증하면 징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단속 카메라기 있든 없든, 함정 단속을 하든 말든, 걱정할 게 없다. 기자도 그렇고 검사도 그렇고 판사에게도 그러하다.

 

부정확하고 불공정한 보도에 너그러웠던 판사

 

내가 MBC에서 퇴직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맡은 업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의 MBC 뉴스가 공정했는지 조사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의 MBC는 ‘엠빙신’이라는 멸칭으로 불렸고, 뉴스의 신뢰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니 정치 보복을 하는 거라고 당시의 야권에서는 주장했지만, 조사의 기준은 오직 하나, 취재와 보도의 준칙, 그러니까 언론의 윤리를 성실하게 준수하였느냐 하는 것이었다.

 

보도 당시에 말이 많았던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보도도 그때 조사했다. 보도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고, 이명박 정부 시절의 방심위에서 불공정 보도로 법정 제재에 해당하는 ‘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도 표절이 아니라고 결정을 내린 사안이기에 당연히 조사 대상이 되었다. 조사해보니 언론 윤리는 거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보도한 기자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준 요약 자료를 근거로 ‘거의 옮겨쓰다시피 했다’ ‘거의 복사수준으로 베꼈다’며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기자는 연구 윤리 전문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기사에는 전문가 의견도 없었고, 당사자 반론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외부 변호사 2인이 포함된 회사 인사위원회는 그 기자에게 해고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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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대선을 앞두고 MBC 뉴스데스크는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을 세 차례에 걸쳐 '일방적으로' 보도했다. MBC 뉴스 화면 캡처

그 기자는 법원에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회사가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는 언론의 핵심 가치이고, 대선을 두 달여 앞둔 민감한 시기에 뉴스데스크라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매체를 이용하여 보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위 정도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면서도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보도했거나 정치적 의도를 가진 세력에 편승하거나 동조하여 보도하였다고 평가할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기자 스스로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교수를 섭외하여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해고는 과하다고 판결했다.

 

법정에 선 사람들은 판사 오판에도 속수무책일 뿐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생면부지의 사람이 기자에게 접근하여 특정 후보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자료를 제공했다면 그 자체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그 정도의 분별력도 없다면 기자를 해선 안 된다. 제보가 들어오면 제보자는 신뢰할 만한 인물인지, 개인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의도가 있어 언론을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검증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기본적인 윤리이고 보도 준칙인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 윤리만 성실하게 지켜도 ‘공작성 보도’는 불가능하다.

 

표절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표절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인터뷰를 확보했다면, 당연히 기사에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자는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의견은 세 명씩이나 익명에 목소리까지 변조하여 기사에 반영하면서도, 표절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전문가를 찾아가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고도 보도에서 배제했다. 기계적 균형조차 지켜지지 않은 엄청난 편파이고, 정상 참작의 사유가 아니라 가중 처벌의 사유가 되어야 마땅한데, 1심 재판부는 황당하게도 징계가 과하다는 정상 참작의 사유로 삼았고 2심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판이 분명해 보이는 판결에 불만이 컸지만, 회사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대법원은 하급심에서 법 해석과 적용에 잘못이 있는지만 따지는 법률심이고 사실관계는 따지지 않아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없고 시간과 비용만 낭비한다는 변호사들의 판단을 회사는 수용했다. 판결에 불만이 매우 컸지만, 승복 외에 달리 대항할 ‘무기’는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판사는 왜 가중 처벌의 사유를 정상 참작의 사유로 바꿔 판단했을까? 언론 쪽의 사정에 어두워서 그런 걸까, 혹시 한쪽으로 경도되어 있어 불리한 증거도 유리한 증거로 보였던 건 아닐까? 2심의 판결문은 1심 판결문을 거의 옮겨쓰다시피 하고 복사수준으로 베낀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런 걸까?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다시 열어 해고 아래 단계의 징계를 결정했고, 그 기자는 또 소송을 제기했으나 회사가 승소했다.)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은 바로 사법부가 한 것”

 

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어느 판사가 ‘법 왜곡죄는 판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주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보고 경악한 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서다. 판결을 존중하고 싶어도 존중할 수 없는 기억이 있는 나로선 ‘판결에 불만을 품고’라는 말이 무슨 역모죄를 꾀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들려 불쾌했다. 판사는 신과 같은 존재여서 죽은 사람 살리는 것 빼고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판사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농담도 아니고 과장도 아닌 것 같아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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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피고인 '수학과 교수'가 재판장에게 법대로 재판해 달라고 호소하는 장면.

그러다 불현듯 영화 <부러진 화살>이 생각났다. 넷플릭스에 있다. 꼭 보시라. 넷플릭스 홍보가 아니다. 판사와 법원과 판결의 권위가 떨어진 낙엽처럼 길바닥에 뒹구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판사 한 사람에 대한 위협을 ‘사법부에 대한 테러’라고 흥분하던 대법원이 법원이 침탈당하고 법정이 삼류 예능 무대가 되고 판사가 모욕적인 조롱을 받아도 침묵하는 게 안타까워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이런 최후 변론으로 막을 내린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 이거 도대체 누가 한 겁니까? 바로 사법부입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재판은 이렇게 끝나겠지만 그 부끄러움은 영원히 남을 겁니다. 그리고 현 사법부의 이 오만함도 언젠간 반드시 우리 국민의 준열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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